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이랜드의 성장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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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1 오후 1:21:05

1996년, 사면초가의 위기 속에서 앞날을 내다볼 수 없었던 이랜드. 뒤이어 터진 IMF의 세찬 파고는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러나 이랜드는 이 위기를 딛고 일어서 10년만에 패션·유통업계를 주름잡으며 재계 서열 37위의 대기업으로 다시태어났다. 1996년 1조3천억원이던 매출은 10년만인 2005년에는 2조 7천억원으로 2배나 늘었다. 위기 극복을 넘어 국내 패션·유통업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어떻게 이랜드는 짧은 기간동안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알아봤다. 1996~2005년, 숨가빴던 10년 1996년 당시 이랜드의 보유 브랜드는 현재 수준(58개)인 56개에 달했다. 「헌트」는 단일 브랜드 최초로 연간 매출 1천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명동 중앙통은 제화 3사와 이랜드 빼면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랜드는 가두상권의 맹주였다. 건전한 기업풍토와 빠른 성장 덕택에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 1순위는 이랜드의 차지였다. 명동, 신촌, 대구 등지에는 ‘라파밀리아’라는 멀티브랜드숍도 만들었다. 1994년에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인 아웃렛 유통 ‘2001아울렛’을 오픈해 한국형 백화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부터 위기가 시작됐다. ‘지지않는 해’라고 까지 불리던 「헌트」를 비롯해 주력 브랜드들의 매출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시대를 앞서 내다본 이랜드의 해외생산 정책이 오히려 화를 불러왔다. 보다 싸게 만들어 더 저렴한 옷으로 소비자에게 가치를 돌려주기 위해 시작했던 해외 생산이었지만 중국 공장의 품질에 대한 인식 부족과 내부 품질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상품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 옷에서 물이 빠지고 뒤틀리는 등 품질이 떨어지자 ‘이랜드=싸구려’라는 인식이 심어지면서 소비자들에게 호된 매를 맞았다. 불어난 회사의 덩치만큼 아픔도 컸다.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급기야 97년 초 구조조정본부를 설치했다. 구조본의 진단 결과 회사가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본부장 조희상 전무(CFO)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회사 정비에 들어갔다. 97년 말 큰 태풍이 몰아쳤다. IMF 외환위기는 경영환경을 더 압박했다. 이 때부터 뼈를 깎는 노력을 시작했다. 28개의 계열사를 8개로 줄이고 72개의 사업부 역시 51개로 감축했다. 경쟁력이 없었던 신사복은 아예 손을 뗐다. 3천600명에 달하던 직원도 50%나 감원했다. 몇 개월 동안 급여를 50% 밖에 지급하지 못해 사업부에서 자체적으로 재고 상품을 소진해 급여를 충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랜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무너질 회사가 아니었다. 한창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던 98년 8월. 미국의 투자회사 워버그핀쿠스로부터 3천2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박성수 그룹 회장은 “당시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은 천혜의 투자처로 비쳐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가 2중, 3중의 장부를 갖고 있어 정확한 기업의 상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랜드는 창업 초기부터 투명경영을 실천해왔다. 이것이 미국 투자회사에서 선뜻 투자를 결정했던 이유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99년 4월에는 아리랑구조조정기금에서 333억원을 지원받았다. 적자 사업부서를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재무구조를 안정시키면서 회사는 조금씩 회생의 가닥을 잡아갔다. 위기를 넘긴 이랜드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재도약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 때부터 지식경영, 균형성과관리(BSC), 지식관리(KMS) 등의 시스템을 도입해 혁신을 시작했다. 특히 물류 과정에서의 손실을 줄이는 방법과 매장당 1억원 매출을 만드는 노하우는 이제 업계 표준이 될 정도로 큰 방향을 일으켰다. 능력 있는 사원을 뽑기 위해 열린 채용도 도입했다. 채용에서 학력, 성별, 나이를 따지지 않았고 여성과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도 배제했다. 2001년 초부터는 매출과 순이익 등 실적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감원과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회사에 불만을 가졌던 직원들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업을 다시 키워가면서 퇴사자 재고용도 빈번해졌다. 2001년에는 매출 8천600억원, 순이익 74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각각 22%, 55%나 늘었다. 회사는 약속대로 성과급을 지급했다. 잘나가는 부서는 무려 1천100%의 성과급을 타가기도 했다. 활기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이 때부터 이랜드는 급속히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M&A를 통해 규모를 배가시켜 나갔다. 2003년 말 대표 여성복 기업 데코의 인수는 패션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뉴코아, 해태유통, 태창(내의부문), 삼립개발, 네티션닷컴 등 굵직한 기업의 인수를 성사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자산 및 영업권을 양수한 브랜드도 20여개에 이른다. 이 결과 회사의 규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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