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EU FTA ‘빛 좋은 개살구’

2009-07-17 김경환 기자 nwk@fi.co.kr

유럽산 명품ㆍ중저가 패션 수입에 무방비 국산 직물ㆍ의류 수출 증가 효과는 글쎄


국내 섬유ㆍ패션 업계는 한ㆍEU FTA 타결로 엄청난 환경 변화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가 철폐되면 국내 시장에 유럽산 명품과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의 진출이 늘어나 국내 중소 패션 업체들의 입지가 더욱 축소되는 반면 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직물ㆍ 의류 업체들은 엄격한 원산지 규정 적용에 따라 혜택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계상으로는 지난 해 대 EU 섬유 수출은 11억 8468만 달러, 수입이 9억 6469만 달러로 무역수지가 2억 달러이상 흑자 구조를 보이고 있다. 주요 대 EU 수출 품목은 폴리에스터SF(1억6177만 달러), 폴리에스터사(1억2269만 달러) 및 폴리에스터 직물(1억2438만 달러), 니트 직물(1억8408만 달러), 니트 의류(1억4279만 달러) 등이고, 주요 수입 품목은 40% 비중을 차지하는 의류(3억9299만 달러)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13일 타결된 한ㆍEU FTA 가 내년 초 비준을 거쳐 상반기 중에 공식 발효되면, 국내 섬유ㆍ패션 산업은 오히려 시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유럽산 명품을 취급하는 백화점들은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브랜드 입점을 늘리며 이 분야 판촉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국내 유통 시장에서 유럽산 명품과 컨템포러리 마켓이 크게 늘어나며 국내 패션을 밀어낼 전망이다.

매스밸류 마켓은 더욱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대다수 국내 중소 패션 업체들은 유럽의 중저가 대형 패스트패션 업체들의 진출이 늘어나 내수 시장을 잠식당할 것을 더욱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히 국내 시장을 지켜만 보고 있던 영국 「톱숍」 「프라이마크」, 독일 「CNA」 등 유럽의 중저가 브랜드들도 속속 밀려들 가능성이 높아졌고, 「자라」 「망고」 등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입지를 넓히고 있는 브랜드들은 관세 철폐로 경쟁력이 향상돼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강화해 시장 장악에 나설 것이 우려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관세 철폐를 계기로 글로벌 소싱을 통해 값 싸고 질 좋은 의류를 공급하게 되면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중소 패션 업체들은 붕괴 직전까지 몰릴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이번 한ㆍEU FTA의 섬유류 원산지 판정 기준은 ‘패브릭 포워드’ 룰을 적용하기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제직된 원단과 유럽산 원단을 사용해야 무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으므로 한ㆍEU 간 원단 교역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사 메이커나 원단 제직 업체는 일부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혜를 누릴 것으로 보이나, 가격경쟁력 우위를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생지를 수입해 후가공하는 경우나 국내에서 디자인해 해외에서 봉제한 경우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1억4279만 달러의 실적을 보인 니트 의류 중 어느 정도가 엄격한 원산지 규정을 적용,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 받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업계 전문가는 “국내 봉제 생산 기반이 미약한 의류ㆍ패션 업계가 한ㆍEU FTA로 당장 큰 혜택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려만 하기보다는 역발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면서 “이를 국내 의류ㆍ봉제 산업 구조를 조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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