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여파…본부장들 줄줄이 낙마

2012-03-02 정인기 기자 ingi@fi.co.kr

시장 환경 변화에 걸맞는 전략적 사고 갖춘 인재 아쉬워

오너들 ‘인재 없다’ 고민하지만 핵심 인재는 육성하는 것



최근 모 사업본부장들 모임에서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전체 회원 15명 가운데 5명이 현직을 떠난 것이다. 그것도 전년도 결산이 끝난 12월말에서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집중된 일이었기 때문에 얘기 주제도 자연스럽게 기업의 위기 돌파와 개인의 생존으로 연결됐다.
취업을 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A씨는 12월에 한 중소 여성복 업체 부사장으로 입사했지만, 지나친 권위주의식 운영방식과 과다한 법인카드 씀씀이 때문에 오너는 물론 직원들까지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중견 여성복 업체에 들어간 B씨는 군대식 기업문화와 잘 맞지 않아 향후 거취를 고민중이다.



경기 침체&저성장기 맞아 갈등 불거져
지난해 가을부터 두 시즌 연속 경기가 침체되고, 저렴한 가격과 트렌드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과 인터넷 브랜드 등 새로운 강자들이 공세를 펼침에 따라 오프 라인 중심의 패션업체들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은 가장 먼저 책임 소재를 따지는데 급급하다. 사업부를 책임지고 있는 본부장은 좌불안석이고, 오너들은 성과가 좋은 인물을 찾는데 혈안이다. 성과만 확실하다면 파격적인 연봉도 불사하고 있다.



한 중견업체 L오너는 “사람을 쓰는게 가장 어렵다. 판매가 부진하면 하루에도 몇번씩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매사를 직접 챙기자니 역할을 무시하는 것 같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결국 임원회의는 한 주간의 실적에 대한 책임 소재만 묻게 되고,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본부장들도 불만이 적지 않다. 한 중견업체 C본부장은 “말이 본부장이지, 권한이 한정돼 있다. 오너는 소통한답시고 과, 차장들까지 직접 문자로 소통하는 탓에 명령체계가 서지 않는다. 브랜드 사업은 상품기획에서부터 재고판매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갖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오너가 수시로 말을 바꾸고 있다. 또 일을 맡겼으면 최소한 한 시즌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믿고 밀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오너들은 한 두 달안에 결과를 요구하지만 요즘같은 저성장기엔 단기 승부가 쉽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환경 변화에 적합한 핵심인재 양성할 때
시장환경은 빠르게 바뀌는데, 패션기업의 구조는 과거 성장기 시절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관련된 갈등은 ‘저성장시대에 적합한 인재관’이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묘환 CMG 사장은 “과거 성장기 시대에는 누가 유통망을 더 많이 여느냐, 외형이 얼마나 늘어났나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형보다는 수익성과 지속성장에 경영전략을 맞춰야 한다. 차별성이나 중장기 비전이 부족한 다(多) 브랜드 전략은 기업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내부 인력 또한 핵심인력을 제외하고는 과감하게 아웃소싱 함으로써 고정비를 낮춰야 한다. 본부장들도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전략적 사고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 육성에 대한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문일우 참존어패럴 사장은 “필요한 업무에 따라 사람을 채용하면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회사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기업의 핵심인재는 내부에서 육성해야 한다. 육성된 이후 신뢰가 갈 때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며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과와 과실에 대한 분명한 평가도 중요해졌다.
한 중견업체 임원은 “본부장이 내 사업처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성과를 냈을 때 이에 대한 분명한 평가가 필요하다. 전체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당근이 있어야 한다. 오너의 기분에 따라서가 아닌 수익에 따라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예측가능한 경영이 정착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구매패턴과 시장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가 아닌 실무 책임자들이 책임있게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만중 보끄레머천다이징 회장은 “현재 가장 필요한 경쟁력은 스피드다. 패션기업의 스피드는 의사결정에 달려 있다. 과거처럼 밑에서 보고를 하고 위에서 결정해서는 대응하기 어렵다. 대리, 과장 때부터도 스스로 의사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사람이 성장하고, 나아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며 의사결정의 자율성과 스피드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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