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rgio 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80년대의 샤넬’로 불린다. 젊은 날의 샤넬이 가수를 꿈꾸며 클럽에서 노래했듯이 아르마니도 23세까지는 패션과 거리가 먼 의학도였다.
그는 밀라노 의대를 다니던 중 1957년부터 1964년까지 ‘리나생티’ 백화점에 바이어로 일하면서 패션계에 발을 내딛었다. 바이어로서의 경험은 그에게 정확한 재단과 원단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게 했다. 이로써 아르마니는 훗날 ‘최고의 직물 지식과 기술을 지녔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아르마니가 디자이너로, 정식으로 패션계에 데뷔한 것은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였다. 그는 23살의 건축학도 세르지오 가레오티의 격려로, 197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내놓았다. ‘세상의 누구보다 멋진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가레오티의 응원에 힘입어 마흔 살의 아르마니는 제국의 문을 연 것이다.
패션계의 괴짜로 불리는 아르마니는 이번 시즌 넓고 신비로운 우주를 무대로 옮겨 놓았다. ‘만화경(Kaleidoscope)’이라는 그의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신비로운 색깔과 패턴들이 무대를 채웠다. 실크와 오간자가 몸을 휘감으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실루엣, 편안한 디자인, 은은하게 반짝이는 구슬이 밤하늘...more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80년대의 샤넬’로 불린다. 젊은 날의 샤넬이 가수를 꿈꾸며 클럽에서 노래했듯이 아르마니도 23세까지는 패션과 거리가 먼 의학도였다.
그는 밀라노 의대를 다니던 중 1957년부터 1964년까지 ‘리나생티’ 백화점에 바이어로 일하면서 패션계에 발을 내딛었다. 바이어로서의 경험은 그에게 정확한 재단과 원단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게 했다. 이로써 아르마니는 훗날 ‘최고의 직물 지식과 기술을 지녔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아르마니가 디자이너로, 정식으로 패션계에 데뷔한 것은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였다. 그는 23살의 건축학도 세르지오 가레오티의 격려로, 197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내놓았다. ‘세상의 누구보다 멋진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가레오티의 응원에 힘입어 마흔 살의 아르마니는 제국의 문을 연 것이다.
패션계의 괴짜로 불리는 아르마니는 이번 시즌 넓고 신비로운 우주를 무대로 옮겨 놓았다. ‘만화경(Kaleidoscope)’이라는 그의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신비로운 색깔과 패턴들이 무대를 채웠다. 실크와 오간자가 몸을 휘감으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실루엣, 편안한 디자인, 은은하게 반짝이는 구슬이 밤하늘의 별처럼 보였다.
첫 번째 작품은 은색의 가죽 재킷에 회색 새틴 드로우 스트링 바지와 목선 부분에 작은 주름이 있는 톱이었다.
엉덩이를 뒤덮는 긴 튜닉과 발목 길이의 바지, 짧고 부드러운 재킷, 인도의 셔츠처럼 칼라 없는 긴 새틴 가운 등은 먼 별에서 온 듯한 느낌과 모호한 미래를 나타냈다. 은색과 회색, 청록색, 비취색의 변주를 통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쉬폰의 헐렁한 바지 위에 민소매 드레스, 굽 없는 샌들과 남성용 플랫슈즈, 여기에 차분한 파란색과 다양한 크기의 닥터백이 어우러져 편안하면서도 커리어 우먼의 느낌이 강조됐다.
"모델을 위한 옷이 아닌 입는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든다"는 아르마니. 그의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거장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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