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alliano
패션쇼나 패션 디자인은 무엇일까? 존 갈리아노는 여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멋있는 모델이 화려한 조명 아래에 뽐내듯이 옷을 선보이는 그런 쇼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면서 너무나 생소하고 충격적인 시즌을 선보였던 것이다. 존 갈리아노의 쇼는 이제 패션쇼의 테두리를 벗어던지고 하나의 퍼포먼스, 이벤트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쇼는 예쁘거나 화려하지만은 않은 독특한 캐릭터들이 어울리지 않은 이미지로 어울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독특하면서도 충격적인 경험을 하도록 했다. 이것이 옷을 선보이는 가장 적절한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파격적인 패션쇼는 패션쇼가 아니라 하나의 뮤지컬이었다. 옷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긴 했지만 패션쇼를 새롭게 재해석한 태도는 그가 단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이제는 예술가로서 독립하는 듯했다.
그의 패션쇼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그로테스크했다. 무릇 패션쇼들이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면서 패션 디자인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갈리아노는 난장이, 할머니, 수병, 걸인, 귀족 부인, 뚱뚱한 여자 등과 같은 엽기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렇게 ‘쾌’하지 못한 감정을 건드렸고, 자기의 패션 디자인을 그 사이사이에 끼워넣었다. 등...more
패션쇼나 패션 디자인은 무엇일까? 존 갈리아노는 여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멋있는 모델이 화려한 조명 아래에 뽐내듯이 옷을 선보이는 그런 쇼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면서 너무나 생소하고 충격적인 시즌을 선보였던 것이다. 존 갈리아노의 쇼는 이제 패션쇼의 테두리를 벗어던지고 하나의 퍼포먼스, 이벤트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쇼는 예쁘거나 화려하지만은 않은 독특한 캐릭터들이 어울리지 않은 이미지로 어울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독특하면서도 충격적인 경험을 하도록 했다. 이것이 옷을 선보이는 가장 적절한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파격적인 패션쇼는 패션쇼가 아니라 하나의 뮤지컬이었다. 옷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긴 했지만 패션쇼를 새롭게 재해석한 태도는 그가 단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이제는 예술가로서 독립하는 듯했다.
그의 패션쇼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그로테스크했다. 무릇 패션쇼들이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면서 패션 디자인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갈리아노는 난장이, 할머니, 수병, 걸인, 귀족 부인, 뚱뚱한 여자 등과 같은 엽기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렇게 ‘쾌’하지 못한 감정을 건드렸고, 자기의 패션 디자인을 그 사이사이에 끼워넣었다.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만큼이나 그들이 입고 있는 패션들도 다양했고, 그로테스크했다. 할머니가 입은 투피스, 18∼19세기의 신사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느낌의 정장, 다이어트되지 않은 거대한 몸매에 입혀진 원피스, 미의 여신과 제우스 신을 상징하는 듯한 모델들의 화려한 의상 등 어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었고 서로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울리지 않은 듯한 모델들과 그들이 입은 옷들은 마치 다다이스트들의 콜라주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서로 부딪히면서 통일된 스파크를 튀겨냈다. 존 갈리아노는 전체 이미지를 자기 식으로 충분히 제어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부담스런 이미지들의 충돌로 안정감의 끈을 놓치기 쉬운 파격적 실험이었다.
이런 쇼를 기존의 잣대로 판단하기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이다. 한발 물러서서 갈리아노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도리밖에는 없을 듯하다.f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