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8 윤태영 GY인터내셔널 이사 diaitalyoon@hanmail.net
컨슈머 리포트 - 윤태영 GY인터내셔널 이사/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

경쟁의 기본 동기가 ‘누가 더 많이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남이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베푸느냐?’로 바뀐다면 현대 사회는 어떻게 작동하게 될까?
왠 뜬금없는 질문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원시 고대사회에서 경쟁, 축적 등의 개념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와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소유나 축적보다는 경쟁자보다 더 많은 증여와 선물 등을 통해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필자가 사치를 논의하며 원시 고대사회에서의 일을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그들의 경쟁적인 증여와 베풂의 행위가 소비와 사치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라는 학자가 1925년에 『증여론』을 발표한다.
그는 이 책에서 고대 부족사회에 존재했던 증여와 선물의 특별한 교환형태(포틀래치, 쿨라)에 주목하여, 교환이 고전경제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재화의 획득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소비하거나 소모시켜 버리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모스에 영향을 받은 바타이유(G. Bataille)는 사회는 잉여를 소모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며, 모든 문명사에서 변화의 원인은 그 사회가 보유한 잉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그는 전쟁 역시 잉여에 대한 파괴적 소모로 이해하였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고대사회에서 있었던 희생제의나 포틀래치라는 증여교환시스템은 매우 평화적이고 효과적인 잉여의 소모 방식이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들과 함께 소비사회 이론, 특히 사치를 논의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학자가 바로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 bart)이다.
좀바르트는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자본주의의 행동 윤리와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던 막스 베버에 가려 오랜 시간 잊혀져 있었던 인물이다. 주지하다시피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정신이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 ‘소비’를 억제하고 ‘생산’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소비는 금욕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생산을 통해 발생한 이윤을 소비로 탕진하지 않는다면 자본가는 이윤을 다시 생산에 투자할 수 있게 되고, 자본주의의 생산성은 계속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바르트는 베버의 주장에 맹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베버가 말한 대로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가 자본주의 발달의 진정한 동력이라면, 그래서 소비보다 생산이 더 중요하다면, 산업자본이 만들어낸 그 많은 상품들은 누가 구매하며, 어떻게 팔릴 수 있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좀바르트의 지적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위해 아무도 상품을 구매하거나 소비하려는 사람이 없다면, 자본주의의 유지와 발전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좀바르트는 이러한 그의 주장을 담아 1913년 『사치와 자본주의』를 출간한다. 그는 자본주의 발달의 비밀을 생산이 아니라 소비, 구체적으로 ‘사치’에서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사회에서의 사치 이야기는 어떨까? 너도나도 럭셔리를 외치는 세상이다. 자동차에도, 냉장고에도, 먹거리에도, 그리고 명품도시, 명품아파트에 심지어 포장마차도 럭셔리를 찾는다.
그야말로 사치의 대중화와 일상화, 그리고 사치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속으로 ‘사치’를 동경하면서도 우리의 마음 한 켠에선 묘한 반감과 거부감을 표출한다.
이것이 ‘사치’ 또는 럭셔리, 명품을 대하는 이율배반적인 우리의 자세다.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분야(또는 사물)에 대한 관심과 투자와 향유를 모두 사치에 대한 반감으로 비난한다면, 그래서 베버의 주장처럼 모두가 경건하고 금욕적인 삶을 산다면 그것이 정말 좋은 삶일까? 여러분은 어떠한가?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항상 위만 바라보며 맹목적으로 그들을 쫓아가기에 바쁜 이들이 보여주는 허영과 탐욕과 과시욕이 문제인 거다.
앞서도 살폈듯 사치의 뿌리엔 증여와 선물, 사회적 잉여의 평화적 소진과 해소, 그리고 자본주의 발전의 비밀이 함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치가 사회적 부나 잉여의 선순환과 재분배,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활성화하는 동력으로 기능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일까?
이를 위해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시선과 태도의 재정립이다.
사치가 ‘돈을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하는 기준으로 판단된다면 어떠할까?
더 나아가 소유의 사치에서 존재의 사치로, 재물의 사치에서 감정과 사유의 사치로, 사치의 내용이 바뀐다면 사치가 우리 삶의 풍요에 조금은 더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사치가 더 이상 불편한 진실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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