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사 아줌마들 ‘패션모델 되던 날’

2006-12-08 오민정 기자 sky@fi.co.kr

‘로우로우’ 플래그십스토어 홍대점

‘변정수가 따로 있나. 오늘만큼은 나도 톱 모델이야.’
지난 12월 1일 서울패션아트홀이 들썩거렸다. 아주 색다른 패션쇼가 열렸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는 늘씬하고 키 큰 모델 대신 나이도 많고 몸매도 풍성한(?) 아줌마들이 워킹을 하고 있다.

환호와 박수 소리도 여느 패션쇼 못지 않게 우렁차게 터져나왔다.
전문 모델 뺨치게 당당하게 무대를 누비고 있는 이 아줌마들은 동대문에서 수십년간 미싱을 돌린 여성 봉제 노동자들이다. 1970~1980년대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10대부터 ‘시다’로 일했던 여성근로자들. 미싱만 돌리던 이들이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직접 모델이 되어 패션쇼를 벌인 것이다.

강금실 여성인권 대사,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등 정·재계 인사들도 이들이 만든 옷을 입고 함께 워킹을 선보였다.

“너무 감동스러워요. 고달픈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만큼은 미싱 돌리던 내 손이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정선희 봉제경력 20년)

이 떠들썩한 패션쇼를 벌인 사람은 전순옥 씨다. 봉제 노동자로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한 전태일의 여동생. 전 씨는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로 지난 6월 ‘수다공방’이라는 기술교육센터를 설립했다. 오늘 무대에 선 동대문 아줌마들 36명은 수다공방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교육생들.

전 씨는 “기술 재교육을 통해 고숙련 노동자들의 기술을 고급화시켜 고부가 가치의 옷을 생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 패션쇼를 개최했다”며 “이제는 아줌마가 된 여성 봉제 노동자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패션쇼가 열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순이로 일했던 게 무슨 자랑거리냐고 얼굴을 붉히기도, 수십년 간 미싱을 돌렸는 데 또 무슨 기술 재교육이냐며 손사레를 치는 아줌마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하루 15시간 노동하던 그 당시나 현재나 별로 나아지지 않은 노동환경을 개선해 쾌적하고 살맛나는 작업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이 되자는 취지 아래 기꺼이 무대에 섰다.

“리허설 할 때만 해도 쑥스러웠는데 다 끝나고 나니 너무 아쉽네요. 또 무대에 설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서고 싶어요. 무대에서처럼 앞으로도 당당하고 여유있게 살아가겠습니다.”(성양자 봉제경력 25년)

오늘 패션쇼에 선보인 옷들은 30~50대 여성들에게 맞는 편안하고 심플한 디자인에 천연염색을 한 것들로 가격의 거품을 뺐다.

전 씨는 “수다공방이라는 독자적인 의류 브랜드로 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라며 “제작 원가 공개와 제작자 실명제, 수다공방 옷 카페를 통한 직거래 판매도 실시할 것”이라 밝혔다.

“소외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이런 사업을 계속해서 진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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