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4 정인기 기자 ingi@fi.co.kr
급변하는 시장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누적된 악성재고로 패션기업 유동성 위기 표면화
급변하는 시장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여성복 A사는 지난 2011년 재무제표 기준 9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리점 위주로 유통망을 전개한 덕분에 영업이익도 165억원(17.7%)에 이르렀으며, 당기순이익도 90억원(9.7%)을 기록해 최근 국내 여성복 기업 가운데 보기 드문 ‘우량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기업의 현실은 빠듯한 살림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장부상 재고자산이 368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재고자산이 많은 까닭에 이익율도 높게 잡혔으며, 62억원에 이르는 법인세도 피할 수 없었다. 표면적으로 생각한다면 재물은 곳간에 쌓여있지만 당장 현금화 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통장의 현금은 늘 빠듯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패션 비즈니스는 ‘재고 장사’라고 할 만큼 재고가 중요하다. 시장이 요구할 때는 얼마나 빨리 필요한 재고를 공급하느냐가 관건이지만, 판매가 주춤할 때는 얼마나 빨리 현금화 하느냐가 경영상의 주요 핵심이다.
최근 국내 패션기업들은 매출과 영업이익은 괜찮은데, 유동성이 충분치 못해 협력업체들의 신뢰를 잃거나, 빈곤의 악순환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멀어져가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A사 역시 최근 전반적인 어덜트 시장 침체와 이에 따른 재고증가, 아웃도어 시장의 재고 방출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지난 겨울상품과 올 봄 신상품 판매부진과 재고상품 판매부진이 겹쳐 유동성의 늪에 빠질 우려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한 경영 전문가는 “A사 정도 매출이면 통장에 적어도 80~90억원의 현금이 있어야 한다. 판매가 예측만큼 나와준다면 문제가 없지만 판매가 위축된다면 곧바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재고평가액이 높은 탓에 재무이익이 높게 평가됐으며, 결과적으로 세금을 많이 낼 수 밖에 없다”며 재무경영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최근 몇년간 급성장세를 나타냈던 아웃도어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빅3 가운데 하나인 B사는 재고자산이 700억원에 이르러 처리를 고민하고 있으며, 한 때 모 대기업의 주력 브랜드로 평가받던 C 브랜드는 넘쳐나는 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 다른 캐주얼 기업 E사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나타났다.
E사는 지난해 2240억원 매출에 180억원(8.6%)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장부상 재고자산은 351억원(15.7%)에 그쳤으며, 여러 복합적인 영향과 몇 년간 순익 누적으로 통장에는 319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할 수 있었다. E사 대표이사는 “온라인과 글로벌 SPA 등 새로운 경쟁업체들이 많은 물량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재고회전율을 높여 재고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전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시장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환금성이 좋은 현금 보유가 중요해졌다. 본격적인 저성장기에 진입한 만큼 그에 걸맞는 재고관리 및 재무경영 능력이 주요 경쟁력으로 부상했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저성장기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온라인과 글로벌 SPA 등 새로운 세력들이 가세하면서 판매위축과 그에 따른 재고증가,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성장기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매출과 영업이익율을 올렸느냐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였다. 그러나 저성장기에는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남겼으며, 얼마나 빨리 시장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재무능력을 가졌느냐가 핵심으로 부각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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