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10 박찬승 기자 pcs@fi.co.kr
‘아시아 패션메카 동대문’을 위한 제언
중국에서 원저우(溫州) 상인은 상도와 상술의 귀재로 불린다. 천성적으로 뛰어난 장사수완으로 원저우인들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중추세력으로 부상했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원저우 상인들은 전세계 화교 자본의 뿌리가 되었고 거대한 부를 축척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원저우 상인들을 가리켜 ‘중국의 유태인’으로 부른다. 원저우 상인의 도전과 모험심에 대해 등소평은 “우리는 원저우의 모험가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새로운 중국 건설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 동대문은 지금 값싼 중국 제품의 침투로 변혁기를 겪으며 비상과 추락의 기로에 서 있다. 공교롭게도 원저우인의 상도과 상술에 동대문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중국을 넘어 세계로 뿌리를 뻗고 있는 원저우 상인의 지혜를 통해 동대문 미래 비전을 그려본다.
원저우는 저장성(浙江省)에 위치한 소도시다. 사람은 많지만 땅이 협소한데다, 빈번한 재해로 농업마저 불안정한 지역이다. 동으로는 바다, 서로는 산이 있고 농지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는 황량한 산간지대다. 그렇다고 천연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그럴듯한 국영기업도 없다. 하지만 이런 곳이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이 됐다. 땅값만 해도 한 평에 30위안으로 상하이보다 비싸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부자인지는 연간 증권거래액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지역 일개 증권 영업부의 연간 거래액이 100억위안으로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증권거래액보다 많다.
이처럼 원저우가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곳이 된 데는 원저우 상인의 품성과 기질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뛰어난 장사 수완을 타고난 윈저우 상인들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강한 의지와 도전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제언 1. 강한 독립심과 의지를 갖자
윈저우 상인들은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난관을 헤쳐가야 한다’는 강한 독립심과 의지를 갖고 있다. 원저우에는 ‘남의 부축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손과 발이 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전세계를 무대로 거대한 부를 축척한 윈저우 상인의 보편적 마음자세다. 윈저우 상인은 이러한 가치관에 따라 형제자매를 비롯한 친지간에도 의지하지거나 신세지지 않는다. 기쁜 일이 있으면 친지간에 서로 나누지만, 어릴 적부터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스스로 해결하라고 배워왔다.
지난 1996년 중국 국영기업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난 적이 있다. 당시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은 시 당국에 부모관(청대 말까지 지방의 관료들이 백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사상)을 주장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윈저우에는 이러한 민원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윈저우만 구조조정 바람이 피해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원저우는 퇴직자 수가 10만 명이나 됐고, 퇴직률도 16%로 전국 평균 퇴직률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을 잘 극복한 것은 윈저우 상인의 몸에 밴 독립심과 자강불식(스스로 노력해서 힘을 기른다)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현재 동대문의 소매가 활성화되면서 유행 발신지의 밑거름이 된 것과 달리, 도매 경기는 과거에 비해 많이 위축됐다. 상인들은 최신 유행 패션과 순발력을 제외한 도매 기능, 생산 인프라, 인력 수급 모든 면에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고 말한다. 《동대문 오딧세이》란 책을 낸 이종수 엠에스에이전시 사장은 “과거 호황 때에 비해 도매 기능은 30%, 공장은 40%가 줄었다. 그나마 남은 공장도 사람이 없어 노는 곳이 많다. 장사도 과거엔 열 집 중 여덟 집이 잘 돼, 도매로 돈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장사가 잘 되는 집은 두 집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현상(장사가 과거처럼 잘 되는 집), 진상(안 되는 집), 화상(적자인 집) 비율이 2:4:4”라고 말했다.
최근 도매시장을 보면 과거에 비해 상인들 스스로의 자율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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