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SPA “백화점이 나서라”

2009-05-22 김우현 기자 whk@fi.co.kr

지금이 기회…대형매장 할애 등 파격적으로 문호 개방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형 SPA브랜드를 만들려면 국내 백화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전국 핵심상권에 포진해 있는 빅 3백화점에 비교적 큰 매장 규모로 입점해 그곳에서 해외브랜드들과 경쟁하며 내공을 쌓은 후 세계 무대로 나가야 당당히 겨룰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것도 최소한 330㎡(100평) 이상의 면적을 할애, 다양한 라인업과 완성도 높은 상품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는 것. 한마디로 백화점측이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한국형 SPA브랜드에게 파격적으로 문호를 개방해야 맘껏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백화점에서 대형매장을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꿈 같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최근 A브랜드가 백화점측에 자사의 5개 라인을 한데 모아 팔겠다며 대형 매장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백화점 관계자는 매몰차게 딱 잘라 거절하면서 오히려 괘씸죄까지 물어 각 층에 분산 입점돼 있는 A브랜드 5개 라인의 일괄 퇴점이란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브랜드 육성은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절대절명의 과제”라며 “한국형 SPA브랜드를 키울려면 우선 다양한 라인의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대형 매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해련 에이다임 대표는 지난 15일 섬유센터에서 열린 ‘한국형 패션 비즈니스 모델 개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 자료를 내놨다.

이날 김 대표는 “전세계 유명 패션 스트리트와 패션몰마다 해외 명품 브랜드와 SPA브랜드가 독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라면 ’지금 아니면 늦다’라는 생각으로 서둘러야 한다”면서 “국내 시장도 사정이 비슷해 신세계 강남점의 경우 내셔널 브랜드 비중이 20%가 채 안될 정도로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브랜드의 입지는 갈수록 더 좁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한국형 SPA브랜드의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충족돼야 할까. 먼저 고객 분포가 다양한가, 에이지 타겟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는가, 제품 라인업이 잘 갖춰져 있는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남성과 여성고객을 동시에 커버하되 단지 스타일수만 많아서는 안되고, 영층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게 공략할 수 있어야 하며, 콘셉별 라인 확장이 완벽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한판 승부를 펼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국내 유통 환경상 백화점이 절대 우위에 있고 쇼핑공간이 비좁아 선뜻 브랜드에게 대형 매장을 내주기가 쉽진 않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열린 생각으로 멀리 보면 반드시 길은 있게 마련이다.

최근 유통가에서도 조심스럽게 한국형 SPA브랜드를 육성하는데 백화점이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롯데백화점은 오는 11월 오픈 예정인 부산 광복동점을 시작으로 브랜드 매장 규모를 기존보다 크게 가져가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라인을 갖춘 「빈폴」 「코데즈컴바인」 같은 SPA형 브랜드들에게 최소 330㎡(100평)이상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현대와 신세계백화점은 부천·일산·파주 등 지방 상권의 대형 쇼핑몰을 잇달아 인수하며, 메가숍 구성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에 착수했다는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글로벌 패스트 패션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고, 이들이 대형 로드숍 형태로 중심상권에 진출하거나 유명 디자이너 또는 셀리브리티와의 제휴 등을 통해 세력을 확장시켜 가고 있다”면서 “때마침 국내 유통 채널이 변화하고 있고, 패션업계의 상품력과 마케팅력이 선진형으로 업그레이드된 지금이야말로 한국형 SPA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절호의 찬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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