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하드웨어’ 사이

2014-10-27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rosmary1@paran.com

김소희 칼럼








얼마 전 오랜만에 남편과 강북으로 산책을 나갔다. DDP를 지나 혜화동으로 향하던 중, 우리는 DDP나 돌아볼까 싶어 잠시 DDP쪽으로 차를 돌렸었다. 그러나 왠지 산만하게 북적이는 관광객과 너무 큰 규모의 DDP 건물을 보는 순간, 갑자기 의욕이 상실 되었달까. 둘다 DDP보다 조금 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고 싶은 마음에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가게 된 곳은 이화동 벽화마을. 차는 댈 곳이 없어 머나먼 공영 주차장에 세웠고, 가파른 산동네 달동네 길을 걸어 올라 도달한 벽화마을은 그야말로 독특한 풍경을 담고 있었다.

가난한 달동네의 느낌에 소박한 벽화가 더해진 느낌은, 깨끗할 것도 그다지 멋질 것도 없는 그야말로 물씬한 사람냄새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벽화마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낡은 주택을 개조한 작은 커피숍, 갤러리들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런 물살을 타고 이 지역이 아예 새로운 상권으로 거듭나고 있는 느낌이다.

좋게 보자면 따스하고 정겨운 옛동네, 안좋게 보자면 다 때려부수고 재개발해야 마땅할 듯한 낡은 동네에 요즘 사람들은 매료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언제부터일까. 사람들은 이제 크고 테크노한 하드웨어보다는 낡더라도 따스한 컨텐츠를 지향하게 되었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우리는 트렌드를 말할 때 Malling 이란 단어를 꼽곤 했다. Malling은 주말이면 큰 패션몰에 나와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의 성향을 일컫는 말이었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삼성동 코엑스몰 같은 데를 누비며 쾌적한 실내를 즐기고 그 공간이 제공하는 영화나 식음료 같은 각종 어메니티를 즐겼다.

그러나 요즘은 주말이면 몰링을 하는 대신, 경리단길과 상수동길, 혹은 가로수길이나 이화마을을 찾는 시대가 되었다. 소비자는 이제 깨끗한 첨단의 공간이 주는 쾌적함보다 오랜 시간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그대로 즐길 만큼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사회가 하드웨어보다는 콘텐츠 중심의 사회로 옮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번듯한 하드웨어라도 그 안에 콘텐츠가 차 있지 않다면 도리어 흉물 스럽기 마련이다. 잘 지어놓은 최첨단 패션몰에 아무도 입점하지 않는다면 누가 찾아가겠는가.

반대로 콘텐츠만 충실하다면, 하드웨어가 볼품없을 지라도 이는 또하나의 매력이 될 수 있다. 허름한 동네라도 그 안에 내실있는 가게와 갤러리들이 들어선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이색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여러 사례에서 보고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는 소비자와는 달리 껍데기 지향적인 것 같다. 송도 국제도시 프로젝트도 그렇고, 서울시의 새빛둥둥섬도 마찬가지다. 그런 하드웨어들을 콘텐츠없이 지어놓은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하다. 차라리 콘텐츠에 올인하여 투자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콘텐츠가 차오르면 하드웨어는 그 콘텐츠를 담기 위해 자연스레 변화한다. 오히려 콘텐츠가 너무 넘쳐나서 빠듯하게 부풀어오르고 뒤틀린 하드웨어를 볼 때 우리는 벅찬 감동을 느끼기 까지 한다.



패션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외형이나 브랜드의 겉모습은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 브랜드가 얼마나 꽉찬 콘텐츠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예전처럼 어떤 ‘feel’만을 주려는 브랜드가 과연 꽉찬 콘텐츠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는 더 따스한 것을 찾는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 매우 싸늘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냉담한 소비자라 불리는 이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가려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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