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패션사업 안돼” 편견을 깨다
2010-03-12 김우현 기자 whk@fi.co.kr
자본 앞세워 여성·해외 사업까지 전방위 세력 확장, 제일모직·LG패션 오너체제 전환 후 공격경영 박차
‘로우로우’ 플래그십스토어 홍대점
글(로벌)·마(케팅)·패(션감각) 정조준
패션사업 만큼은 대기업이 성공할 수 없다는 패션계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급변하는 트렌드와 소비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따라잡기엔 층층시하 결제 라인이 많고 의사결정이 더딘 대기업 보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가벼운 중소기업이 순발력에서 앞선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지구촌이 한가족처럼 소통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최신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나이와 복종 구분조차 무의미해진 상황에서는 오히려 탄탄한 자본력에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한 고급 인력 시장을 꿰뚫어 보는 선진형 마케팅 기법 등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하는 대기업의 시장 장악력이 갈수록 커질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남성복처럼 투자비가 많이 소요되는 장치산업형 복종이야 애시당초 대기업의 독무대였지만, 최근에는 캐주얼·스포츠·골프웨어는 물론 심지어 여성복 부문에까지 대기업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세력이 커지고 있다.
제일모직은 원래 「갤럭시」 「로가디스」 「빨질레리」같은 신사복 브랜드와 「빈폴」을 위시한 캐주얼 의류가 패션사업의 주종이었다. 하지만 오너 중심 체제로 바뀌면서 여성복은 물론 해외 수입 브랜드 부문에까지 손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 좋은 예가 여성 캐릭터 조닝에서 국내 정상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구호」를 꼽을 수 있다. 디자이너 정구호가 론칭한 「구호」를 2003년 인수해 국내에선 최초로 대기업과 디자이너와의 환상적인 결합이란 평가를 받으며 연 평균 50%대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는 효자 브랜드로 키워냈다.
제일모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세이 미야케」 「띠어리」 「르베이지」 등 독특하면서도 차별화된 여성복 브랜드를 잇따라 출시하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특히 4050 뉴 시니어층을 겨냥해 작년 봄 론칭한 「르베이지」의 경우 기존 부틱 브랜드와 완벽하게 차별화되는 모던하면서도 트렌디한 감성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침체 속에 허덕이던 디자이너 캐릭터 시장의 단비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빈폴」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폴로의 아성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며 국내 캐주얼 시장의 제왕으로 등극했으며, 올 초에는 미국 명품 잡화 브랜드 「토리버치」를 도입해 또다른 신화창조에 나서고 있다.
여세를 몰아 제일모직은 올해부터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 진출에도 가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미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최근 2년간 주도면밀하게 중국 시장 을 분석한 결과치를 바탕으로 13억 거대 시장 공략을 본격화 하겠다는 것. 또 내년 봄에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신규 아웃도어 브랜드를 론칭하겠다는 등 전방위에 걸친 패션사업 확장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LG패션의 공격경영도 세간의 관심을 끈다. 2006년 12월 LG상사에서 분리된 후 구본걸 사장 오너 체재로 일사불란하게 조직과 브랜드를 재정비한 LG패션은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기존의 신사복·캐주얼·골프웨어 중심에서 여성복과 스포츠 멀티숍·해외 수입 브랜드 부문으로 영토를 확장해 가고 있다. 특히 차세대 주력 브랜드인 여성복 「모그」의 모델로 세계 최정상급 알렉사청을 기용, 올해를 ‘여성 캐릭터 톱3’에 진입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며 의욕을 다지고 있고, 지난달에는 문정동에 국내 최초의 스포츠·아웃도어 전문 멀티숍 「인터스포츠」 1호점을 오픈해 새로운 도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여기에 글로벌 SPA 지향의 한국판 ‘브룩스브라더스’를 꿈꾸는 「TNGT」를 세련된 비즈니스맨·우먼을 위한 토털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명동·논현동·가로수길 등에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따라 오픈하는 뚝심을 발휘하며 유통가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여성복 사업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블루마린」 인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동을 건 LG는, 지난해 또다시 「질스튜어트」 「바네사브루노」 「레오나드」 「이자벨마랑」 「조셉」 등 여성 수입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동시 다발적으로 인수하는 저력을 과시하며 업계의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다.
이와는 별도로 신수종 사업의 일환으로 외식사업에도 진출, 자회사인 LG푸드를 통해 하꼬야·마끼노차야 등의 씨푸드 레스토랑과 하꼬야 생라멘 전문점까지 운영하는 남다른 수완을 보이기도. 최근에는 150년 전통의 영국 클래식 부츠 브랜드 「헌터」와 국내 독점 수입 계약을 체결했는데, 본격적인 매장 전개를 시작하기 전부터 패션리더층을 중심으로 ‘레인부츠’ 붐이 일면서 마켓 테스트용으로 들여온 상품이 바닥날 정도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유통 관계자는 “국내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면서 해외 브랜드와 대항하기 위한 패션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행보는 앞으로도 열기를 더해갈 것”이라며 “이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으려면 품질·가격·마케팅력 등에서 글로벌 최강 수준의 내공을 쌓는데 핵심 역량을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