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세계로 들어온 예술

2015-03-12 윤태영 GY인터내셔널 이사 diaitalyoon@hanmail.net

윤태영의 패션 소비자 리포트




모든 것이 그렇듯 예술 또한 당대의 시대정신과 사회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해당시대와 사회가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이 소비의 세계로 들어온 시기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대략 그 시기를 1960년대로 규정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듯싶다.

1960년대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경제체제를 전제로 한 포드주의가 그 한계에 봉착하면서 포스트포디즘으로 전환된 시기이고, 그에 따라 모더니즘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화를 시작한 시기이다.

1960년대 보다 전문화되고 개별화된 소비는 사회의 중심 기조이자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고, 현대사회의 기본 성격(소비자본주의로서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철학, 예술, 문학, 건축, 디자인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일찍이 독일 출신의 유태계 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 jamin, 1892 -1940)은 그의 저서『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1935)』에서 대중매체와 산업생산의 발달이 예술작품의 제작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견하였다. 그는 변화된 생산방식이 이미지의 유통과 소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주목하면서 과거 미술품의 기본 전제였던 ‘원본’, ‘유일한 것’이 대량생산과 복제라는 개념으로 대체 될 것이라 하였다.

무제한적인 원본의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예술은 원본이 발산하는 아우라를 상실하게 되고 산업적 생산의 시대로 돌입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원본과 복제를 구분하기 어려움은 물론 복제가 원본보다 더 원본에 가까운 시대를 살게 된다.

이러한 발터 벤야민의 예견을 실체화한 예술이 바로 팝아트다. 팝아트는 후기 산업사회를 반영하며 현대성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팝아트는 대중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무한한 소비력을 추구하였고, 더 나아가 이를 조장하고 촉진시킨 미술 경향이었다. 애초 영국에서 출발했던 팝아트가 미국에서 더 발전한 이유도 미국에서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팝아트는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짙은 상업적 성격을 띠고 등장한 것이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그의 대표작인 『샘(FOUNTAIN, 1927)』을 통해 예술이 더 이상 일반 사람들이 다가갈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 이래, 팝아트는 기존의 권위를 거부하고 대중성을 표방하면서 현대사회의 매스미디어, 상품광고, 쇼윈도 등의 대중문화적 이미지를 예술의 소재로 바꾸어 놓았다. 또한 팝아트는 마릴닌 먼로를 캠벨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와 같은 방식으로 반복 배치함으로써 헐리우드 대중 스타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이 대량생산의 소비제품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팝아트는 발터 벤야민의 예견처럼 예술의 생산방식과 유통을 변화시키며 예술을 소비의 세계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팝아트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은 그 자신이 작품의 대상이 되면서 현 세기 가장 권위 있는 문화적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세계 미술 경매 시장에서 피카소 다음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팝아트가 예술의 대중화,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들의 작품은 그 소장자를 상류층으로 만들어주는 차이표시의 기호로 기능한다.

한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소비와 예술의 밀월은 팝아트는 물론 순수(고급)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예술가들에 대한 기업의 각종 후원 및 지원과 문화마케팅으로 대표되는 두 영역간의 콜래보레이션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영역이 바로 패션이다. 패션브랜드들과 예술가들의 협업 사례는 초기 명품브랜드 위주의 협업을 뛰어 넘어 지금은 SPA를 포함한 모든 브랜드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패션과 예술이 갖는 유사성(표현성, 독창성, 형식성)과 함께 서로가 공유하는 부분이 다른 어떤 산업 영역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패션 자체를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존재함을 생각해보라).

예술이 소비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예술이 갖는 사회적, 미적 가치는 이제 소비를 위해 복무한다. 예술은 우리의 일상에 보다 가깝게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글에서도 강조했듯 현대의 소비는 사물이 갖는 고유 기능에 대한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그 사물이 상징하는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사회적 차이화(차별화)를 위한 소비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술이 표현하는 의미와 가치는 상징적 기호와 차이화를 추구하는 현대 소비자들에겐 더 없이 매력적인 영역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소비의 세계가 이를 그냥 나둘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예술을 품은 소비, 소비를 추종한 예술, 당분간 이들의 밀월관계는 지속될 듯싶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들의 이종교합이 이후 소비의 세계를 또 어떻게 변화시켜갈지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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