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명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소싱 파워

2006-02-08 강범창 기자  kbc@fi.co.kr

제도권을 뛰어넘는 경쟁력으로 한 걸음 앞선 동대문

동대문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이미 마음 자세부터 다릅니다.”

이는 동대문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이 동대문 상인들에게 국내 패션업체들의 디자이너와 비교해 어떤 경쟁력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자주 돌아오는 대답이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들 중 국내 패션 기업에 취직한 사람들과 동대문에 뛰어든 사람들과는 이미 시작부터 다르다는 말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취직 동기를 물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 옷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결국 대부분의 동대문 디자이너들은 언젠가는 자기 매장을 직접 운영해 보고자 하는 꿈이 있다. 때문에 이들의 마음가짐은 내셔널 브랜드 사람들과 달리 매우 적극적이다.

동대문에 매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직원을 규모에 따라 최소 2명에서 일반 중소 패션업체 수준보다 많은 20∼30명 이상을 두고 있는 곳도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는 한 매장에 최소한 1명 이상이다. 물론 사장이 직접 디자이너 일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패션 디자인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분명히 자기 위치에서 디자이너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동대문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 수는 1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점포가 2만8천여 개라는 자료로 봤을 때 그리 놀랄 만한 숫자는 아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상품 수는 일주일에 5∼6개 스타일로 한 매장에서 하루에 한 가지씩, 동대문에서 매일 1만여 디자인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동대문 디자인의 경쟁력은 일단 제도권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이 첫 번째다. 내셔널 브랜드에서 3년 근무하다가 지난해 동대문에 취직한 디자이너 김혜원(26세) 씨는 “상품을 기획하고 샘플 작업하는 것은 내셔널 브랜드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은 기획에서 시작해 품평회까지 거친 후 생산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동대문에서는 한 디자이너가 한 번에 모든 일을 하루 정도면 마칠 수 있다”고 말한다. 고객들의 반응을 즉각 알 수 있어 일단 소량만 생산해 시장에 내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이 만들어본다는 것이 바로 두 번째 경쟁력이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브랜드에 들어가면 2∼3년 간 하는 일이라고는 시장보기, 복사하기, 시중들기, 피팅보기 등 대부분이 고참들의 심부름이다.

옷 전체를 혼자서 만들어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는 말이다. 그러나 동대문에서는 우선 디자이너를 한 매장에서 많이 쓰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모두 도맡아 해야 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많이 만들어보게 된다.

내셔널 브랜드 3년, 동대문 6년차인 베테랑 디자이너 박은혜(30세) 씨는 “동대문에서는 3∼4년차 정도 되면 내셔널 브랜드 실장급 이상의 영향력을 갖게 된다. 브랜드는 콘셉트를 따라가야 되지만 이곳에서는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고 말했다. 이미 제작되는 디자인이 수적으로 많기 때문에 신참들이 자기 개성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일반 브랜드에서는 꿈도 못 꿀 얘기다.

세 번째 경쟁력은 많이 경험하고 많이 보는 것이다.

동대문에 있는 매장 사장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매시즌뿐 아니라 시장이 쉬는 날에는 가까이는 일본, 멀리는 유럽·미국까지 시장조사를 떠나 쉴 새 없이 유행을 체크하는데, 이때 대부분 디자이너들을 동반하게 된다.

이 횟수는 한 해 동안 적어도 5∼6회는 되는데, 매우 잘 되는 매장일 경우 많으면 연간 10회를 넘어서기도 한다. 최근에는 주말을 이용해 일본으로 ‘올빼미’ 여행을 가는 것이 유행이라는 것. 대부분의 내셔널 브랜드들은 디자인실장과 바로 밑에 있는 디자이너 정도만 1년에 2∼4회 해외 시장조사를 가는 정도에 그친다.

바로 이 점이 동대문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강조하는 경쟁력인데, 그만큼 많이 보고 돌아와서 바로 제품에 반영해 그 반응을 직접 접할 수 있으니 빠른 트렌드를 반영해야 하는 최근 유행상품 경쟁에 있어 일반 브랜드들이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도권에서 일하던 실장급의 능력 있는 사람들까지 대거 동대문에 뛰어들어 매장을 오픈하고 있으며, 유명 디자이너들도 그들의 독특한 감성을 동대문에 소개하고 있어 그 디자인 파워는 더욱 커지고 있는 추세다.

결국 이런 경쟁력이 동대문을 예전의 가격경쟁에서 벗어나 디자인력으로 성공시키고 있으며, 고객들은 백화점이나 가두점에서 볼 수 없는 최신 유행의 옷을 구입하려고 동대문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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