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30 윤혜진 기자 yhj@fi.co.kr
패션계는 여전히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다. 스무해가 넘도록 4000여 번의 패션쇼를 지휘한 숫자가 그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숨이 멎을 정도로 긴장된 생생한 라이브 현장의 중독자라는 그는 헤어 디자이너로 출발하여 현재는 패션쇼를 총괄하는 디렉터가 되었다. 유행을 쫓는 삶이기도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엔 스페인의 정취를 그리워하는 몽상가 오민. 오픈 첫 날 오민 헤어샵인 나인애플 현장에서 나눈 이야기들. <편집자주>
청담사거리에 위치한 모델라인 건물 전체가 한창 공사중이었다. 이날은 그 곳 4층에 새롭게 자리잡은 오민의 뷰티샵인 나인애플의 오픈날. 4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오픈 축하를 위한 화환들이 먼저 인사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헤어 디자이너들과 스텝들. 패션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민의 샵이라서 그런지 백스테이지 만큼이나 소란스러웠다. 완공이 아직 덜 된 상태였지만 시원하게 탁 트인 채광과 실내 조명이 만나 묘한 앙상블을 연출했고, 사각사각 가위소리, 헤어 드라이어가 돌아가는 소음은 여느 미용실처럼 북적거렸다.
20분쯤 지나자 진한 그레이 수트의 정장 차림을 한 오민 원장이 나타났다. 몇 시간 전쯤 그와 통화한 대로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전날 밤을 새서 안경을 써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묻던 오민 원장. 커다란 선글라스와 매치한 검은 원석반지들이 짙은 컬러 의상과 더불어 분위기를 압도했다.
하지만 진한 검은 썬글라스를 벗자 의외로 순수해 보이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미용계의 이단아’ ‘패션 헤어의 창시자’ 등의 다소 터프한 타이틀을 가진 오민과의 첫대면이었다.
패션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오민은 얼마 전 프레타포르테 부산 컬렉션을 막 마치고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스케줄, 매장 오픈에 쉴틈이 없었다.
가장 최근의 행사였던 프레타포르테 부산은 어땠을까. 오민은 특히 이상봉 쇼가 패션, 메이크업, 헤어의 조화가 완벽했다고 자신의 작업을 평가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한이 맺힌 메이크업’이었다고 했다. 아이 메이크업의 경우도 예쁘고 곱게 그라데이션 하지 않고 툭툭 던져 표현하듯 아방가르드한 화장법으로 완성도 높았다고 얘기한다.
“프레타포르테 부산 행사가 끝나고 조금 여유 있긴 하지만 곧 있을 해외 패션쇼를 준비해야 해요. 중국 상하이 쇼 외에 모델 컨테스트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가야하거든요. 그 다음은 오사카 헤어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8월까지 그의 스케줄 노트는 빡빡하다. 1984년 미용계에 첫 발을 내 딛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살아 왔다. 국내 근대 패션의 출발과 함께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사업을 확장하여 경영에 치중하기도 하고, 엔조이 라이프를 외치며 휴식 아닌 휴식기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오민은 그 누구보다 일에 있어 ‘아웃도어형’이다. 클래식 음악과 아로마테라피 향이 코 끝을 찌르는 고급 뷰티샵 내부가 아니라, 그가 주로 움직이고 활동하는 곳은 어두운 커튼이 있는 ‘무대 뒤’다. 그리고 그 무대 뒤에서 만큼은 그가 세상의 주인공이요 감독이다.
물론 패션쇼는 대부분 리허설을 거친다. 하지만 쇼 시작을 울리는 음악이 켜지면 마지막 일초일각까지 만의 하나의 실수라도 타협되지 않는다. 이런 긴장감으로 응집된 이 일이 오민에게는 ‘놀이’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즐기면서 할 뿐입니다. 무대, 음악, 옷, 헤어, 미술의 종합은 패션쇼 아니겠어요?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패션 라이브. 이 극도의 긴장감 또한 중독인가 봅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말이지요…”
미용계 위상 우리가 지켜라
“제 옷 아시죠? 알아서 해주세요” 어느 패션 디자이너가 오민에게 한 말이다.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은 헤어, 메이크업은 물론이고 스타일링, 모델 캐스팅까지 그에게 맡긴다.
보다 높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그와 함께 호흡하고 그의 숨쉬는 감각의 도움을 원하는 것이다.
사회적 흐름 때문이듯 몇몇 중견 아티스트들의 자생적 노력 때문이듯, 국내 미용계의 위상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오민은 지난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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