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글로벌 패션 포럼’의 초청 연사였던 일본의 패션 유통 컨설턴트 코지마 겐스케(小島健輔) KFM 대표는 “일본의 백화점 유통은 망하는 일만 남았다”고 단정적인 선언을 해 한국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준 적이 있었다.
이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백화점의 의미는 그저 유통 산업의 한 축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전부라고 생각하는 한국 패션 업계에도 닥칠지 모른다는, 상상하기도 싫은 데자뷰를 잠시나마 경험 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촉발한 전 세계의 경제 공황적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불황의 국면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패션 업계도 구성원 누구 하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나마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선진국의 유사 사례에 대한 학습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까운 이웃 일본의 사례는 국내 패션 유통업계에 시사하는 점이 크리라 생각한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지인들과 한 시즌 사이 많은 변화가 진행된 일본 유통을 돌아보기 위하여 이른 봄 일본 행을 하였다. 이유는 지난해 가을부터 일본의 패션 유통 중에서 백화점과 글로벌 브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소매 리테일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현장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예년 같으면 화사한 봄 꽃들로 여기저기에서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텐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봄을 재촉하는 궂은 비속에 도착한 도쿄는 날씨 탓인지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가시지를 않았다. 그래도 짧은 일정에 소화시켜야 할 목표가 있길래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다.
지난 헤이세이데프레 16년간 업계가 28.8% 정도 규모가 축소되었고 16년 중 2007년 단 한 해를 제외하고 계속 역 신장을 하고 있다면, 코지마 대표의 말대로 일본 백화점은 사라질 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들 생각에 일본의 백화점 업계는 정말 속수 무책이라고 할 정도로 위기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일본의 백화점이 사양길에 들어섰다는 사실보다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일본 백화점 업계가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패션 업계와 벌인 상생의 노력에 대한 시행착오의 학습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는 신주쿠 이세탄 (伊勢丹: 사진1. 신주쿠 이세탄 본점 전경) 이다. 최근의 일본 백화점의 통합·재편 드라마에는, 업계에서 초 우량 기업이라고 불리는 이세탄 이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이세탄의 톱 경영자인 무토 신이치(武藤信一) 사장(현 미츠코시이세탄 홀딩스 회장)은, 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백화점 업계는 구조적인 시장 축소로 인해, 4개 그룹 정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해왔다.
2007년 9월 다이마루(大丸)와 마츠자카야(松板屋)가 경영 통합을 통해 ‘J Front Retailing’으로 태어나기 전에 먼저 마츠자카야와 통합을 시도한 것은 이세탄이었으며 이 시도로부터 업계 재편이 가속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이후 2008년 4월에 경영 통합해 새롭게 다시 태어난 ‘미츠코시 이세탄 홀딩스’에 대해서도, ‘미츠코시’가 회사명의 앞머리에 오지만, 경영 통합의 주식비율(1:0.34)로도 알 수 있듯이 실질적으로는 이세탄에 의한 미츠코시의 M&A로 업계에서는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점이 이세탄의 위상을 가늠하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이세탄의 영향력의 원천은, 수익율 4.8%라는 업계 최고의 수익력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백화점 업계에서 수익율이 4%를 넘는 것은, 다이마루(4.4%)와 한큐 백화점(4.1%) 밖에 없다. 이세탄의 또 하나의 강점은 상품 개발력이다. 특히 신쥬쿠 본점은 오랫동안, 여성 용품을 중심으로, 최신의 상품(패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여성이라면 반드시 체크하러 가는 곳이니 말이다. 최근 들어 일본 남성들의 패션에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오픈한 지 6년째를 맞이한 이세탄 남성관도 평가가 아주 좋은 편이다.
이러한 점들이 소위 ‘패션의 이세탄’이라고 불려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 상품 개발력의 힘은, 자주 편집 매장의 확대와 이익율이 높은 오리지날 브랜드의 상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힘을 기울여온 결과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세탄의 사업 전개는, 백화점이 목표로 하는 방향성을 보여주기에, 다른 백화점도 주목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신주쿠 이세탄의 전설적인 PB Floor ‘BPQC’가 효율 저하에 따른 활력 상실을 이유로 ‘Isetan Girl’로 다시 태어난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 2층부터 찾았다.(사진 2, 3, 4. Isetan Girl) IT Girl은 한 시즌 만에 일본의 유통업계로부터 모녀 소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Isetan Girl(IT Girl)은 ‘현실과 이상 사이’, ‘하이엔드와 로엔드의 공존’ 등의 콘셉을 가지고 for IT Girl, for Campus, for Communication, for Weekend, for Private의 다섯 공간으로 구성 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사진 3의 광고판에서 내걸었듯이 플로어 전체가 소녀들을 위한 옷이란 슬로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상품구성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스타일들로 구성되었는데 실제는 모녀소비를 표적으로 삼아 경제력과 감성욕구를 결합시킨 고객의 패션 소구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점을 반영하듯이 사진 4에 나타난 것처럼 실제 매장 내 구매 고객은 모녀 혹은 삼대에 걸친 고객층과 장년층 여성 단독 빈도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정말 ISETAN의 양파껍질 같은 능력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일본 백화점 업계의 이단아 마루이였다. ‘이단아’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일본 백화점협회에 가입도 안 하고 백화점 업을 영위하는 것만 보아도 이단아란 표현이 어울릴 듯 하다. 지난해부터 마루이 유통의 핵심인 신주쿠 마루이 계열들은 ‘신주쿠 21세기’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전 점포가 대대적인 리뉴얼에 돌입했었다.
이중 1차적으로 2월 말에 과거의 영마루이가 마루이 커렌MARUI CURREN (사진5. 마루이 커렌)으로 오픈을 하였고 다른 점포들은 오는 4월 24일 재 개장을 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공사중인 현장을 방문했다.
마루이 커렌의 경우는 출범 모토가 ‘패스트 패션에 대항하는 백화점 형 패스트 패션’이라고 내걸고 요란(?)을 떨었기에 자연히 관심과 흥미가 높을 수 밖에 없었는데 실제 현장에서의 모습은 조금 실망스럽다. 실제로 지하 2층 지상 8층의 공간에 패스트 패션에 대항하는 구성은 2층의 유니크로와 6층 잡화 코너에 위치한 웹스토어에서 진화해 온 Salus 정도 밖에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4월 24일 재 개장한다는 마루이 본관에 대한 기대감마저 공수표가 아닐까 걱정하게 만들 정도로 마루이 커렌은 실망스러웠다.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