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짓는 모녀가 있다. 외할아버지에서 엄마로 그리고 다시 딸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이들의 패션 사랑은, 사랑을 넘어 삶을 이야기한다. “아침에 싸우고 점심 때 화해하고 저녁에 웬수가 된다”는 모녀 사이라지만, 이 둘은 옷이라는 둘만의 삶의 도구를 통해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기꺼이 나누는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하다. 먼저 엄마 이신우는 부도가 난 후 자신을 괴롭히는 ‘미움’이라는 놈을 버리기 위해 성경책을 두 번이나 읽으면서 스스로를 다스렸다. 2001년 CJ 홈쇼핑에 속옷 브랜드 「피델리아」를 론칭해 지난해까지 11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그녀는 지난해 11월 ‘8년 만의 화려한 외출’인 재기 무대 「시누」 컬렉션을 열어 60대 중반의 넘긴 나이에도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었다. 딸 박윤정은 패션 스쿨 사디의 교수로, 모 일간지의 패션 칼럼니스트로,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코스튬 디자이너로,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 위즈위드에 자신의 브랜드 「박윤정」으로 입점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나를 넘기고 나면 또 하나의 높은 산이 있었던 모녀의 고단했던 인생에 ‘포기’란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이들 모녀는 ‘희망’을 바느질을 하고 있다.
가끔 우리는 절벽인 줄 알면서도 그 위에 서서 뛰어내리고 싶어한다. 가끔 우리는 수렁인 줄 알면서도 눈을 말갛게 뜬 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가끔 머리로 안다는 것이, 또렷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디자이너 이신우·박윤정 모녀는 끝장일 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힘을 다했던 것, 그래서 미련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오늘의 재기를 담담하게 얘기했다.
디자이너로서 삶을 갈망하던 시작부터 「오리지날리」의 탄생과 부도, 뒤이은 막막한 디자이너로서 방황, 남편이자 아버지인 박주천 국회의원의 사망까지. 이 모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시련 그리고 상처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상이었다. 이들이 날마다 마주치는 소소한 아픔의 일상은 어쩌다 한 번 마주치는 커다란 장벽보다 견디기 쉬운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직 자신에 대한 긍지와 믿음, 그리고 선의와 정의로움을 가진 이들 모녀는 오늘의 용기 있는 한 걸음으로 인해 먼 훗날 후회 없을 현재를 만들고 있다. 그 끝엔 언제나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가 되자 채도가 낮은 푸르스름한 빛이 거리를 휘감고 있었다. 시간은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사동 가로수길 골목 사이를 비집고 찾아간 디자이너 이신우·박윤정의 보금자리인 모녀의 매장은 단란했다. 대면하자마자 모녀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훈훈한 실내로 기분 좋게 퍼졌다.
모녀의 얼굴에 희미하게 드려진 세월의 나이테는 그 동안의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순간을 스치게 했다. 하지만 고난의 장막을 거둬낸 그들의 웃음은 본연의 부유함과 온화함이 녹아있었다.
풍파가 많았던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돌이키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신우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가끔 아니, 실은 자주 강물을 따라, 그저 두둥실 흘러가고만 싶었습니다. ‘죽은 물고기만 강물을 따라 흘러갈 수 있는 것’ 처럼요. 적당히 과장하고 적당히 웃고 적당히 예의 바르고 적당히 감추고 싶어집니다. 이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지요. 그래서 늘 저는 날마다 저 자신과 대치합니다. 편안히 두둥실 죽어 떠내려가는 것이 휠씬 매혹적일 수도 있겠다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서 더 높고 맑고 깊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서로 비벼대고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죽은 물고기’의 삶을 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의 포로’로 포박된 모녀
디자이너 이신우는 지난해 11월, 07 봄/여름 서울 컬렉션에서 「시누(CINU)」라는 이름으로 8년만에 머뭇거렸던 한 발을 내디뎠다.
누구도 성공리에, 아니 쇼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삐쭉거리며 입을 모았던 주변의 우려를 뒤로 하고, 그들은 성대하게 8년만의 재기라는 힘찬 날개 짓을 했다.
박윤정이 당시를 회상했다. “다들 쇼를 못 할 것이라고 얘기했어요. 이미 아빠(故 박주천 국회의원)가 병원 신세를 진지 꽤 오래 되었고, 오늘 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었음을 예감하는 나날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욱 힘들게 준비했지요.”
그 당시 이신우는 병원을 오가며 남편 간호와 디자인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수장으로, 또 가녀린 딸의 씩씩한 엄마로 1인 3역을 맡아야만 했다.
당시 이신우의 남편 박주천 의원은 특발성 폐경화증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었다.
쇼에 설 모델을 오디션하는 날, 이신우는 병원으로부터 남편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날
함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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