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6 윤혜진 기자
“25년에 기대어 ‘화장’을 얘기하다”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그의 이름만큼이나 명쾌하고 청명한 목소리, 하지만 색깔은 따뜻했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만끽하게 해준 찻잔이 식어갈 즈음, 드라마를 위한 메이크업을 마무리하고 윗층에서 급히 내려온 김청경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긴장으로부터 해방됐고, 인터뷰가 잘 진행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장식성이 많은 옷을 벗은 듯한 기분으로, 오렌지 불빛이 은은한 김청경의 작업 공간으로 들어갔다.
페일 핑크톤으로 치장된 플라워 패턴의 벽지가 연신 드러나는 김청경의 미소만큼이나 우아했던 그 곳은, 그의 메이크업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만 같았다.
80년대 청년 정신이 두고간 선택
김청경 또한 다른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유년시절과 마찬가지로 미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미술 선생님이었던 큰아버지에 의해 발견된 그의 미술적 재능과 주위의 독려 등이 미술 선생님과 화가라는 당연하게만 보이는 꿈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김청경이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는 80년대로, 청년들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 의식과 새로운 세상을 위한 386세대의 열정이 그야말로 뜨거웠던 때였다.
“갑자기 회의가 들더군요. 과연 내가 미술 선생님이 되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작 이것 밖에 할 길이 없는지…”
김청경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다니던 미술 대학을 자퇴하면서까지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다. 바로 탤런트였다.
“순간적인 계기로 학교를 그만둔 뒤, 그 동안 저의 장점에 대해 생각했어요. 목소리도 좋고 발음도 정확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의 깔끔한 목소리뿐 아니라 TV에서 보다 더 작은 얼굴과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
새 출발은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서 시작했다. 방송연예과의 필수 과목이었던 분장학 수업을 통해 김청경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의 운명은 섬광처럼 들이닥쳤다.
“2차원 종이 위의 데생(소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와 감흥을 느꼈어요. 어릴 적부터 계속된 미술에 대한 감각은 사람의 얼굴 위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제가 작업한 분장은 줄곧 수업 샘플로 앞에 두곤 했었어요.”
메이크업에 대한 자신감과 재능을 발견하게 된 김청경은 당시 MBC 분장실 실장과 교수직을 역임하던 은사 박준녕 교수에게 진로에 대해 문의했다.
“교수님께 앞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나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교수님은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의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이야 말로 아티스트 아닌가!’ 라고 말씀하시며 저에게 꿈을 심어주셨죠.”
머리는 뜨겁고 몸은 재빠르게
김청경의 본격적인 사회 활동은 치열한 경쟁속에서 입사한 KBS 분장실에서부터 시작했다. 그곳에서 김청경은 정말 원 없는 1년 반을 보냈다고 말한다.
어시스턴트로 분장사 11명의 수발을 들면서, 매일같이 새벽 3시에 퇴근했고, 반드시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시절이었다.
“일년 중 360일을 근무했었어요. 사극 같은 경우 하루 100여명의 엑스트라들은 모두 저의 손을 거쳐야 했죠. 수염도 붙이고, 시커멓게 재도 얼굴에 뭍혀주었어요…가장 예쁘게 수염을 붙이는 분장사로 소문이 났었지요(웃음).”
빠른 손놀림으로 유명한 김청경의 작업 스타일은 아마 100명을 순식간에 해결해야 했던 그시절부터 익혀진 습관이었으리라.
또 한 달에 한 번 이뤄지는 KBS 분장실의 최효성 선생님의 분장 수업은 학교의 아카데믹한 수업과는 달랐다. 대본을 읽은 후, 머리속으로 캐릭터를 연상하고 곧 이어 스케치로 그려야 했다. 바로 이 훈련이 지금까지 끊임없는 창조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고백한다.
1년 반 동안의 방송국 생활을 접고 나온 김청경은 이후 외주 드라마 메이크업 일을 시작하게 되지만 그리 오래 일을 하지 못했다. 열악한 방송 분장실의 월급 봉투에 비해 8배나 많은 수입은 많은 선배들을 그쪽으로 뛰어들게 했고, 김청경은 위계 질서가 엄격했던 메이크업 세계에서 선배들과 경쟁할 수 없어 다른 진로를 모색했다.
그때 동방기획 PD로 있던 친구는 메이크업 일을 찾던 김청경에게 그곳 회사의 국장으로 있던 분을 소개시켜 주게 된다. 바로 그 사람은 김청경이 대학시절에 메이크업 아르바이트를 했던 「비제바노」 「캐리부룩」 광고의 담당자였다.
학생시절 김청경의 실력과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그는 단번에 김청경에게 태평양화장품 「아모레」 광고를 맡긴다.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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