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울한 아름다움으로 빚어낸 판타지

2007-03-17 <오민정 기자> 

2007년 아카데미 촬영상·미술상·메이크업상 수상작 「판의미로」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다분히 신비스럽고 동화 같은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지난 3월 5일 열린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미술상, 메이크업상 등 3개 부문을 휩쓸었다. 특수효과와 CG로 점철되는 환타지 영화의 홍수 속에서 오직 인간의 손에만 의지해 만들어낸 환상적인 영상은 아름답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피조물’이라는 단어는 신의 영역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주>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손꼽히는 것은 어린 시절 누구나 동화책을 읽으며 한번쯤 상상해보았던 세계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영화 속 세트와 캐릭터다. 컴퓨터 그래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제작진의 장인 정신으로 완성된 캐릭터에서 엄청난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섬세한 아름다움이 듬뿍묻어 나온다.
때는 스페인 내전이 계속되던 시절. 참혹하고 공포스런 현실을 목격하느니 차라리 눈을 감은 채 꿈만 꾸고 싶은 소녀 오필리아에게 어느 날 밤 ‘판’이 나타난다.
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무의 신. 숫양의 뿔에 기다랗고 창백한 얼굴, 하얗다 못해 푸르름이 감도는 눈동자, 길게 드리워진 금발을 가진 판은 목신(木神)답게 걸을 때마다 흙과 나뭇가지를 흩뿌린다. CG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 분장을 통해 연기를 한 것이라는 데 얼마나 사실감이 있던지 화면 밖으로 알싸한 흙냄새가 풍겨나오는 듯 하다.



환상, 현실 세계로 걸어 나오다
판은 언뜻 보면 선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백안에 가까운 모호한 눈동자는 보는 이의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안을 부추긴다. 그래서 오필리아가 지하왕국의 공주였다는 말을 하는 판이 그다지 미덥지가 않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묘사된 판은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 악몽을 불어넣기도 하고, 나그네에게 갑자기 공포를 주기도 한다고 믿어져 왔다. ‘당황스러움’과 ‘공황’을 의미하는 패닉(panic)이라는 말이 판(pan)에게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오필리아가 지하왕국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판은 오필리아의 갓난 동생을 희생시키려 한다.
선과 악의 본성을 동시에 가진 판의 마음은 악마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지닌 모습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오필리아를 판과 만나게 해주는 요정은 자벌레가 변한 것이다. 늘씬한 몸에 커다랗고 긴 날개를 가진 요정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힘차고 정직하다.
눈, 코, 입의 윤곽 없는 얼굴은 오필리아의 임무를 돕기 위한 충실한 안내자에 적합한 모습이다.
오필리아가 첫 번째 관문에서 만나는 추잡하고 혐오스런 괴물 두꺼비의 모습은 인간의 탐욕스런 마음을 나타낸 듯 하다. 끈적끈적한 침을 흘리며 긴 혓바닥을 빼내 뭐든지 삼키고 마는 두꺼비는 결국 그 욕심 때문에 배가 터진다. 
가장 공포스러운 관문이었던 창백한 귀신의 방. 탐스러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잠든 듯 앉아있는 창백한 귀신은 아이러니하게도 갈비뼈가 다 드러난 앙상한 모습이다. 흥미롭게도 창백한 귀신은 눈알을 빼놓았다가 손바닥에 끼워야만 볼 수 있다. 그가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양 손바닥에 박힌 두 눈동자를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대는 순간이다.
이런 창백한 귀신의 모습은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만화와 동화가 적절히 어우러져 무턱대고 혐오하기엔 인간을 너무나 닮은 모습이다.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동화
어마어마한 스케일 중심의 여느 판타지 영화들과는 다르게 판타지의 세계를 실재하는 것처럼 만드는 생생함, 이것이 <판의 미로>를 만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능력이다. <블레이드2>, <헬보이>를 통해 ‘기괴한 상상력의 총아’라는 평가를 받아 온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독특한 캐릭터와 화려한 비주얼의 상상력을 기대 이상으로 스크린에 절묘하게 옮겨 놓았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영화의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동화책을 수집했다고 한다. 그림 형제의 동화나 아더 래크함, 에드문드 둘락, 케이닐슨의 동화에서 특색 있는 비주얼로 화제를 모으던 작가들의 삽화를 주로 참고했고, 이런 영향으로 <판의 미로>는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모든 것을 현실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는 기괴한 구경거리로 넘치는 환타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판과 같은 존재들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한다는 만화와 동화가 적절히 어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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