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9 김정명 기자 kjm@fi.co.kr
기자의 시각 - 김정명 기자

세밑이 다가오는 요즘, 패션업계에 흉흉한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브랜드 중단과 부도, 법정관리 신청에 관한 내용이다. 올해 패션 시장에서 중단·부도·법정관리 등을 통해 자취를 감춘 브랜드는 줄잡아 20여개.
1989년 론칭해 30년이 넘은 ‘윈디클럽’부터, 한때 힙합캐주얼이라는 시장을 선도했던 ‘후부’, 론칭 2년 만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핀앤핏’까지 다양한 브랜드들이 경기 침체와 소비 시장 변화의 높은 파고를 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더군다나 갈수록 시장이 저가 SPA와 높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브랜드로 양분되면서 어중간한 가격대의 중소형 브랜드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말연시를 보내고 나면 서너 개 이상의 브랜드가 추가로 중단할 것이라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퍼지고 있다.
중단 사태를 겪은 브랜드 임직원들이 말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 감소가 1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도 수년 째 수익을 내지 못해 부도 사태까지 이르는 경우 운영 구조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A’ 브랜드의 경우 독특한 브랜드 콘셉으로 론칭 초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백화점과 대리점 등 매장 확보도 나름대로 순조로운 편이어서 안정적인 성장이 예상된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니 초기 자본금 20억원은 론칭 6개월만에 잠식되고 오너의 추가 출자가 100억원 이상 더해졌지만 결국 회생하지 못했다. 문제는 고정비용 지출이 과도했다는 데에 있다.
이 브랜드는 매장 10개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사 인력은 30명에 달했다. 디자인, MD, 영업, 마케팅, 관리 등 직능별로 인력을 세팅했다. 운영을 맡긴 본부장은 “체계적인 브랜드 운영을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대표이사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이 본부장은 과거 패션업계에서 몇몇 히트 브랜드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 오너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론칭 초기 운영 구조를 갖춰가면서 비용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성장에 대비해 물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월 물류 비용이 5000만원에 달하고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1000만원이 넘는 직영 매장 운영 비용이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제조 비용을 제외한 순수 고정비로만 월 3억원 가량이 지출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최소 월 매출이 15억원 이상 나와야 BEP를 맞출 수 있는 데 이 브랜드는 2년 동안 월 평균 매출이 3~4억원에 불과했다.
올 들어 이대로는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판단에 오너가 직접 경영을 챙기기 시작했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고 결국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패션 시장은 이미 성장기를 넘어선지 오래다. 하지만 많은 브랜드들이 성장기 시대 브랜드 운영 프로세스를 답습하다보니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만들어 놓으면 팔릴 것이라는 제조 중심 마인드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으며 성장하는 단계별 성장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유통구조의 개선이다. 기존 백화점과 대리점 위주로 성장했던 과거 환경과 달리 현재는 온라인과 다양한 전문 쇼핑몰, 홀세일, 해외 시장까지 채널이 다양해진 만큼 규모에 맞는 유통 구조 재설계가 시급한데 아직도 상당수 기업이 기존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유통 구조 재설계에 돌입한 A브랜드 대표이사는 “연간 매출 규모가 500억원을 넘어서면 변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100~200억원 정도 중소 규모일 때 새로운 시장 환경에 맞도록 운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1~2년 성장이 더디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브랜드 사업 설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탓’을 넘어 ‘내 탓’이 무엇인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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