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7 김정명 기자 kjm@fi.co.kr
쇼룸 비즈니스 활성화 위한 전문가 좌담회

리테일 시장이 화두다. 365일 공사 중인 가로수길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셀렉트숍이다. 자고 일어나면 셀렉트숍이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규모 사업자가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인기를 끌자 패션 대기업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으리으리한 대형 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콘텐츠도 풍부하다. 최근 3~4년 인디디자이너 붐이 일어나면서 곳곳에 숨어 있던 실력자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기존 제도권 패션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고 너무 빠른 속도로 시장이 변화하면서 여러 부작용들도 생겨나고 있다. 가장 크게 지적되는 내용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 집중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표면적인 활성화에 비해 산업의 기반이 뿌리내리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유통을 돕는 수많은 에이전트, 디스트리뷰션들이 자리잡고 있고, 또 파리의 MC2나 아따쉐드프레스처럼 이들에게 선택받는 것 만으로도 성공이 절반은 보장된 쇼룸들이 있다.
리테일 시장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 쇼룸 활성화 문제를 짚어봤다.

김정명 기자(이하 김) : 국내 패션산업이 일대 전환기를 맞으면서 리테일 산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쇼룸 비즈니스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송미선 대표(이하 송) : 맞다. 셀렉트숍들이 늘고 있지만 백화점과 똑같은 위탁 유통 형태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인디 디자이너가 성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디자이너가 본연의 일 외에 너무 많은 부분에 에너지를 뺏기기 때문에 생명력이 짧아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쇼룸 비즈니스가 활성화 돼야 한다.
김 : 그러면 쇼룸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송 : 지금까지 정부 지원이 너무 디자이너에게만 맞춰진 측면이 있다.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은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쇼룸이나 홍보 대행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 산업도 함께 육성해야 한다.
권원식 상무(이하 권) : 우리 패션산업은 역사가 짧다. 그만큼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외 진출을 꾸준히 추진한 디자이너들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 이제 기초적인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한류 문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디자이너들을 지원,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예산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더 많은 디자이너들을 내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박준상 대표(이하 박) : 동감한다. 쇼룸도 결국 비즈니스다. 해외에서 쇼룸 비즈니스가 활성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입형 유통 구조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좋은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유통업체가 있으니 디자이너들이 자기 상품을 팔 수 있다. 국내는 유통 구조 자체가 대부분 위탁제다. 그러지 않아도 유통 코스트가 높은데 여기에 에이전트 비용까지 더해지면 가격경쟁력이 낮아진다. 유통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국내 쇼룸 사업자가 활성화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김 : 위탁제를 벗어날 방법은 없나?
권 : 먼저 디자이너·브랜드들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 국내 셀렉트숍들도 상품력이 높은 상품은 사입하는 것으로 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한 한국 디자이너가 국내 사업을 시작하자 대형 셀렉트숍들이 떼로 오더했다고 들었다. 콘텐츠 경쟁력이 먼저다.
박 : 옳은 지적이다. 이탈리아 『10꼬르소꼬모』 같은 셀렉트숍들은 해외 유수의 럭셔리 브랜드라도 다 위탁제로 운영한다. 디자이너들이 힘을 키우는 것은 규모 보다는 매력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송 : 국내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작은데 디자이너들은 자꾸 생겨난다.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지만 내수만 보자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는 얘기다. 내수 시장에 한계가 있다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도 방법이다. 꼭 해외 전시회에 나가야만 해외진출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경쟁력 있는 전시회가 생겨서 해외 바이어들이 상품을 구매해 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김 : 결국 국내에서는 쇼룸 비즈니스가 어렵다는 얘기인가?
권 : 꼭 그렇지는 않다. 로컬과 해외 비즈니스를 겸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쇼룸 사업자가 나온다면 적극 환영할 일이다. 현재 아비스타도 밀라노 지사를 통해 10여개 유럽 브랜드를 현지에서 판매하는 역할과 국내 디자이너의 유럽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 수익성이 높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박 : 역시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해외에서 쇼룸 비즈니스가 활성화됐다고 말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쇼룸들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 바이어들도 대금 결제를 6개월까지 미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쇼룸은 거래를 중개해주고 받는 중개료가 수입인데 거래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송 : 한국형 쇼룸 비즈니스가 필요하다. 아직 국내 디자이너들은 디스트리뷰터와 에이전트의 개념조차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는 디자인 하우스나 패션 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데뷔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국내에서는 실무 경험 없이 시작해 생기는 문제다.
김 : 우리나라 인터넷 쇼핑몰이 발달하는 데에는 ‘까페24’나 ‘메이크샵’ 같은 인프라 서비스 회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디디자이너들에게도 이런 역할을 제공해 주는 기업이 필요하지 않나.
송 : 그래서 제안한 내용이 한국형 쇼룸이다. 아이디어와 재능이 있는 디자이너들이 세일즈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고 홍보해주는 기업이 필요하다.
권 : 중요한 얘기다. 먼저 디자이너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자신이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지 명확한 설정이 중요하다. 매 시즌마다 콘셉을 바꾸면 여지없이 안 팔린다. 반면 처음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고 발전시켜나가는 디자이너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박 : 아무 생각 없이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다가 해외 진출 단계에서 상표등록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여러번 봤다. 디자이너나 도메스틱 브랜드 만드는 사람들이 더 전문성을 갖도록 도와주면서 수익도 낼 수 있다면 최선의 솔루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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