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을 손에 쥐면 天下를 얻는다?

2013-07-26 김우현 기자 whk@fi.co.kr

우월적 지위 남용 입점 업체들 제멋대로 쥐락펴락




롯데·신세계·현대 등 빅3 백화점 외에도 NC백화점, 대형마트, 아웃렛몰까지 유통업체들이 너나없이 입점 업체를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고 있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달 24일 이랜드 NC백화점 송파점에서 근무하던 30대 초반의 여성 판매사원이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에서 여성복 매장 매니저가 투신 자살한 지 두 달이 채 안된 시점이다. 어떤 이유로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을까.



과도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지만 인명을 앗아갈 정도로 이들을 짓누른 근본 원인은 그간 누누이 지적돼온 유통업체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이른바 ‘수퍼 갑’의 횡포라는 지적이다.



◇ ‘수퍼 갑’의 횡포 근절돼야



우리의 패션 유통 산업의 현실은 밖으로는 글로벌 SPA 브랜드의 공격에 설 땅을 잃어가고, 안으로는 수퍼 갑의 횡포에 을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유통업체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이른바 ‘수퍼 갑’의 횡포는 마치 독버섯처럼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통을 쥐고 있으면 마치 천하를 얻은 것처럼 입점 업체들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고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밖으로 적에게 공격 당해 내 나라가 초토화될 지경인데 안으로 탐관 오리들이 양민들의 알량한 밥그릇까지 빼앗아 먹는 꼴”이라고 비난한다.



최근 공정위까지 나서 공룡 백화점의 횡포 근절을 위해 전방위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유통업체의 뼈를 깎는 자성 노력 없이는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수퍼 갑에 속하는 중견 직원들도 할 말은 있다는 눈치다. “현재의 부동산 임대업자와 다를 바 없는 수수료 방식의 경영 형태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다.



◇ 국내 백화점도 선진국처럼 사입해야



국내 백화점 경영의 현실을 보자. 선진국 백화점은 사입 방식을 통해 상품들을 판매하지만, 국내 백화점들은 각 업체-브랜드에 일정한 자리를 주고 수수료를 받고 있다. 말 그대로 부동산 임대업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20년 지기, 30년 지기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것이 그들의 경영 논리다. 수퍼 갑의 우월한 위치에서 한국 시장을 개선할 수 있는 ‘핵심 키’를 쥐고 있는 그들이 사업 파트너와의 ‘공생’을 외면하고 ‘혼자 살기’를 선택하기 때문에 문제는 심각하다. 



신세계는 명동점 MD 개편에서 내셔널 브랜드 20여 개를 퇴점시키고 수입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등공신인 내셔널 브랜드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자리에 660㎡(200평)~990㎡(300평) 규모의 「유니클로」, 「자라」, 「H&M」 같은 해외 SPA 브랜드를 들여 앉히겠다고 밝혀 내셔널 브랜드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 유통업체 횡포에 내셔널 브랜드 골병



이랜드 그룹은 한 술 더 뜬다. 2001아울렛, 뉴코아 등으로 유통 사업의 기반을 닦은 이랜드리테일은 ‘국내 최초 직매입 백화점’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 2010년 야심차게 NC백화점을 출범시켰다. 이랜드그룹 자체가 애초 「이랜드」, 「헌트」, 「브렌따노」 같은 토종 브랜드로 성장한 기업 이미지에 걸맞게 유통 사업 역시 중저가 내셔널 브랜드 위주로 입점시켜 판로 확보가 어려운 중소 패션업체들의 유일한 희망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직매입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던 NC백화점을 하나 둘씩 수수료 방식으로 전환하더니 최근에는 21~22% 수준이던 수수료를 전 점 평균 25%에 맞추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입점 업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러자 동종 업계인 세이브존도 수수료를 이랜드와 같은 수준으로 맞추겠다며 3% 인상안을 밝혀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여기에 현재 22% 수준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까지 가세해 정기휴무에 따른 매출 감소와 매장유지 비용 등의 이유를 들어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속담처럼 가산동 아웃렛 거리도 갑의 횡포로 비난을 사고 있다. 최근 가산동 A 아울렛은 인근에 새로 오픈한 타 아웃렛에 입점했다는 이유로 한창 영업중인 20여개 브랜드에게 갑자기 퇴점 통보를 해 물의를 빚었다. 대형 백화점 경영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잘못된 관행을 아웃렛들이 그대로 따라 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브랜드에도 30% 수수료 요구 



유통업체의 횡포에 내셔널 브랜드만 골병 드는 게 아니다. 리테일 시대를 맞아 온라인이나 스트리트 브랜드를 유치하겠다는 백화점의 러브콜이 고마워 여기 저기 팝업 행사에 끌려 다니다 낭패본 온라인-스트리트 브랜드가 수두룩하다. 결국 백화점엔 입점하지도 못한 채 돈과 시간만 버리고 그 후유증으로 차라리 사업을 접고 월급쟁이로 지내는 게 속 편할 것 같다고 푸념할 정도다.



더욱이 온라인, 스트리트 브랜드 유치에 가장 적극적이던 롯데가 최근 이들 비제도권 브랜드에게 조차 현재의 20~25% 수준인 수수료를 5~7% 인상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시름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 여파로 백화점, 대형마트, 아웃렛 등 유통업체들의 경영 악화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입점 업체들의 위기상황이 더욱 절박한 만큼 말로만 동반성장을 외칠게 아니라 서로 상생하는 진정한 파트너십 관계 구축이 아쉽다”고 하소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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