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도와 관행’ 글로벌 경쟁력 쌓는 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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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오전 11:18:15

기대와 희망에 찬 2008년이 시작됐다. 새해가 시작된 연초부터 중국 진출 섬유 패션 업체들의 기막힌 사연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중국 동북부 옌타이시에 있는 한국 기업 세강섬유. 1200명의 직원이 근무했다는 이 회사의 봉제공장은 현재 임직원들의 야반도주로 문을 닫은 상태다. 세강섬유는 옌타이에 3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종합섬유회사로 종업원이 2000여명, 매출이 3000만 달러에 이르는 회사다. 실제 지난해  중국 칭다오시에서 청산절차를 밟은 회사는 31개사에 이른다. 야반도주를 택한 회사는 두 배가 넘는 87개사에 이른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이 같은 어려움에 처한 요인은 무엇일까. 내수 브랜드의 글로벌 시장 진출과 글로벌 브랜드의 내수 시장 진출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급변하는 현재 한국 패션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뒷받침이 돼야 할 제도와 개선해야 할 관행은 무엇일까?


얼마 전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성공사례로 꼽히던 YSB지퍼의 사연이 알려졌다. 지난 1993년 중국 칭다오시 정부로부터 3만5000㎡ 규모의 토지를 50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보증받은 이 회사는 1500만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2006년 공업용지였던 공장 부지가 상업용지로 바뀌고 토지 주인이 국영기업에서 은행으로 바뀌면서 공장 철수 통보를 받았다.
YSB지퍼는 은행측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했으나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매출도 1/3 수준인 400만 달러로 줄었다. 칭다오 시정부의 보증을 믿고 한 투자가 공장 철수와 매출 하락이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해외 진출, 알고 하십니까?
중국의 시장 환경이 변했다. 임금상승, 물가상승은 물론 경제특구, 경제개발구에 15~24%로 적용하던 지역별 기업소득세 우대와 기술 집약이나 지식 집약 업종의 투자기업에는 15%로 적용하던 업종별 세금 우대가 사라졌다.
경영환경 악화로 회사를 이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 시장에 투자한 지 10년이 넘지 않은 경우 외자기업 자격으로 받은 모든 혜택을 반납해야 한다. 신고서 접수에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중국의 행정 상황과 세부당국의 조사가 더해져 중국에서의 사업 청산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은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거쳐야만 할 당면 과제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 나가는 데 있어 많은 기업들이 기본적인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
이만중 보끄레머천다이징 회장은 “중국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에게 가장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상표권 등록”이라며 “브랜드 등록이라는 기본적인 일로도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패션협회 중국위원회, 코트라 등 정부 기관의 자료와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제 개선을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
최근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부도, M&A설에 휩쓸리고 있다. 경기 부진, 소비자 구매 패턴 변화, 유통 채널의 다각화로 인한 매출 부진이 그 주요 요인. 매출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거나 오히려 역신장을 하는데 반해 비용은 매년 7~8%씩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고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슬림한 조직 운영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들은 실력있는 파트너를 찾기도 어렵고 이에 앞선 조직 구조 개편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실정이다. 한 여성복 업체 임원은 “물류, 해외 생산 등 대부부의 파트를 아웃소싱으로 돌리고, 본사에는 기획과 영업 조직만 남겨놓은 상태”라며 “매출을 높이고 이익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세제개선 과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법인세율 인상, 과세등급별 상속세 차등세율의 적용, 사업용 토지에 대한 종부세 경감 등 12개 과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지가상승률이 높은 지역에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통업체들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라며 “과세특례라도 적용해서 업체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 경쟁력 상승을 위해 세제의 단순화, 국제적인 조세경쟁력 강화, 기업가 정신 고취 등에 초점을 맞춘 세제 개선도 주장했다. 관계자들은 “가까운 일본 사례만 봐도 외자 유치, 외국인 노동자 활용 등으로 자국 내에 봉제 단지를 조성해 변화하는 패션 유통 환경에 발맞춰가고 있다”며 “조세 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규제 등에 대한 강도를 낮춰 숙련공 채용으로 국내에서도 좋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하 경제 비중 낮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또 다른 보고 자료 ‘국내 지하 경제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지하 경제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하 경제는 자영업, 가내수공업, 조세회피 등을 포함한다. 현재 국내 지하경제는 170조원에서 250조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8.4%), 일본(10.8%), 싱가포르(13.1%), 중국(15.6%) 등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다.
지하 경제 비중을 낮추는 것은 세금 인하, 정부 지출 감소, 실업률 감소 등의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온다. 패션 시장에서도 지하 경제의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초 국세청은 옥션, 지마켓 등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판 고액 개인 판매자들에 대한 매출 자료처리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을 통해 온라인 시장에 질적 성장을 가져왔다는 평가다.
박기웅 지마켓 패션사업부 실장은 “지난해 초 오픈마켓 개인 판매자들의 카피 상품 판매, 탈세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단기적으로는 매출이 1/3 수준으로 줄기도 했다”며 “그러나 이후 경쟁력 있는 좋은 업체들의 참여로 오픈마켓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제살깍기 과장경쟁은 그만
그렇다면 패션 기업들이 가장 먼저 고쳐지기를 바라는 부분은 어디일까. 상당수 패션 기업들이 세일 등 과당경쟁 방지를 꼽았다. 과당경쟁은 당장 매출, 이익과 이어지는 부분이면서 장기적인 브랜딩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노세일 정책을 전개하고 있는 한 여성복 브랜드 임원은 “패션 브랜드들의 매출이 떨어지면서 겉으로는 노세일 정책을 전개하는 브랜드들도 고객들에게 10% 할인 쿠폰을 발송하는 상황”이라며 “당장 할인폭을 크게 한 브랜드의 매출이 올라가면서 실적 중심으로 브랜드 평가를 진행하는 현 유통 상황에서 바이어들의 세일과 프로모션 요구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브랜드 데이, 백화점 정기 세일 등으로 백화점이 일년 내내 세일을 하는 셈이다. 가격이 중저가 패션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과당 경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이를 막기 위해 남성복에 일종의 가격 정찰제인 그린프라이스 정책을 도입했다. 롯데는 소비자 가격을 기존보다 30% 낮추고, 할인행사와 할인폭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는 4월 정기세일을 하지 않고 7월에만 30% 할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관계자들은 “그린프라이스 정책은 다른 백화점과의 가격 협의, 마진율 인하, 세일로 인한 매출 하락 등의 문제점이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브랜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통의 전문화, 대형화 필요
유통간의 경쟁 등 오랜 관행들도 개선점으로 지적됐다. 신규 브랜드의 경우 어느 한 업체에 낙인(?)이 찍힌 경우 그 패널티가 몇 년간 적용될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번 괴씸죄가 적용되면 시장에서의 가능성이나 다른 유통에서 올린 실적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신규 입점을 허락하지 않는 유통점의 횡포(?)는 책임자가 바뀌기 전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한 브랜드 임원은 “매장 수가 일정 이상 확보되야만 매출을 올리고 브랜딩을 할 수 있는 국내 패션 시장에서 유통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전문화와 차별성 확보도 요구된다. 백화점, 아웃렛, 쇼핑몰의 브랜드 입점에 차별화가 없어진 것은 오래된 이야기. 최근에는 백화점에서의 수익률이 낮아지고 브랜드들이 아웃렛, 대형마트 등의 유통으로 진출하면서 유통의 차별성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백화점 유통 중심의 브랜드들이 재고 상품의 할인 판매 등으로 제2유통에서도 높은 매출을 올리지 아웃렛, 대형마트 유통 전문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유통점들이 스스로 전문화, 대형화로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박찬욱 에이엔에이치인터내셔날 사장은 “상위 유통이 하위 유통까지 흔드는 지금과 같은 유통 구조는 유통업체, 브랜드 모두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가두상권이 무너지면 백화점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헤게모니를 가진 유통이 브랜드와의 상생을 생각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신수연 기자
ssy@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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