
‘재고는 돈이다’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재고는 빚이다’라는 말로 바뀌어, 패션기업 생존에 가장 큰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거 성장기에 브랜드 성장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배수였다. 배수가 얼마냐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재고가 남아도, 이를 커버할 수 있는 배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면, 남는 재고는 아웃렛에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각을 하며 브랜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진정한 국경 없는 시대가 되자 이러한 배수는 더 이상 의미를 상실했다. 수입 브랜드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가격과 비교하는 매스컴의 질타에 이어 해외 직구족들과 매년 늘어나는 해외 여행객은 직수입 기업들에게 더 이상 브랜드의 판매가를 내 마음대로 책정할 수 없는 시대로 만들었다.
변화된 시대상은 아웃렛 시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중견 유통업체의 텃밭이었던 아웃렛 시장에 대기업들이 뛰어들고,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을 끌어들인 프리미엄 아웃렛의 등장은 재고에 대한 국내 수입사와 유통사들의 위기 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재고 컨트롤이 되는 직진출 명품 브랜드와 달리 보통 3~5년 계약에 생각보다 많은 미니멈 바잉 개런티를 하고 있는 독점 디스트리뷰터의 국내 유통사들은 배수 책정도 마음대로 못하고, 고객들의 다양한 구매 루트 확장으로 인해 위기가 커져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과 맞물려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웃렛인 것이다.
하지만 아웃렛의 확장은 양날의 칼이 될 수 밖에 없다. 아웃렛의 성장은 결국 정상 매장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 유명 도시를 가도 이만큼 프리미엄 아웃렛이 대도시 근교에 많지 않은데,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이다.
과도한 재고를 기반으로 무리한 외형성장을 추진하는 아울렛 유통업체와는 반대로 경이적인 정상 소진률을 보여주는 일부 SPA기업들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철저한 재고관리를 통해 브랜드의 지속가능한 필수 조건이 재고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향후 5년은 지난 금융위기의 5년전과 IMF의 15년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브랜드의 생존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존의 결정은 재고관리일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