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20 함민정 기자 hmj@fi.co.kr
뷰티스페셜리스트 이향 이향아카데미 원장
“조선멋쟁이 오셨습니까?” 이향 이향아카데미 원장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그를 반기던 말이다. 어머니의 화장대에서 ‘화장’을 하던 그 순간부터 불리기 시작한 그의 별명 ‘조선멋쟁이’. 부모님은 꾸지람보다 칭찬으로, 재촉보다는 기다림으로, 물질에 현혹되기 보다 ‘사람다움’으로 그를 영글게 했다. 메이크업에 뿌리 내린 자신의 그릇을 일찌감치 감지한 이향 원장은 ‘가르침’으로서 희망의 담금질을 했다. 그가 아카데미를 운영한지도 어언 5년 째. 그는 늘 메이크업에 있어 기술보다 ‘인성’을 강조한다. ‘조선멋쟁이’ 이향 원장을 만났다. <편집자주>
삶은 늘 작고 소소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 주변 환경, 그리고 곁에 머무는 사람들. 그 신호(signal)는 당연히 미미해 놓치기 쉽다. 놓칠 수 밖에 없지만 작고 하찮을 수 있는 것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가 떨리는 음성으로 발음하는 ‘운명’이라는 드라마가 문을 열기 시작한다. 알고 보면 대단한 성공의 첫걸음이란 것도 이것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신호, 그 꿈틀거림의 시작
이향 원장은 이 신호를 자신의 기회로 삼았고, 자극으로 만들어 삶의 궤도를 그려 나갔다. 이향 원장에게 끝없는 신호를 발신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부모님이었다.
그는 전라도 전주의 2남 6녀의 다섯째로 태어나 언니 동생들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발신하는 신호의 답에 대해 골몰했다. 그의 부모님이 그에게 주신 신호는 바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였다.
어린 시절의 이향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있어도 없는 듯한 존재감마저 무미건조한 그의 일상은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언니 오빠들처럼 어떤 한 분야에서 뚜렷하게 ‘잘한다’ 싶은게 없었어요. 그러다 엄마 화장대 앞에 앉아 본 게 중학교 때 였을거예요.”
그는 엄마 화장대에서 처음으로 ‘화장’을 했다.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화장은 양품점 화보에 실린 표지 모델의 화장이었다. 그 화장은 현재로 보면 ‘물광’으로 불리는 메이크업으로 윤기나고 촉촉하게 연출하는 화장법이었다.
“번떡이는 크림을 볼에 가득 발라 윤기나게 해주었고 발그스름한 볼을 연출하기 위해 립스틱을 광대뼈를 중심으로 옅게 펴 발라주었어요. 화장한 걸 보고 나서 너무 예쁜거예요. 근데 그 당시 중학생이 어딜 그러고 나가겠어요. 잠시 나 자신에게 도취됐다가 바르게 누어서 자고 일어나서 바로 클렌징했죠.(웃음)”
그는 당시 화장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하던 조력자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그의 어머니가 즐겨 쓰던 「시세이도」 스포츠 커버 영양 크림이었다. 양품점에서 옷을 해 입으시고, 한 듯 안 한 듯한 메이크업을 구사하며 꽃꽂이를 즐기시던 그의 어머니는 그와 꼭 닮은 또 다른 ‘조선멋쟁이’이셨다.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발라보던 어린 이향은 꾸지람을 듣기 보다 칭찬을 들었다. 그가 들은 칭찬은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에 대한 보상이었던 셈이다.
어머니와 작별, 그리고 변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며 자연을 보고, 녹음의 냄새를 알고, 어머니의 감성적이고 넓은 포용력을 배웠던 것이 지금의 ‘이향’으로 영글 수 있게끔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 때가 어머니 나이 49세셨고, 그 때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였어요.”
그의 어머니는 급성 백혈병으로 혼수 상태였고, 입원한 지 한 달여 만에 이승과의 인연을 끊었다.
어떤 부모가 안 그렇겠냐만은 그의 어머니 역시도 그의 깊은 일상까지 챙겨주던 자상한 어머니셨던지라 그 아픔은 고통 그 이상의 상실이었다.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꼭 알아맞히시고 그것을 어느샌가 마련해 놓으셨던 거죠. 하지만 저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점점 커지는 엄마의 빈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제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됐죠.”
내성적이고 자신만 알던 그에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려와 포용으로 사람을 껴안을 줄 아는, 어느새 자신도 어머니의 인성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되뇌이던 ‘기도’ 대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특히 그의 폐부를 찌른 것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 될 것이고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진 달란트 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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