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7 정인기 기자 ingi@fi.co.kr
정부, 무관심·무대책 일관 ‘패션코리아’ 미래 암울
유통 후진성 영원히 못벗어… 입점 이후가 더 걱정
상황 1: 지난 2월 25일 여성복과 캐주얼 시장을 대표하는 일부 패션업체 경영자들은 롯데백화점에 순차적으로 호출을 당했다. 가을 상품 품평회와 신규 오픈 매장 챙기기로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갔다. 롯데에서는 실무자는 물론 임원진까지 동원해 ‘막판 쪼기’로 밀어붙였다. 대부분 기업들이 각 상품군에서 1, 2위 하는 브랜드를 전개하는 책임자였지만 자신 있는 소신 발언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상황 2: 지난 2월 24일 한 남성복업체 임원은 롯데백화점서 걸려온 전화 한 통화에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가 운영하는 브랜드를 신세계 센텀점에 입점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에 대해 롯데측에서 “명동 본점과 잠실점을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잠실점은 지난해말 1억원의 인테리어비를 투자한 매장. 그는 부산을 다녀온 후 신세계 입점을 포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신세계는 이 브랜드의 다른 신세계 매장에서 모두 철수할 것을 통보 받았다.
요즘 국내 패션업체 경영자들은 백화점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 오픈을 앞두고 롯데와 신세계 양대 공룡 백화점 싸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부 경제신문과 공중파 TV까지 나서 이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지만 백화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3월 2일 그랜드 오픈이 임박함에 따라 압박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방법도 더 치졸해지고 있다는 것이 업체들의 설명이다.
지난 2월 26일 현재 상황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포진해있는 남성복과 스포츠 상품군은 대부분 마무리됐지만, 유독 여성복과 캐주얼 상품군에서는 막판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여성복업체 사장은 “차라리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모든 복종에서 입점 방해 행위가 있었으면 위안이라도 되겠다. 힘없는 중소업체들이 대부분인 여성복과 캐주얼 업체들에게만 ‘횡포’를 부리는 백화점의 행태가 한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장은 “자사 유통에만 입점하길 원한다면 판매수수료 조정이나 백화점 차원의 경쟁력 있는 영업전략 등 그에 상응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지난 1년 동안 신세계의 영업활동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았음에도 특별한 대응이 없다가 막판에 이러한 막무가내식 조치를 취하는 것은 우리 유통업계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쟁사와 10m도 안떨어진 곳에 백화점을 오픈하면서도 사전에 경영자 선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신세계의 전략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캐주얼업체 임원은 “1조원에 이르는 자금투자나 오너 차원의 강력한 지시 등이 있었다면 경영자 간 협의나 경쟁사가 비교할 수 없는 차별화된 영업전략, 혹은 미래형 콘텐츠 등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막연히 규모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한 신세계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10여개 브랜드의 입점이 어렵게 된 신세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패션업체의 공식적인 입점이 어렵게 되자 브랜드별 인테리어 시안을 신세계에서 제작하고 있으며, 오픈 당일에는 임시매장이라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롯데 입장도 단호하다. 신세계에서 인테리어를 시공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으며 입점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명동점과 잠실점 봄철 MD개편도 미뤄놓은 만큼 이번만큼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다. 지식경제부에 이어 최근에는 문화부까지 나서서 패션산업을 미래형 산업이라며 애정을 표시하고 있지만, 정작 패션기업이 처한 곤경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있지만 마지못해 두들기는 솜방망이로는 국내 유통산업의 후진성 탈피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오늘(2일)이면 어떻게든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오픈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것이 패션업계 시각이다. 입점했다면 롯데에, 입점 안했다면 신세계의 보복에 중소 패션업체는 어떤 대가를 치를지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패션·유통산업 선진화를 위한 대국적인 차원에서의 심도있는 논의가 절실하다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염원이다.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