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일 시대는 한 발 먼저

2011-06-02 김묘환 CMG 대표 

한국 패션 산업 선진화를 위한 어젠더 – 리테일 시대 생존 전략

 



국내 패션 산업은 △1970년대 중반 대기업의 시장 개척 이후, △중소 전문 기업들의 노력에 의한 1990년대 여성복의 비약적 발전, △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캐주얼 중심의 시장구조 개편과 현재의 아웃도어 붐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 파이의 확대 단계에까지 정말 스폰지처럼 뛰어난 흡수력을 토대로 선진국들이 조금 앞서서 보여준 그것들을 가차없이 빨아들이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선진국 패션 산업의 모습을 검증해 보자. 정체되거나 축소되고 있고 쇠퇴의 기미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소위 말하는 패션 선진국들의 현재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글로벌화 하지 못하고 자국, 조금 확산시켜서 유럽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 같은 나라들의 패션 산업은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로컬 패션에 머무르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은 다시 표현한다면 우리도, 한국의 패션 산업도 지금 상태로라면 유럽의 패션 국가들처럼 이제 쇠퇴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로컬의 제조업 중심 구조 발상에서 바라보는 ‘어패럴 산업=패션 산업’이라는 시각을 표현한다면 정확하게 들어 맞을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국내 패션계 내부에서 상품 기획능력의 고도화가 촉발시킨 치열한 경쟁 환경의 결과를 살펴 보면, 분명한 공급과잉과 획일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신용 창조 혹은 수요 창조라는 허상 마케팅을 통해서 일정 기간 동안 산업 구조가 연명할 수 있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하지만 연명 구조라는 취약한 환경을 딛고 살아난 기업 경영의 그늘에는 분명 우리가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칭하는 경계면의 변화가 더 크게 스며드는 그림자가 느껴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희망 섞인 표현으로 ‘리테일 시대’의 도래를 거론한다. 도대체 리테일 시대는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경계면의 변화가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여 질 수 있을까.



‘리테일 시대’의 정의는?



리테일(Retail)의 사전적 의미는 소매, 소매 행위 혹은 폭넓은 판매란 의미로 규정 된다. 도매(Whole sale)의 반대어로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 리테일 시대의 의미를 논할 가치 조차 없게 된다.
리테일 시대에 대한 고민은 사실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IMF 이후 기형적으로 성장해온 이지 캐주얼이 매스 프로덕트 시대의 프로덕트 아웃(Product-Out) 형태의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우리 업계는 마켓 인(Market-In)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것이 불과 5~6년 전 이었고, 이때 하던 이야기들이 사실 우리가 말하는 리테일 시대의 전초라고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 이 때도 우리들이 고민하던 것은 본사의 관리가 매장까지 얼마나 잘 침투하는가에 대한 출발선은 과거와 다름 없었지만 접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급자 중심의 일방 구조에서 벗어나 수요자가 있는 곳에 상품을 들여놓자는 발상이 마켓인 시대였다면 지금 이야기 하는 리테일 시대에는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공급자와 수요자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시장 내 정보전달 체계가 뒤섞인 상태까지를 의미하게 될지도 모른다.



채찍 효과
경영학 용어 중에 시장의 역동성을 제공하는 요소 중에 정보 왜곡(Information Distor tion)이란 용어가 있다.



채찍(Bullwhip) 효과라고 말하는 정보 왜곡은 공급체계 안에서 시장과 멀리 떨어진 순으로 왜곡이 크게 발생하는 과정을 카우보이들이 사용하는 채찍의 파장 전개로 표현해 내고 있다. 시간과 공급량의 상관관계가 채널 별로 왜곡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해서 매스프로덕트 시대의 시장의 역동성을 표현한 MIT 슬로안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였던 포레스터(J.W. Forrester)의 오래된 이론이지만, 현재 우리가 왜 리테일 시대의 의미를 중요시 하는 지에 대해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포레스터가 50년 전에 주장한 것처럼 공급자 중심의 구조는 시장에서 왜곡을 쉽게 불러온다.



우리가 경험했던 것처럼, 패션 산업에서는 왜곡이 발생했을 때 기획 실패니 운이 안 따르니 하며 사람 탓을 하거나 조상 탓을 하는 분위기로 넘겨도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었지만 디지털 혁명이 불러온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면서는 이러한 공감대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분이 안 되던 기업간 수준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공급 사슬에서 가치 사슬로



‘공급 사슬’ 구조에서 ‘가치 사슬’ 구조로 이전하는 단계에서 우리 업계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공급자에서 소비자까지 가는 구조 속에서 기획과 예측, 조달, 생산, 물류, 시장의 단계에서 개별 기업들은 리드 타임을 압축하고 효율화 하기 위한 여러 방법론을 추구해 왔다.



여성복의 대표 주자 격인 H사 같은 경우는 기획과 조달은 여유 있게 준비하고 생산에서 시장에 이르는 과정은 최대한 압축하는 전략으로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오랜 시간 점유할 수 있었다. 분명히 강력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기업도 매각작업이 진행 되고 있다는사실이 현재 한국 패션업계에 다가오는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분명 공급 사슬 구조만으로 본다면 H사는 비교 경쟁 우위를 누리는 좋은 기업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가치 사슬 구조상으로 본다면 공급자 중심의 프로토콜을 가지고 같은 지위를 누린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가치 사슬 상에서는 무게중심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부터 이동하는 것이고 이러한 구조상에서 무게 중심이 몰려있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해서 단순 제조 업자인 과거 프로토콜의 소유자들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케팅이 있지 않냐고….



안개 시야(Fog Scope)를 헤치고
공급 사슬 관리에서 물류, 매장 그리고 소비자에 이르는 과정을 우리는 안개 시야(Fog Scope)라고 표현한다. 이 과정에 일어나는 많은 것들이 불투명하고 부정확하고 실체 확인이 힘들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태어났으리라 본다. 이 과정 안에 일어날 사실들에 대한 정확한 연구 접근이 리테일 시대를 생존해 나가는 첫 번째 행동이 될 것이다. 너무 많은 공급자 중심시대에 젖어 있는 행동양식들이 우리들한테 다가오는 분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인지, 위기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기로에 서게 만든다.



분명한 것은 마케팅이나 트렌드 같은 공급 사슬 중심의 시장을 뛰어넘어 기업의 이미지와 철학이 생존을 결정하는 가치 사슬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가 이동하는 과정이나 방법론이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매 단계에서 문제와 해결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으며, 이 시대를 ‘리테일 시대’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안개 시야를 걷어내는 방법론 학습, 이것이 리테일 시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일 듯 하다.



다음 호엔 선진국은 리테일 시대를 어떻게 맞이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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