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산업 ‘컬처 비즈’로 도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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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1 오후 1:15:22




저렴한 가격, 좋은 품질, 빠른 유행 상품공급, 쾌적한 쇼핑 환경…. 지난 10여년 동안 패션 비즈니스의 절대적인 성공 요인으로 꼽혀온 요소들이다. 패션기업 경영자들과 임직원들은 이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다이렉트 소싱’이 화두로 등장하면 더 싼 가격에 상품을 만들기 위해 중국 대륙을 넘어 제3국 이곳 저곳을 뒤졌고, VMD의 중요성이 부각되면 해외 각지를 마다 않고 강연을 듣고 시장조사를 했다. 디자이너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해외 시장조사를 나가 007첩보작전을 방불케 할만한 수준으로 카피를 해오기도 했다.

이 결과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은 세계 패션산업사에 유례 없는 성장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론칭 4~5년 만에 2000억원, 3000억원 넘는 브랜드가 생기더니 지난해에는 단일 브랜드로 내수 시장에서만 4000억원을 바라보는 브랜드가 생길 정도가 됐다.

그런데 한국 패션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더 이상 소비자들은 지금까지의 브랜드에 만족하지 않는다. ‘좋은 브랜드’를 평가하는 기준이 이전까지와는 다르다. 바꿔 말하면 공급업자인 브랜드와 수요자인 소비자가 원하는 기준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최근 2~3년 사이 가속화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의 직진출은 패션·유통산업의 틀을 흔들고 있다.

많은 경영자들이 최근 2~3년 동안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왔다. 브랜딩, 브랜드 가치 등의 말로 해답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브랜드 히스토리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간’은 이제 태어난지 10년이 채 안되는 브랜드에게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패션인사이트>는 창간 특집9주년 기념 특집호를 통해 이 문제의 솔루션을 ‘컬처비즈’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패턴으로는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문화를 적용하고 활용해 짧은 브랜드 역사를 문화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또한 예술·문화·라이프스타일의 허브 역할을 통해 비즈니스와 예술의 경계선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다가올 미래를 이렇게 예측했다.

“21세기, 소비자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story)가 담긴 제품을 기꺼이 구매한다. 즉 물질적 상품에서 물질 ‘이상’의 다른 ‘의미’를 찾고자 한다. 구매 결정은 이성적인 것보다 감성적인 이유에서 이루어진다. 즉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담겨 있는 스타일과 이야기, 경험과 감성을 사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멋진 이야기'에 대한 소비욕구를 간파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보제공 이외에도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자는 미래의 조직에서 가장 존경받는 리더는 기업의 문화와 이미지를 창조하는 이야기꾼(Storyteller)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시장은 이러한 능력을 더 많이 요구할 것이다. 상품이 담아내는 이야기가 바로 경쟁력이다. 꿈, 감성 그리고 이야기. 이에 대한 경쟁 우위를 가진 기업들이 바로 드림 소사이어티의 마켓 리더이다”


문화가 부를 창출하는 컬처비즈 시대 도래
빅 브랜드·빅 컴퍼니는 문화와 함께 성장



문화마케팅? 컬처비즈?

최근 수년 전부터 문화마케팅이 마케팅의 새로운 분야로 주목 받아왔다. 기존 마케팅 툴보다 세련된 형태로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고 비용대비 효과가 뛰어나다는 장점 때문이다. TV-CF 등 대단위 마케팅을 감행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한 패션기업들에게 문화마케팅은 일종의 ‘단비’ 처럼 여겨졌다. 많은 기업들이 문화마케팅을 도입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유명 작가, 연주자와의 콜래보레이션은 실제 매출로 연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시점에서 말하는 ‘컬처비즈’는 지금까지의 문화마케팅과 차이가 있다. 문화마케팅은 넓은 의미에서 컬처비즈에 속하지만 컬처비즈는 단순히 문화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의 부가가치를 경제와 접목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문화마케팅이 단순히 시즌, 또는 연간 단위 프로모션으로 마케팅 4p에서 프로모션 단계에 해당한다면 컬처비즈는 브랜드 자체의 근간이 되는 개념(Concept)이다. 지난해 아웃도어 단일브랜드로 연간매출 4000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급성장한 「노스페이스」의 성장에는 ‘도전’이라는 컬처 코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노스페이스」는 ‘도전’이라는 베이스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적 접근을 했다.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을 꾸준히 후원한 것은 물론 빙벽 등반대회 후원, 스노보드 캠프 개최, 클라이밍 대회 개최 등 산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익스트림 스포츠로 영역을 넓혔다. 이 결과 「노스페이스」는 정통 아웃도어 시장에서 부동의 1위에 오른 데 이어 젊은 층 소비자들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아콘 패딩’, ‘눕시 재킷’, ‘레콘’, ‘보리알레스’ ‘바람막이 13, 17, 21, 24’ 등 매 시즌 만들어내는 히트 아이템도 이제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김철주 골드윈코리아 전무는 “「노스페이스」가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절대 강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데에는 아웃도어 고객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위험하고 어렵고, 힘들다는 ‘도전’에 대한 이미지를 성취 가능하고,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인식시키는 과정에서 출발했다”며 “이 전략이 매장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한 익스트림 스포츠 상영, 크라이밍월(암벽등반 시연), 몽블랑 나무 등의 것으로 표현됐지만 결국 그러한 요소들을 통해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아웃도어 스포츠=즐거운 것’이라는 심어준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패션산업과 컬처비즈

‘컬처비즈’는 쉽게 말하면 컬처 비즈니스, 문화를 바탕으로 기업 활동에 접목하는 과정이다. 문화와 산업의 융합, 문화의 상품화, 문화를 통한 창의적 차별화를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개념이다. 컬처비즈가 점차 확산하면서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의 두 얼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저 좋은 물건(서비스)을 만들어 고객 앞에 내놓기만 하면 팔린다는 오랜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는 전통 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섰지만, 품질과 디자인에 더해 ‘문화’를 가미하는 것이 부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아는 기업들은 이미 새로운 기회의 땅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크게 구분하면 ‘의(衣)·식(食)·주(住)·휴(休)·미(美)·락(樂)’으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패션은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

문화컨설팅 기업 풍류일가의 대표이자 패션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우정 사장은 “현재 패션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아마도 옷이 해당하는 영역이 ‘의’라는 부분에서 ‘미’와 ‘락’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며 “고도 성장기를 거친 우리 민족에게 좋은 옷, 비싼 옷은 성공의 상징이기 때문에 소유하고 싶은 목표이자 대상이었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성숙하면서 소유에 대한 개념에서 벗어나 즐기고 누리는 대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즐기고 누리는 것’은 지금까지 문화예술의 속성으로 정의되어 왔다. 소비자들이 패션과 문화를 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패션기업의 마케팅이 ‘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데에서 현재 국내 패션 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시작됐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서정균 에프엔에프 상무는 “패션 브랜드에 있어서 컬처비즈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건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기준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 패션비즈니스는 콘텐츠 싸움이다. 과거에는 상품이라는 콘텐츠의 비중이 70~8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30~40% 수준으로 떨어졌다. 과거에 20~30% 비중을 차지하던 마케팅, VMD 등의 요소의 비중이 다소 올라가기는 했지만 20~30%의 공백이 발생한다. 이 공백을 제3의 요소로 채워 넣어야 하는데 ‘컬처’가 가장 효율적이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패션 컨설팅 기업 맥셀의 김성일 대표도 “패션비즈니스는 속성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복종과 아이템이 세분화되면서 전국 골목골목까지 매장을 열고 소비자들과 접점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 예술 분야가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에 비해 빈도와 횟수가 훨씬 많은 것은 물론이다. 규모의 크기는 차이가 있지만 공간도 갖추고 있다. 매장 앞에서 공연을 펼칠 수도 있고, 매장 안에서 그림 전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전시 공간이 티셔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 소유의 개념에서 향유의 개념으로
문화와 패션은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



컬처비즈 선점하면 글로벌화 가능하다

한국 브랜드의 글로벌화가 더딘 이유 중에 하나로 국가브랜드 인지도와 경쟁력이 뒤쳐진다는 이유가 꼽혀왔다. 브랜드가 괜찮다 하더라도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만든 브랜드를 복식의 본류(本流)인 서구에서 받아들이기 쉽겠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의 비전을 품고 있었던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도메스틱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으로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패션브랜드들이 효과적으로 컬처비즈를 활용하면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드라마에서는 대장금이, 대중문화에서는 박진영을 비롯한 선두주자들이 먼저 달리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문화 콘텐츠는 비단 국내에만 한계 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 세계의 문화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 패션기업들도 투자 여력이 있다. 필요하다면 파이낸싱 기법을 동원하면 된다. 문제는 그만한 투자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냐는 데 있다.

가수겸 프로듀서 박진영은 지금도 뉴욕에서 글로벌 스타를 키워내기 위한 작업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그는 올 연초 한 언론매체 기고를 통해 “IMF 때는 우리나라만 흔들렸지만 지금은 미국도 흔들리고 있다. 이런 기회는 다시는 안 올지도 모른다. 하늘이 내린 저주인지 기회인지는 이제 내 손에 달려 있다. 나는 빚더미를 안고 있는 작은 나라의 작은 회사 경영자이지만 모든 걸 걸고 감히 미국시장에 도전해서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가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세계 경제의 질서라고 여겼던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재편될 수도 있다. 실례로 미국을 대표하는 유통업체들조차 대규모 감원과 파산이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 패션브랜드의 글로벌화가 2009년 컬처비즈를 통해 시작되지 않을까?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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