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0 김정명 기자 kjm@fi.co.kr
대기업 공세 속, 2010년 121개 매장서 현재 108개로 13개 감소

임대료 천정부지로 뛰어 영세업자 밀려나
독특한 패션 아이템과 소규모 카페, 레스토랑, 디자인 매장 등의 상점들이 오밀조밀 모여서 국내 손꼽는 문화적인 정취가 있던 가로수길은 이제 옛말이 됐다.
대기업들과 중견 패션기업들이 너도나도 달려들면서 글로벌 SPA 브랜드와 국내 대형 패션 브랜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프랜차이즈 매장이 지금까지 가로수길의 문화를 일궈온 이들을 내몰았다. 대기업 진출은 더욱 가속화해 현재 AK백화점, 신세계인터내셔널, LG패션, MK트렌드, 지오다노 등이 대형 매장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 8월 초 기준 가로수길 1층에서 영업 중인 점포를 조사한 결과 2010년 5월에 비해 13개가 감소한 108개 매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규모 점포는 줄고 대형 점포가 늘어난 데에 따른 현상이다. 2~3층까지 통으로 쓰는 매장도 많이 늘었기 때문에 전수조사를 한다면 비율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로수길 인기 요인 다양성 어디로
2000년대 중반부터 ‘핫플레이스’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가로수길은 어느새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울의 소호’로 불리며 필수 쇼핑 코스로 자리잡을 정도가 됐다.
소비자들이 모이다보니 기업들의 공세가 시작됐다. 하지만 전체 길이 700m 남짓한 소규모 상권이어서 1층을 활용할 수 있는 매장은 150개 수준. 또 한 칸이 33㎡(10평)도 안 되는 곳이 많다보니 기업형 브랜드들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최소 2~3개 매장을 한꺼번에 터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색을 자랑하던 옷 매장과 까페를 겸하는 ‘까페 별’, 조명기구 전문점 ‘엔모노’, 디자인문구 ‘북바인더’, 까페와 꽃집을 겸하는 ‘블룸앤구떼’, 표구전문점 ‘준포스터’ 등 다양한 업종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33㎡이 채 되지 않는 디자이너들의 쇼룸과 디자인 매장, 까페 등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보증금과 임대료를 올려 받으면서 건물 가치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에게 매장을 내주는 것보다 기업에게 임대를 주는 편을 선호했다.
이 과정에서 권리금․보증금․임대료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제일모직, LG패션 등 대기업과 자본력이 탄탄한 중견기업들은 아예 건물을 통째로 임대해 사용하기도 하면서 최근 3~4년 사이 임대료가 많게는 5배 이상 뛴 곳도 있다.
결국 ‘문화의 거리’라는 타이틀 때문에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든 가로수길이 ‘자본의 거리’로 바뀌게 된 것이다.
◇끝 모르는 대기업 공세 어디까지
자본의 공세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AK백화점이 자사 셀렉트숍 ‘KOON’ 매장 오픈을 앞두고 있고 신세계인터내셔널은 「디젤」 플래그십 스토어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또 LG패션은 기존 「TNGT」 매장 이외에 대형 종합관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지오다노도 최근 계약을 마치고 조만간 공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몇 년 전까지 청담동 일대 부동산을 사들여 구설수에 오르내린 대기업 오너 일가들이 가로수길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CJ그룹, 현대그룹, 강원그룹, 신세계인터내셔널 등은 오너 일가와 기업 명의로 빌딩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3.3㎡ 당 2500만원 수준이던 매매가가 최근에는 1억5000만원까지 뛰어 거품 논란이 일기도 하지만 정보력과 예측력이 뛰어나다는 대기업들이 손을 댄 것으로 알려지면서 연예인,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도 앞다퉈 가로수길 건물 매입에 나서고 있다.
◇자본에 점령당한 가로수길, 이대로 괜찮은가
많은 패션․유통 전문가들은 기업의 무분별한 투자는 오히려 가로수길의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가로수길의 문화를 만들어왔고 이를 대변하는 핵심 콘텐츠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변두리로 밀리거나 아예 이곳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차도 불편하고 도로 폭도 좁지만 가로수길만의 문화적인 정취를 느끼고자 쇼핑객들이 몰렸는데 그 핵심 요소가 빠져버리고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대기업 브랜드들로 채워져 버린다면 소비자들의 외면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