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31 정인기 기자 ingi@fi.co.kr
New Normal 1
예측불허 변덕 날씨, 글로벌 경쟁자 가세로 새로운 기준 요구
파괴적 자기혁신·패러다임 전환해 뉴 비즈니스 모델 개발해야

지난해 11월 국내 패션업계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매출 하락세를 경험했다. 중순까지 영상 20도를 넘나드는 이상 고온과 이로 인한 겨울 아이템 판매 저조, 여기에 몇 년간 계속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이 같은 위기는 12월에 다소 완화되는듯 했지만 올 들어 또다시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격적인 저성장기로 접어들었으며, 새로운 환경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최근 만난 주요 패션기업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低 성장기’에서 원인을 찾았다. 과거 20여년간 국내 패션시장은 ‘성장기’란 괜찮은 라이프 사이클 속에 있었으며 이제 본격적인 성숙기, 즉 저성장 시대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성장기란 단어만으로는 최근 상황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경영자들은 “싸움의 상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브랜드와 비슷한 경쟁 브랜드와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글로벌 마켓에서 세력을 키운 대형 기업들이 잇따라 국내 시장에서 세력을 키움에 따라 ‘시장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적응해 생존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는 ‘뉴 노멀(New Normal)’이란 키워드를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는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세계 경제는 규제완화 및 금융과 실물경제의 빠른 성장세가 자산가격의 버블과 붕괴를 초래했고, 저성장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기준(뉴 노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패션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외부환경 변화로 수익구조는 더욱 악화됐으며 양극화 영향으로 조만간 대규모 구조조정기를 예고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를 맞은 우리 패션산업의 뉴 노멀은 무엇일까? 내수 시장의 펀드멘탈이 약하고, 외부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를 생각할 때 뉴 노멀 시대로의 변화가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대처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패션인사이트>는 창간 12주년을 맞아 한국 패션산업의 뉴 노멀은 무엇이며, 이를 우리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해보고자 한다.
‘파괴적 혁신’으로 소비자 사로잡는다
뉴 노멀과 관련해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접했던 단어가 ‘파괴적 혁신’이었다. 지난 20여년간 성장기 시대, 좋은 프로덕션을 기반으로 성장한 만큼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자기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적인 기업 나이키가 일본 도쿄 캣스트리트의 우라하라 셀렉트숍 Fragment design과 콜래보레이션 상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글로벌 브랜드가 일본의 작은 셀렉트숍에 디자인을 의뢰한 것은 물론 신발 디자인에서 「나이키」의 상징인 Swoosh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자기 파괴적 혁신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최근 제빵업계에 나타난 ‘이지바이(Easy buy)’ 또한 혁신적 사례로 평가됐다. 이 회사는 파리바게뜨 등 메이저 기업으로 인해 실직자가 된 실력좋은 제빵사를 직원으로 채용시켰으며, 반죽한 재료를 배달시켜 경험이 적은 제빵사들이 매뉴얼대로 빵을 굽는 것과 달리 실력좋은 제빵사들이 맘껏 실력 발휘를 하도록 했다. 특히 마진율은 높지만 재고부담이 있는 케잌은 과감히 없앴다. 대신 빵집의 본질이자 본인들의 강점인 ‘빵’에 더 많이 투자해 품질을 높이는 대신 가격은 30% 이상 낮췄다. 유통은 메이저 바로 옆에 붙임으로써 실력 대결로 맞섰다.
이러한 이지바이의 과감한 혁신은 압구정동, 잠원동, 목동, 대치동 등 입맛 까다로운 강남 아줌마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패션 시장에서는 「라파레뜨」와 같은 브랜드가 혁신적 사례를 보여줬다. 보끄레머천다이징의 「라파레뜨」는 유럽과 홍콩 등에서 10여개 핸드백 브랜드를 수입해 국내에 전개했다. 초기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메인이었으며, 이후 오프라인 직영점과 대리점을 개설했다. 지난해 직원 5명이 올린 매출은 270억원에 이르렀으며 순이익율이 10% 상회했다. 이 브랜드에는 디자이너도 없고, 자가 브랜드도 없지만 어떤 브랜드보다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가 변했고, 잡화 시장의 새로운 틈새 시장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진입했기에 단기간에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블루오션은 레드오션 속에 있다
국내 패션업계에서 뉴 노멀의 전형은 「지오다노」였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함께 급성장한 「지오다노」는 이후 후발 브랜드들과 함께 ‘이지 캐주얼’이란 거대 시장을 창출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콕스」란 스타 브랜드의 출현과 트렌드 변화, 「크로커다일레이디스」를 필두로 여성 소비자들의 이탈, 이후 아웃도어 캐주얼 고객의 이탈 등으로 이지 캐주얼 시장은 급격한 하락세를 겪는다.
「지오다노」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이 무리하게 추진한 점포 대형화로 인해 2000억원을 훌쩍 넘었던 외형은 반토막 났다.
그러나 「지오다노」는 지난해 캐주얼 시장 1위 브랜드로 다시 올라섰다. 외형도 전성기 수준을 회복했다. 경쟁사들이 성장기 시대 무모하리만큼 외형을 키우다가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해 스스로 무너졌지만 「지오다노」는 특유의 시스템 경영으로 재기했다.
특히 「유니클로」란 절대 강자의 확장 속에서도 V넥 티셔츠, 셔츠, 면바지 등 아이템별 경쟁력을 키운 뉴 노멀 전략으로 새로운 퍼플카우를 만들 수 있었다.
동종 마켓의 「유니온베이」의 부활도 주목된다. 이 브랜드는 「지오다노」 이전 중저가 마켓을 형성했지만, 이지 캐주얼의 득세로 존재감마저 미약했다. 그러나 이 브랜드는 지난해 450억원 매출에 39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미얀마 직영공장을 활용해 면바지, 셔츠, 점퍼 등 킬러 아이템을 시즌별로 준비함으로써 본질 경쟁력을 높였고, 아웃렛쇼핑몰과 지하철 역세권 내 소형 매장(33㎡ 이하)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유니온베이」는 향후 주택가 슈퍼마켓과 제과점 옆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생필품화’ 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루이까또즈」 또한 평범한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5, 6년 전만 하더라도 핸드백 시장은 많아야 300~400억원 시장으로 주요 기업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시장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품질과 디자인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대신 매년 10% 이상 판매가를 인상함으로써 5년만에 외형은 4배인 2100억원, 경상이익은 10배인 300억원을 기록했다. 남들은 레드오션이라고 발을 뺐지만 이 회사는 매년 투자를 늘려 놀라운 성장을 이끌어 냈다.
주얼리 브랜드 「제이에스티나」또한 동일 시장에서 인식의 변화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해 뉴욕 플라자호텔 입점을 계기로 파인 주얼리 「이에스돈나」를 프리미엄 라인으로 흡수한 전략은 「제이에스티나」를 또 한 번 주목받게 하고 있다. 이 회사 또한 ‘Top line’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있다.
프로세스 혁신으로 진정한 파트너십 맺어야
국내 패션산업은 80~90년대 국내 생산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후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지만 때마침 개방된 중국은 우리에게 또다시 안정된 소싱 기반을 제공해 줬다. 즉 지난 10년간 한국 패션기업들은 ‘차이나 특수’를 기반으로 소싱에 대한 고민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 위안화 상승과 인건비 상승, 더욱이 중국 내수 패션 시장의 성장은 더 이상 ‘메이드 인 차이나’가 저렴한 소싱처라는 인식을 바꾸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더 이상 작업지시서만 프로모션이나 하청업체에 던져서는 제 때 상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화에 직면했다. 그나마 볼륨이 되고, 선기획 시스템을 갖춘 중견 기업들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로 진출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진정한 파트너십 형성’이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디자이너에게 비싼 인건비를 지급하면서 하나의 스텝으로 활용해서는 효율을 내 수 없다. 패션기업 디자이너들은 숫자를 줄이더라도 보다 자기 완결성 있는 일을 해야하고, 다양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ODM 및 인디 디자이너들을 과감히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패션기업 디자이너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제 때 잘 팔릴 수 있는 아이템’을 잘 기획하는 파트너를 발굴하고, 그들이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동반 성장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포에버21」과 거래 중인 한 ODM 기업은 “1000여개의 실력있는 벤더가 매주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한다.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재와 스타일을 개발하기 위해 매월 디자이너를 유럽으로 시장조사 보내야 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동남아 등지를 돌며 실사하고 있다”고 한다. 마진율도 낮고 거래하기도 까다롭지만 △개발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연간 스케줄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이 해외 시장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또 1만여명이 활동한다는 동대문 시장 또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디자인 소싱처로 전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업 외부에 존재하는 콘텐츠를 내부 자산으로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뉴 노멀은 절대 신제품이 아닌 기존 시장에서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만드는 것이다.
인재는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국내 패션기업들은 핵심 인재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고 있다. 특히 패션은 감성산업이기 때문에 한 두 명의 디자이너와 디렉터가 브랜드의 성장을 이끈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에서 대다수 기업들, 특히 제일모직과 같은 대기업들은 두 배 이상의 연봉을 제시해서라도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영입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초기에 반짝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1년이 채 안돼 경영진은 ‘본전’ 생각에, 영입된 사람은 ‘환경’ 탓을 하며 헤어진다.
패션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외부 스타급 인사는 내부 시스템이 안정된 이후에는 프로모션 개념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시스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또다시 한 두 명에 의해 브랜드가 좌지우지 되는 단기 전략이 될 수 밖에 없다.
최근 만난 한 경영자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실력이 우수하다. 기업이나 간부들은 이들이 자기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디렉터나 실장이 늘 주도하고 나머지는 스텝으로 활용해서는 미래가 없다. 상향식 상품기획을 통해 내부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테일 전문인력에 대한 부족도 패션업계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상했다. 국내 패션산업은 과거 공급자 중심의 프로덕션 시대에서 수요자 중심의 리테일 시대로 진입했다. 그러나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 인력은 디자이너와 MD, 생산관리자, 대리점 개설영업 등 공급자 시대에 걸맞는 사람들이다. 상권과 점포의 특성에 따라 구성 상품을 차별화 해서 효율을 내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해 상품기획에 반영하는 리테일 전문인력은 현저히 부족하다. 대학교육은 강사진과 커리큘럼 변화에 한계가 있는 만큼 관련 단체와 기업들이 공동으로 이 부문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브랜드와 비즈니스 모델의 싸움
최근 국내 패션 유통 시장에는 멀티 브랜드숍에 이어 셀렉트숍 오픈이 활발하다. 유니크한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반영해 한 매장에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인을 복합으로 구성하고 있는 셀렉트숍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LG패션과 CJ오쇼핑, 동양메이저 등 대기업과 엠케이트렌드, 에이션패션, 아이올리, 현우인터내셔널 등 중견 패션기업들까지 가세함으로써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다.
셀렉트숍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부동산 임대료 △다양한 콘텐츠 공급 한계 △효율 관리할 리테일 전문인력 부족 등 패션업계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
특히 백화점 못지 않은 높은 판매수수료를 받는 ‘위탁제’는 국내 리테일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악행으로 지적받고 있다. 초기 재고 리스크 등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시스템 및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라도 ‘사입제’를 통해 국내 패션 콘텐츠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셀렉트숍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홀세일 마켓’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영세 개인 사업자들이 주류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규모를 늘리고, 제대로 된 마케팅을 병행하는 전문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홀세일 마켓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이스트팩」 「스페리」 「케즈」 등을 수입 판매하는 네오미오(대표 조용노)는 지난해 설립 2년차에 15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국내 패션 시장의 이슈인 ‘인디 디자이너(인디스)’의 미래도 기대된다. 이들은 아직은 상업성과 지속성 등에서 일부 한계가 있지만 매스와 유니크함을 변행해야 하는 국내 메이저 패션기업과 제휴하거나 해외시장을 지속적으로 진출한다면 홀세일 비즈니스의 좋은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 채널의 변화
새로운 유통 채널에 대한 고민도 활발하다. 지금까지 국내 패션산업을 성장시킨 모델은 90년대는 백화점 중심 영업에, 그 이후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의존한 형태였다.
이러한 모델은 90년대 수많은 여성복 기업을 성장시켰으며, 프랜차이즈는 영 캐주얼에서부터 최근 아웃도어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매스 밸류형 기업을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 또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매년 상승해 37~39%에 이르는 백화점 판매 수수료는 백화점 판로의 한계에 이르게 했다. 또 프랜차이즈는 상권 분화와 임대료 상승, 판매사원 인력난 등이 겹치면서 더 이상 메리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주요 패션기업들은 새롭게 부상할 도심형 또는 교외형 패션 스트리트에 대한 공동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된 올해부터는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더욱 다양하게 변화할 것이며, 이에 걸맞는 유통 채널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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