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1 윤태규 MPI 시니어 파트너스 ambroyoon@naver.com
윤태규 칼럼

몇 년 전 패션 직종에 종사하는 몇몇 임원들과 오찬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식사도 하지 않고 언쟁을 벌이는 두 사람을 보게 됐다.
언쟁의 내용은 회사 오너의 지시로 고속도로 휴게소에 패션매장을 열어야 하는데 영업 임원의 입장과 유통 임원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고속도로 휴게소에 패션 매장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공히 가지고 있었으나, 부서간의 이해관계로 설전을 벌인 것이다. 결국 퇴직한 영업부장을 중간관리로 선임해 운영하고, 수수료는 장사가 어려워 매출이 안 나올거라는 전제로 타 매장에 비해 수수료를 대폭 올리자는 원칙까지 세웠다.
결론적으로 그 매장은 ‘대박’을 터뜨렸고, 매장을 맡은 관리자는 회사에서 받던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수입을 챙기게 되어 일명 ‘잭팟’을 터뜨렸다.
현재 그 휴게소는 그 영역에서 신 개념의 휴게소로 자리 잡으며 패션 매장 역사의 새로운 트렌드로 알려졌다.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60~80년대 한국의 핵심적인 정책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계획경제’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만약 그 시대에 그런 정책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그 시대에는 어떤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획일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필요했던 시기였고, 그러면서 국가 경제가 일어났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근면함과 성실함’은 ‘성공의 필요충분 조건’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근면하다거나 성실하다는 것은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말과도 연결된다.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원칙을 많이 따지고 유연함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창조’라는 단어와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패션업계를 보아도 최근에 부상한 패션 기업 오너들을 보면, 대부분이 그 시대에 그러한 안정된 생활보다는 좀더 자신만의 일을 위하여 수십년 간 노력한 분들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기업에 있던 사람들 보다는 중소 전문기업의 사람들이 상당히 진취적이고 flexibility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단적인 예일지는 모르겠으나 획일적 대량생산이 필요했던 남성패션은 대기업이 강하고, 획일적이면 곤란한 여성 및 캐주얼은 중소 전문기업이 강한지도 모르겠다. 위의 휴게소 사례에서 보듯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접하게 되면 ‘계획경제’를 살아온 사람들은 뭔지 모를 불안감과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은 사실다.
반대로 ‘창조경제’에 익숙한 기업이나 임원들이 이 휴게소 사업에 접했다면 과연 어떤 의견을 내었을지 사뭇 궁금하다.
이런 사소한 사고의 차이에서 큰 결과의 차이를 우리는 종종 볼 수가 있다. 한국의 패션 시장을 보면 빅3라고 얘기되는 기업들은 대부분 남성 정장이나 기타 대량생산을 하는 부분, 우리가 예전에 ‘메이커’라고 얘기하던 것들에 강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창의가 들어가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특히 개성이 강한 젊은 캐주얼이나 여성복에서는 성공을 이룬 기업이 없다.
반면 중소기업도 현재 남성 정장시장에 남아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과연 어떻게 기업을 이끌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얘기하고 싶다.
◇ 감성이 아닌 숫자 강한 패션기업 만들 때
최근 10여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는 국내 패션산업은 2013년 매출 규모로 5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런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을 제외한 한국의 패션 전문기업들은 해외에서 거의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한국의 패션 전문기업들이 대기업보다도 상품이나 내용면에서 본다면 훨씬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좋은 기업으로서의 이미지가 제대로 구축된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언급한 일관되고 꾸준한 기업의 이미지를 잘 살릴 수 있는 ‘계획경제’가 부족해서가 아닌가 싶다. 결국 기업의 평가는 누구나 공감하고 확인 가능한 숫자적인 평가가 이루어 져야 하는데, 정량적인 평가 보다는 정성적인 평가를 중시하는 한국의 패션 전문기업들의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어느 패션 전문기업이 어렵다는 시기에 변변히 투자자나 투자 전문 기관의 따스한 손길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다는 사실은 아쉽다. 예전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우리는 벤처기업, 특히 IT社가 한국에선 엄청나게 투자자에게 인기가 있지만, 해외 투자자에겐 ‘패션회사’ 자체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IT사’라고….
때문에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한국의 중소 패션 전문기업들은 이제 ‘창조경제’보다는 오히려 ‘계획경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라고 감히 얘기하고 싶다. 잘 짜여진 회사의 의사결정 방식, 예를 들어 원부자재 구입에서 판매, 재고관리. 실적보고까지 어느 한 사람의 ‘감이나 촉’에 의한 결정이 아닌, 잘 갖추어진 시스템에 의한 객관적이고 결정방식이 필요한 시기이고 그런 ‘패러다임 쉬프트’가 필요한 때이다.
대기업은 ‘formal에서 조금 더 informal’로, 중소기업은 ‘informal에서 좀더 formal’로 변해야만이 서로 취약점으로 여기던 영역으로의 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대기업도 패션 전문기업도 투자자들이 인정하는, 투자를 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패션 전문기업들의 ‘감과 촉’에 의존하는 경영은 이젠 ‘안녕’을 고해야 할 것이며, 그 동안은 개인기업으로서 개인적인 능력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면, 지금부터는 ‘계획경제’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모두가 함께 더불어 이루어 내는 새로운 제2의 ‘글로벌 패션 전문기업’으로 탈바꿈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서 우리 패션 전문기업들도 대기업 못지 않는 당연한 대우를, 당연한 영광을 한 번은 누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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