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Ford
‘톰 포드’가 ‘구찌’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 ‘톰 포드’는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쌓아 올려가고 있다.
그의 준수한 외모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뉴욕대에서 미술사를, 뉴욕과 파리의 파슨스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게다가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패션계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한 달 동안 패션계의 인물에게 접근했다는 일화도 있다. 단지 얼굴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머리도 좋았고, 집념과 열정이 넘친 인물이라는 뜻이다.
톰 포드가 ‘구찌’에서 보낸 10여 년은 패션 업계를 과거와 현재로 나누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1961년생인 톰 포드는 30살에 가까운 1990년 ‘구찌’에 들어간다.
그리고 불과 4년만에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목된다. 거의 망해가던 브랜드로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직함일 수도 있었으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톰 포드로 인해 이 1990년대 후반은 고가의 브랜드 제품들이 부자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대중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톰 포드는 그 첫 모범사례를 만들어낸 디자이너다.
무엇보다 그가 가방이나 구두 등의 가죽 제품을 만들던 ‘구찌...more
‘톰 포드’가 ‘구찌’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 ‘톰 포드’는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쌓아 올려가고 있다.
그의 준수한 외모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뉴욕대에서 미술사를, 뉴욕과 파리의 파슨스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게다가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패션계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한 달 동안 패션계의 인물에게 접근했다는 일화도 있다. 단지 얼굴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머리도 좋았고, 집념과 열정이 넘친 인물이라는 뜻이다.
톰 포드가 ‘구찌’에서 보낸 10여 년은 패션 업계를 과거와 현재로 나누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1961년생인 톰 포드는 30살에 가까운 1990년 ‘구찌’에 들어간다.
그리고 불과 4년만에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목된다. 거의 망해가던 브랜드로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직함일 수도 있었으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톰 포드로 인해 이 1990년대 후반은 고가의 브랜드 제품들이 부자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대중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톰 포드는 그 첫 모범사례를 만들어낸 디자이너다.
무엇보다 그가 가방이나 구두 등의 가죽 제품을 만들던 ‘구찌’에 섹시함이라는 인격성을 부여하게 된 것은 그의 젊은 날, 즉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던 20대의 경험에 기인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디스코텍이었던 스튜디오 54의 단골 고객이었던 것이다. 그 곳에서 그가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의 화려한 패션은 그의 디자인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패션계를 떠났던 그가 다시 런던 컬렉션에서 패션쇼를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디자인 세계는 확실히 197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죽, 벨벳, 검정색, 레오파드, 레이스업 디테일, 과장된 모피, 복고적인 프린트 등이 그 증거다.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 패션계층들이라면 과거 화려했던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겠지만, 새로 등장한 21세기의 젊은 층들도 과연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어쩌면 디자인보다 강렬한 마케팅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f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