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9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rosmary1@paran.com
김소희 칼럼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초반 무렵, 모든 패션계 학생들의 로망은 ‘이신우’란 디자이너였다.
모두 장래의 이신우가 되길 희망하던 시기였다고 할까. 이신우의 숍은 주로 명동 같은 패션거리에 단독으로 존재했고, SFAA쇼에 이신우의 쇼가 열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전국에서 구름떼같이 몰려든 학생들로 인해, 거의 전쟁에 가까울만큼 표 획득 경쟁이 이뤄지곤 했다.
이 당시 학생들은 틈틈이 돈을 모아 이신우를 사입곤 했다. 그 뒤로도 강진영, 홍미화 같은 디자이너들이 패션계의 신성으로 등극했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런 존재가 될 것이라는 꿈에 들떠있었다.
그러나 패션계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 뒤 한섬의 ‘마인’ ‘타임’과 같은 신규 브랜드들이 줄지어 론칭되면서, 어느 무렵부턴가 디자이너의 세계는 점점 사라져갔다.
이신우가 문을 닫았고, 유명 디자이너들은 브랜드로 흡수되었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듯 했다. 바야흐로 패션계는 ‘브랜드’ 세상이 되었고, 과거의 디자이너와는 조금 다른 안목의 ‘브랜드 실장’이 새로운 로망의 캐릭터가 되어갔다.
그렇게 20여년이 흐른 지금, 패션계는 다시 서서히 디자이너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 하다. 일년에 수 십명, 아니 많게는 수 백명까지 데뷔했다가 사라지는 신진 디자이너들이 있고, 이들 중 몇몇은 아닌게 아니라 빅 스폰서를 구하며 성장해간다.
백화점에서 사라져가는 브랜드 매장은 서서히 디자이너의 편집숍들로 채워져가고, 젊은 패셔니스트들은 ‘에이랜드’와 같은 신진들의 편집숍에서 쇼핑을 한다.
이제 신진 디자이너들은 ‘듣보잡’이 아닌 하나의 대안이 되어가고 있다. 창의성, 개성과 같은 브랜드가 잃어버린 날카로움과, 1인기업 같은 가벼운 몸집, 소량 생산이라는 탄력적 방식으로 이른바 ‘개미군단’을 이루며 시장의 한 파이를 쉐어해 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브랜드가 취해야 할 전략은 어떤 것일까. 브랜드의 난점은 그 몸집에서 비롯된다. 지나치게 개성을 강조할 때 얻게 되는 소수의 충성도 높은 고객만으로는 그 브랜드는 유지될 수 없다. 즉, 소기업보다는 많이 팔 수밖에 없는 브랜드로서는 그들과 캐릭터 경쟁을 한다는 것이 어려워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럴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예 SPA가 되거나, 아예 디자이너 브랜드가 되겠다는 이상한 생각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 중고가 브랜드는 중고가 브랜드의 영역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에 부합하는 ‘적절한 개성’ 즉, SPA와 디자이너 사이의 절묘하고도 적정한 수준의 개성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밸류(Value)’란 바로 이러한 적정성을 의미한다.
현재 브랜드들이 개성이 없다고 비판받는 이유는, 지나치게 개성이 낮다는 의미와 다름아니다.
즉 조금 더 감도를 높여야 한다. 적어도 라벨을 떼고 옷들을 비교했을 때, 그 옷이 어느 브랜드 옷인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한편, 그만큼 물량과 매출 목표도 함께 줄여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낼 수 있는 수익과, 그 수익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직 규모의 효율성을 점검할 수밖에는 없는 시기가 되었다.
적절함이란 단어는 무척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한 때 ‘밸류’라는 말을 입에 올려봤고, 그렇기에 이미 그 적절함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브랜드에 적합한 밸류를 찾아내는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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