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4 함민정 기자 hmj@fi.co.kr
뷰티스페셜리스트 김선진 「끌로에」 원장
‘조화로움’을 깨닫기까지 수 많은 ‘결정의 순간’과 마주했던 그는 미련 없는 선택으로 스스로를 지탱했다. 바닥으로 번지점프를 하고 또 다시 높은 곳으로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늘 자신을 ‘해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화 분장사, 「끌로에」 원장, 강단의 교수,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 전방위로 활동을 넓히고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선진 원장을 만났다.
<편집자주>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선진 원장은 낯이 익다. 탤런트 조민기씨의 아내로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종종 함께 출연해 단란한 가족애를 내비친 모습 덕분이다.
탤런트의 아내이기 이전에 그는 메이크업 영역에서 ‘흥행 분장’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영화 속 주인공들의 메이크업을 분주히 진행했다. 그 뿐 아니라 청담동 일대를 주름잡는(?) 「끌로에」 뷰티샵의 원장이기도 하다.
유선을 타고 흐르는 그의 무뚝뚝한 목소리에서 연상되는 외모와 실제는 사뭇 달랐다. 어깨 너머 늘어뜨린 생머리에 단아한 외모, 밝은 웃음까지 그야말로 ‘호감형’의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영화 얘기부터 시작했다. 1990년부터 시작해 그와 동고동락한 영화는 이제 20편이 훌쩍 넘는다. 90년 <장미여관>부터 시작해 2005년 <오로라 공주>까지. 영화 메이크업 15년의 길에 시작점은 성균관대 영화서클 ‘영상촌’에서였다.
영화를 사랑한 ‘흥행 분장’
영화 메이크업 시작에 앞서 영화를 사랑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더듬어야 할 듯싶다. 성균관대에서 대학 생활을 채워갔던 그 시절 그는 ‘영상촌’이라는 동아리를 통해 영화 사랑을 키워갔다.
현재 ‘흥행 분장’으로 불리는 그의 전공은 미술교육학과. 영화와 미술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그가 메이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말 그대로 ‘우연한 기회’였다.
“교육학과니까 실습을 나가잖아요. 첫 실습을 나가고 난 후 금방 알았어요. 저는 ‘가르치는 일’에는 소질이 없구나. 그래서 졸업 후에도 교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졸업 후 그는 잡지 편집디자이너를 지원하는 원서를 여기저기 내밀었다.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단정한 옷을 고르고,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라며 ‘예뻐지는 메이크업’을 궁리하면서 메이크업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이다.
“막상 해보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학과 공부를 하면서도 미술 분야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접했고, 메이크업에서 활용되는 색채감, 세필 작업 등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어요.”
그는 단호한 결정의 순간을 맞았다. 대학 졸업 후 국내에서 메이크업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파리로 떠난 것이다. 그 후 파리 ‘메이크업포에버’에서 교육과정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무작정 이대 앞에 샵을 오픈했다.
“본격적인 영화와 인연의 시작은 이때부터 였죠. ‘영상촌’의 선배들이 아름아름 아는 감독들과 연결시켜 주고, 작업양을 늘리면서 활동 폭이 넓어지게 됐죠. 대신 철저한 계획 없이 오픈했던 샵은 고전했죠.”
그가 처음 영화 메이크업을 진행한 90년 영화 <장미여관>은 메이크업도 했지만 의상도 진행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상을 함께 진행한 영화가 돼 버렸다.
“처음에 마광수 선생님이 메가폰을 잡았었죠. 콘셉트대로 의상과 메이크업을 진행했는데, 과정에서 오는 마찰과 더불어 전문영역이 아닌 활동이라 집중도도 떨어져 한번에 두 가지는 어렵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후부터는 ‘메이크업’ 한 우물을 통해서 영화와 호흡하고 있다.
전방위로 영역을 넓히다
김선진 원장의 또 다른 활동 영역은 화보 촬영과 강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화보 촬영은 아티스트라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아트의 영역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라며 “화보 촬영 노하우는 발로 뛰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현재 세대가 열광하며 동시대가 원하는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으로 보고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남대문에 가면 전문 화장품 샵은 아니지만 독특하고 좋은 품질의 상품들이 있어요. 그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