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7 윤태영 GY인터내셔널 이사
인사이트 칼럼 - 윤태영 GY인터내셔널 이사 /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
종교가 지배적인 우위를 점하던 시대 육체는 죄의 근원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 구원은 모두 영혼의 몫이었고, 따라서 육체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신성에 대한 도전이자 모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육체에 대한 발견은 종교로부터 인간(성)을 되찾는 투쟁의 과정이었고, 이러한 면에서 서구의 역사는 인간의 존재와 육체의 복권을 위한 탈 신성화, 또는 세속화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14~16세기에 걸쳐 일어난 르네상스와 18세기 이후 철학의 영역에서 발전한 ‘경험론’, ‘유물론’ 등은 전통적 정신주의에 반론을 제기하였고 마침내 육체는 그 기나긴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을 맛본다.
그러나 신에 대항하여 쟁취한 육체가 이번에는 그 자체가 신성화된다. 몸의 숭배는 영혼의 숭배를 이어받아 그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계승하게 된 것이다. 해방된 육체는 자유롭기는커녕 엄격한 기호로서의 사물이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섹시해야 하고, 건강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자기)검열에 시달리게 된다. 현대판 판옵티콘에 갇힌 것이다.
전통사회는 자신의 육체를 오로지 노동의 도구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던 육체가 거울이 만들어지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사진의 발명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게 되면서 육체는 나르시스적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현대적 생산과 소비의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한편에선 자본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페티시-맹목적 숭배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육체는 투자하고 관리해야 할 소비의 대상이 된다. 특히, 현대에 와서 육체의 대상화는 극에 달하며 하나의 자산으로 관리되고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여러 기호 형식 가운데 하나로서 조작된다.
결국 외모도 자본이 된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육체에 대한 투자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가 되었으며, 투자 있는 곳에 과실이 있다는 경제원리는 여기서도 적용된다. 비록 보잘것없는 집안의 출신이어도 뛰어난 미모만 있으면 재벌의 자재와 결혼하여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게 되었고, 능력이 비슷해도 건장한 몸매의 잘생긴 남자가 CEO로 발탁될 확률이 더 높다.
똑같이 전문지식을 갖춘 여성이라도 용모 단정한 여성이 더 각광을 받는다. 여성들은 신분상승을 위해, 남성들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외모 가꾸기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육체는 한 개인이 가진 자본으로서 경제적 의미에서의 생산수단이 되었다. 예전 사람들이 부지런히 자신의 정신을 도야했다면 현대인들은 불철주야 자신의 외모와 몸매를 갈고 닦는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는 외계어가 된지 이미 오래다. 외모는 더 이상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되었다. 즉 몸 개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프로젝트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비교의 대상, 나아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의 노력과 책임을 강조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경쟁논리는 자기 자신의 육체는 자기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고를 대중들에게 주입한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미디어는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면 원하는 형태의 몸을 내 것으로 가질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대중으로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비정상적인 몸’ 그리고 자본이 집중적으로 관리한 몸이 미디어를 통해 ‘정상적인 몸’으로 둔갑하여 사회적 기준을 형성하고 대중은 조작된 이미지에 열광한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몸의 유포는 우리의 신체를 조작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신체 기능보다 체형을 더 강조하게 된다. 여성들에게 운동은 건강, 생활의 활력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몸’을 위한 것이다.
한편, 육체가 소비문화로 편입되면서 몸은 시각적 이미지들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한다. 잘 알다시피 광고언론, 텔레비전, 영화 등의 매스미디어는 몸의 상품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미디어는 특히 우리 몸을 Before-After의 이분법으로 대비시키며 서열화하고 기호화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분류에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우리는 지금 몸에 대한 강박, 몸이 역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이상적인 몸’에 집착할수록, 또 자신의 정체성을 몸에 의존할수록 필연적으로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강박, 자기비하, 혐오의 소지가 높아진다. 이유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평생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한성을 생각해본다면 몸에 대한 집착만큼 어리석은 일은 또 없다. 또한 사회적 차이화에서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던 몸과 외모마저 몸 개조 프로젝트의 결과 더 이상 차별화의 기재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외모와 체형 자체도 모방되는 시대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누구의 눈처럼 만들어달라’, ‘누구누구의 턱 선을 갖게 해 달라’, ‘성형천국 대한민국’….
같은 병원에서 같은 의사에게 개조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외모와 체형을 갖는다. 마치 부모가 같은 형제고 자매인 얼굴들이다.
여기서 필자는 궁금해진다. 모두가 닮은 꼴로 개조되다 보면, 이후 사회적 차이화를 위해 현대인들이 동원할 그 다음 기재는 무엇일까? 이렇게 육체는 현대 소비사회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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