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에서 나와야 진짜 브랜딩이다

2009-07-17 김정명 기자 kjm@fi.co.kr


김유진 태진인터내셔널 마케팅부문장이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번째 책 ‘브랜드 브랜더 브랜딩’을 출간했다.

이 책은 2006년 중반부터 2년 6개월 동안 <패션인사이트>에 ‘김유진의 브랜드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한 데 엮은 것이다.

저자는 “시중에 브랜드 관련 서적은 넘쳐나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씌여진 책이 없다”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어느 분야에서든 스스로 할 수 있는 브랜딩 방법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브랜드 브랜더 브랜딩’은 크게 세가지 파트로 나누어 진다. 첫 번째 파트는 ‘고수들의 가르침’이다. 여기에서는 저자가 교육을 통해 배운 내용을 토대로 했다. 교육, 강연, 세미나 등 학습을 통해 익힌 고수들의 이론을 일상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례를 통해 풀어냈다.

두 번째는 ‘선배들의 가르침’이고, 세 번째는 ‘일상의 가르침’이다. 저자는 “한번 배운 자전거 타기는 단순히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체득되듯이, 체험을 근간으로 한 브랜딩은 부지불식간에 작동된다. 우리는 매순간 수많은 브랜드들과 연결되어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수십, 수 백개의 브랜드에 의지해 살아간다. 우리 자신마저도 하나의 브랜드이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모든 경험들은 지렛대처럼 브랜딩에 활용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도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랜딩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책의 주요 부분을 발췌, 정리했다.


‘처음처럼’ 이야기

지난 봄 성공회대 신영복교수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에 대해 아는 사실이라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몇 장 들추어 본 기억 밖에 없는 저는 큰 기대 없이 강의장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신 녹록지 않은 인생역정이 녹아든 이야기들은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었습니다.

그 중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자면, 소주회사의 신제품 네이밍과 B.I를 의뢰받고 고민하던 지인(知人의) 부탁을 받고는 본인께서 쓰신 시(詩)의 제목을 친필과 함께 흔쾌히 제공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 디자인 모티브는 그대로 네이밍과 로고타입으로 채택되어 브랜드로 탄생하게 되었으니 <처음처럼>이라는 소주가 바로 그 브랜드입니다. 업계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중 제품의 대표격인 소주에 자신의 글귀와 글씨가 그대로 새겨지게 되자,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돈을 받고 팔 수 없다며 신영복교수는 사례를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처럼>을 내어주신 순수한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소주회사 대표와 디자인회사 대표는 지원금을 출연하고, 이를 모아 1억원의 목돈을 조성하였답니다. 그 돈은 '처음처럼 장학금'이라는 명칭으로 그분이 재직하는 성공회대에 기부되어 학생들의 면학을 위해 쓰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술은 못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따스한 사연을 가진 브랜드는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소주시장에서 현격한 열세를 보이는 회사에서 새로운 브랜딩작업을 통해 시장의 진입을 노리는 것이었기에 더욱 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처음처럼>은 20도 소주의 첫 시대를 여는 브랜드라는 의미와 술 마신 다음날 원래 상태로 회복되는 시간이 빠르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언뜻 보기에도 네이밍과 브랜드의 속성, 의미가 일부러 지어낸 것처럼 기막히게 맞아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품에 사용되도록 허락한 신영복교수의 배려와 평소에 좌우명으로 여기던 그 글귀를 브랜드의 가능성과 연결시켜 내다본 디자인회사 대표의 안목, 또한 이전에 없던 모험적인 시도를 과감히 포용한 광고주의 결정, 이 세 사람 모두의 열린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멋진 브랜딩 작업은 절대 불가능한 일 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7월 어느날 우연히 신문기사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게되었습니다. <두산의 소주 '처음처럼'이 누적 판매량 1억병을 돌파하며 전국 시장 점유율 10%를 눈앞에 두고 있다. 두산은 지난 2월 출시된 '처음처럼'이 출시 5개월 11일만인 18일 누적 판매량 1억병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는 진로의 '참이슬' 출시 당시 1억병 돌파 기록보다 1개월 가량 빠른 기록이다. ‘처음처럼’은 지난 6월 전국 소주시장의 9.4% 점유율을 기록 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각각 17.8%, 11.7%에 이른다. 한달 전인 5월과 비교해보면 전국점유율은 0.7%포인트,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2.6%포인트, 0.6%포인트가 각각 증가했.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머지 않아 서울에서 팔리는 소주 5병 중 1병은 처음처럼이 될 것 같다>

특정 제품을 홍보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차별화된 시도를 통해 런칭한 브랜드가 어떠한 히스토리를 만들며 성장해 가는지, 브랜딩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비자와 기억창고

요사이 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여기저기에서 “브랜드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브랜드관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거나 나름대로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브랜드를 관리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지각(Perception)을 관리하는 것’ 입니다. 여기서 지각은 관념이나 인식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객관적인 사실(Objective)보다는 소비자가 그 사실을 주관적(Subjective)으로 해석하는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해석은 학습과 경험과 역사를 통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맥주회사에서 같은 제품을 가지고 블라인드테스트를 한 후 A는 유명브랜드 제품이라 알려주고 B는 선호도가 떨어지는 브랜드라고 알려주면 후자의 제품이 맛이 없다고 답하는 소비자가 의외로 많이 나타난 사례가 있습니다. 현대 마케팅에 있어 ‘소비자행동론’(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나 ‘소비자심리론’(행동속에 숨겨져있는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단계로 해결할 문제를 인식합니다.(ex)(아 왜 이렇게 목이 마르지?) 다음으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합니다.(뭘 마실까...그래 시원한 맥주가 좋겠군. 근데 어떤 맥주가 있었더라?)그리곤 대안을 평가하고 결정하지요(음..A,B,C맥주가 있지, 아무래도 물이 좋다는 B맥주로 마시자!)마지막으로 제품을 구매하고 평가합니다.(역시 B맥주는 맛이 좋아 or / 어, 생각보다 맛이 별로네 다음엔 다른 맥주를 마셔 봐야겠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구매의사 결정과정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단 몇초 만에 일어납니다. 학문적으로는 위의 과정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저관여 제품’이라 하고, 오래 걸리는 것은 ‘고관여 제품’이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광고’를 ‘앞으로 제품을 구매할 사람을 위해 기억속에 브랜드를 입력시키는 활동’이라고 볼때 소비자 구매결정 단계 중 두 번째 단계(필요한 정보를 수집)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자는 일단 자기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검색해 보고 정보가 부족할 경우 추가로 정보를 수집합니다. 따라서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기억창고’가 중요합니다.

예전 제가 배웠던 소비자심리학 과목의 교수님께서는 재미있는 질문을 통해 이 ‘기억창고’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자 우리가 수업을 듣고 있는 이 방엔 수 십명의 학생이 있지만, 강의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는 앞문 하나 밖에 없고, 강의실 내에 갑자기 불이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누가 살아날 확률이 가장 높을까요?” 학생들은 한결같이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가냘픈 여학생’이 살아날 확률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기 맨 뒤 문에서 제일 먼 곳에 앉은 튼튼하게 생긴 체육과 학생은 어떨까?”라고 다시 질문하셨고, 학생들은 일제히 웃으며 아마 저 학생도 운동으로 단련되었고 체력과 스피드가 좋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밀치고라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상황을 기억창고로 바꿔보면 강의실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기억창고 입니다.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여학생은 기억창고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기억’으로 가장 먼저 튀어 나올 수 있습니다. 맨 뒷자리에 있던 체육과 남학생은 ‘예전에 들어왔지만 워낙 강한 기억’입니다. 따라서 먼저 튀어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이와 같이 기업은 소비자의 기억창고 속에 브랜드를 항상 최근의 기억으로 인식시키든지, 아주 강력한 기억으로 인식시키지 않으면 수많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이미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브랜드들도 광고와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속적 브랜드 노출을 통해 ‘아젠다세팅’(Agenda-Setting : 이슈거리 안에 포함되는 현상)이 되지 않으면, 기억창고에서 정보 검색시 ‘구매고려 상표군’(Consideration Set :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의 갯수)에 포함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월드컵에서 일단 본선을 통과해야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이렇게 본선에 자주 들다보면 어느새 강력한 우승 후보로 각인이 되고, 예선 통과도 못하게 되면 어느새 잊혀져 버리게 됩니다. ‘어떻게 제품을 많이 팔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소비자의 지각을 관리할 것인가?‘하는 것은 장기적인 브랜딩을 위해 우리가 늘 생각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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