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명예냐… 방황하는 오뜨꾸튀르

2010-05-10 예정현 기자 

‘로우로우’ 플래그십스토어 홍대점

정통 상류층의 상징, 혹은 패션 크리에이티비티의 절대적인 표상 오뜨꾸튀르 업계가 방황하고 있다. 지독한 크리에이티비티와 철저한 수작업, 그리고 고급 소재를 사용한 맞춤형 의상을 상징하는 오뜨꾸튀르는 더 많은 대중을 타깃으로, 다량 생산되는 쁘레따뽀르떼(레디투웨어)와 달리 대중성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어 화려한 런웨이 위의 모습과는 달리 실질적 매출 구축에 취약한 약점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와 유럽 왕족, 상류층 고객을 확보하며 페미닌한 드레스로 명성을 쌓은 발렌티노(Valentino)가 오랫동안 적자에 시달려오고, 매출 부진과 유동자본 압박 때문에 패션하우스 크리스챤라크로와가 파산을 신청한 것은 오뜨꾸튀르 업계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레디투웨어는 시대적 요구
일각에서는 LVMH나 PPR 같은 럭셔리 제국이 정통 오뜨꾸튀르 브랜드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고객 기반이 약한 꾸튀르 업계는 레디투웨어가 확대된 1980년대에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꾸튀르 업계의 주요 고객이던 유럽과 미국 부자들이 레디투웨어로 시선을 돌린 지금 러시아와 중동의 신흥 부자들이 빈틈을 메꾸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 1월 파리에서 열린 2010 봄/여름 꾸튀르 쇼에는 러시아와 중동에서 온 바이어와 프레스, 상류층 인사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실질적인 주문의 대다수도 이들 이머징 마켓의 주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머징 마켓의 수요가 오뜨꾸튀르 업계의 체질적 문제-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지나치게 좁은 고객 기반-를 대체하기에는 파워가 약하고, 전통적인 꾸튀르 고객조차 레디투웨어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머징 마켓의 꾸튀르 수요는 일시적인 반짝 효과로 끝나고 결국 레디투웨어가 오뜨꾸튀르 고객을 포섭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즉 빠르게 변화되는 패션 마켓의 흐름과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여 더 높은 수익을 구축해야 살아남는 치열의 경쟁전선에서 고객 기반이 한정된 꾸튀르 업계는 밀려날 수 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최근에는 숙련된 오뜨꾸튀르 장인들이 레디투웨어나 패션 체인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브랜드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아티스틱 조언을 주는 경우가 늘고 있어 일각에서는 오뜨꾸튀르의 전통이 결국 단절될 수 있다는 성급한 예측을 하기도 한다.

즉 오뜨꾸튀르는 현대 패션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중성’이 결여되어 대중적 인지도가 매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적 흐름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그 속도와 수량, 그리고 대중성 면에서 소비자들과 친숙하기 힘든 오뜨꾸튀르는 좀 더 편한 가격에 다양한 스타일, 높은 품질을 자랑하는 레디투웨어 브랜드가 젊은 소비자들을 흡수하고 있는 지금 고객 기반은 더욱 얕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젊은 고객층 잡기에 적극
갈수록 캐주얼해지는 서구의 드레스 코드와 글로벌 불황으로 오뜨꾸튀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괴리감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도 꾸튀르 업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데 일조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꾸튀르 자체가 뭔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낡은’ 것으로 인지하고 있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투자되는 꾸튀르 의류를 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뜨꾸튀르 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지방시나 디올, 샤넬, 발렌티노 등이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한층 모던해진 컬렉션을 구성하고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특정 시즌에만 오뜨꾸튀르’를 선보이는 선택적 꾸튀르 작업을 진행하는 절약적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즉 오뜨꾸튀르 수요가 몰리는 영화제 기간에 맞춤 생산을 주력하는 것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의 레드카펫에서 자주 눈에 띠는 엘리사브(Elie Saab)가 대표적인 경우.

혹은 꾸튀르 라인 ‘아르마니프리베(Armani Prive)를 론칭, 레디투웨어의 성공에 오뜨꾸튀르의 차별적 품격을 더하고 있는 아르마니처럼 정통 꾸튀르의 가격대보다 좀 더 낮은 가격대로 책정하는 것도 소비자를 끌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반면 로다르테(Rodarte)나 프로엔자슐러(Proenza Scholer)는 아예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컬렉션을 구성하고 랑방과 발망(Balmain)은 아틀리에를 닫고 아예 레디투웨어에 주력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요구에 대처하고 있다.(베르사체는 2003년 꾸튀르 컬렉션을 중단하는 대신 꾸튀르 주간에 파리에서 작은 규모의 맞춤 가운 셀렉션을 선보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오뜨꾸튀르는 공룡이다?
이처럼 꾸튀르 업계가 변화된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고 젊은 층을 파고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부에서는 오뜨꾸튀르 자체가 이미 생존력을 잃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성공적인 레디투웨어 및 액세서리 사업을 진행하며 글로벌 상류층 고객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을 충실한 팬으로 사로잡고 있는 오스카드라라렌타가 그 주인공.

그는 오뜨꾸튀르가 이미 구시대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PPR 산하의 구찌그룹(보테가베네타·구찌·발렌시아가·입셍로랑 등의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이 오뜨꾸튀르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심지어 구찌에 인수된 입셍로랑마저 2002년 오뜨꾸튀르 사업을 중단한 것만 봐도 ‘오뜨꾸튀르가 더 이상 럭셔리의 상징’이나 성공적 럭셔리 브랜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뜨꾸튀르 라인을 론칭하거나 보유한다고 해서 홍보 효과나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

1990년대부터 2002년까지 발망(Balmain)의 꾸튀르 컬렉션을 지휘하기도 했던 오스카드라렌타는 꾸튀르 사업을 통해 흑자를 이뤄내는 유일한 브랜드는 샤넬(Chanel)에 불과하고 잘라 말한다. 또한 샤넬의 경우도 오뜨꾸튀르 컬렉션의 매출의 절반가까이가 이브닝 웨어가 아니라 좀 더 실용적인 ‘데이웨어’로 나타나 정통 오뜨꾸튀르의 타깃과 목적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샤넬은 끊임없이 새로운 룩과 패브릭을 개발, 꾸튀르 컬렉션의 완성을 이뤄내고 있다면서 오뜨꾸튀르 사업은 샤넬의 근본정신이자 핵심이라고 강한 애착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점점 캐쥬얼 해지는 문화의 영향으로 오뜨꾸튀르 의상을 입고 등장해야 할 격조있는 모임도 줄어든 데다 몇 만 달러짜리 꾸튀르 의류를 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멋스런 레디투웨어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영리한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 그리고 정신 없이 바뀌는 변덕스런 트렌드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에 ‘느리고 비싼’ 오뜨꾸튀르는 패션이라는 변화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과 같은 처지라 할 수 있다.

중동 소비자를 믿어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오일머니가 풍부한 중동의 부유층들이 디올, 발렌티노, 지방시, 샤넬 등 오뜨끄뜨르 컬렉션을 진행하는 럭셔리 하우스들의 매출을 끌어올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업체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등 중동 시장에서 거두는 매출은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꾸튀르 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30년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이 꾸튀르 컬렉션의 소비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할 때 글로벌 꾸튀르 소비층이 대폭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변화되는 시장의 흐름에 민감히 반응할 수밖에 없는 패션계에서 점차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오뜨끄뜨르 업계의 모습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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