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5 김정명 기자 kjm@fi.co.kr
기자의 시각 - 김정명 기자
기자는 최근 패션 기업 관리자들로부터 ‘실력 있는 디자이너 좀 구해달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속 사정을 들어보니 몇 해 전부터 디자이너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해 이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5~10년차 디자이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였다.
비단 한두 개 기업이 겪는 문제라면 개별 기업의 문화나 인재관리 시스템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상당수 패션기업이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었다.
몇 해 전 통계이지만 한 해 패션관련 학과 졸업생이 1만5000명이 넘을 정도로 풍부한 인력이 공급되던 국내 패션 산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답은 공교롭게도 ‘창조 경제’를 외치는 정부 정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청년 실업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면서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 박근혜 정부는 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대폭적인 청년 창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패션산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해부터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했고, 중기청과 서울시, 대구시 등 광역자치단체에서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여기에 최근 들어서는 강남구와 금천구 등 기초자치단체들도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이렇듯 자금 지원이 봇물을 이루다보니 과거 ‘디자이너 브랜드를 론칭하려면 실력이 매우 출중하거나 아니면 집안에 돈이 많아야 한다’던 불문율(?)이 깨지고 개인 브랜드 론칭이 활발해졌다.
예를 들어보자면 A단체의 창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통해 사무실 공간과 집기를 제공받고, B단체의 시제품 제작 지원사업을 통해 샘플을 만들 수 있다. 또 C단체의 운영자금 지원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D단체의 국내 전시회 지원 사업, E단체의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 사업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패션 사업에 한정된 지원 외에 청년 창업 기반 사업으로 눈을 돌려보면 더 다양한 지원책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지원이 신청만 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혜택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엄격한 평가를 통해 선정되기 때문에 경쟁률이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지원책이 있다 보니 ‘신진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달고 최소 한두 개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않은 브랜드가 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료, 친구, 후배까지 독립해서 브랜드를 론칭하고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기업에 소속된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엉덩이가 들썩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 같으면 투자비가 없어서라도 진득하게 직장생활을 하겠지만 지금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초기 투자비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 종사자로서, 정부 당국에서 패션 산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쌍 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연간 40조원이 넘는 시장을 갖고 있는 패션 산업 속에서 ‘신진 디자이너’라는 한 부분에만 예산이 집중되는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브랜드와의 경쟁과 변화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패션 기업 경영자들에게 정부 지원 확대가 썩 달갑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론 기업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 국내 패션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강화해야 할 디자이너들이 매일 경쟁브랜드 인기 아이템 분석이나 해외 시장조사 명목으로 스와치 도둑질까지 당연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20~30대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관행 속에서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고 창업을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얼마전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하는 지인을 통해 ‘정부 지원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다소 의아한 얘기를 들었다. 제2, 제3의 뽀로로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자금 지원이 이뤄졌지만 오히려 과정에서 치열하게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자 되레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아 자생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주장이라 사실 관계는 확인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최근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패션산업 분야 관계자들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부분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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