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서 문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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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8 오후 2:10:20




갑자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평소에 콘서트장이나 화랑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뭐 새로울 것도 없지만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있던 사람들의 입에서까지 그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산업이 경제적 효율이 떨어지는 반면에 문화를 매개로 고도의 경제적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분야들이 늘어나는 까닭이겠다. 한마디로 문화가 돈이 되는 것 같으니까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문화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본다면 문화와 산업의 경계에 있는 패션 분야에서 문화를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바로 전까지도 한국의 많은 패션 기업들과 디자이너들은 그저 옷을 기능성으로 적당히 치장하고 그것으로 장삿속만 차리고 있었다. 설사 남의 것을 베끼는 한이 있더라도 편리하게 만들어 빨리 많이 팔아버리는 것. 그것이 한국에서 유통되던 패션 산업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패션에서 문화를 말하고 질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으로는 더 이상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디자인의 시대이고, 문화적 콘텐츠를 파는 시대라고 설래발을 치고 있으며, 새로운 변화에 맞추어 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겁을 주고 있으니 변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그렇다면 패션에서 문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매출이나 기능성, 실용성만을 챙기던 눈에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다양한 개념의 문화

문화만큼 다양한 가치를 함유하고 있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 고급문화, 생활문화 등 문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문화의 모습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제시되고 있는 문화란 말을 어디다 갖다 붙여야 할지를 생각하면 좀체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패션에서는, 특히 패션 디자인에서는 일반적으로 디자인에 쉽게 응용할 수 있는 대중문화나 순수미술 같은 고급문화예술 정도를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모든 문화를 통합하는 문화인류학적인 차원에서의 문화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문화란 특정 지역과 특정 문화권 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삶의 방식들을 모두 합해서 말하는 것으로서, 주로 문화인류학에서 대상으로 하는 개념이다. 즉, 문화란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총체적 삶과 관련이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전수되어 오는 전통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가끔 외국 사람을 만나면 당신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하고 물어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런 차원에서의 문화는 시대적 보편성보다는 지역적 특수성에 입각하며, 주체성이 그 무엇 보다 강조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프랑스 문화, 이탈리아 문화, 일본 문화, 인도 문화, 아프리카 문화 등이 이런 거시적 관점에서 말하는 문화이다.

일반적으로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국의 특수한 문화를 먼저 확보하고 나서 전문분야를 챙긴다. 문화 혹은, 창조성과 관련된 분야들은 특히 그렇다. 패션으로 보자면 일본이나 프랑스 패션이 먼저 확보되고 나서 유행을 챙기고 실용성을 챙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도 당연히 한국문화의 특성에 따른 한국적 패션을 먼저 확보하고 그 다음에 다양한 문화의 하부 논리들을 논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반대였다. 아무리 서세동점의 어려운 시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근현대사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합당한 패션의 전형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 아니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만일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젊은 패션 학도들이 미국으로 날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술로서의 패션, 장사로서의 패션

해방이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패션을, 패션 디자인을, 하루라도 빨리 선진 제국으로부터 배워 와야 할 문물로 생각하고 있다. 어서 빨리 미국에 가서 미국의 앞선 패션 디자인을 배워 오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잇고 있으며, 미국의 유명한 패션 디자인 스쿨들을 먹여 살리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패션 디자인이란 결코 문화 인류학적 산물이 아니다. 그저 빨리 배워 와야 할 하나의 선진 기술일 뿐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주체적인 문화나 전통이란 시대에 뒤처지고, 낡아빠져서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 안에서 전통과 패션 디자인은 이렇게 물에 기름 같은 관계였으며, 전통의 흔적이 없을수록, 선진국의 냄새가 강할수록 첨단 패션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결국 앞서 말한,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중요했던 주체성이 패션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극복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뒤에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모든 것을 산업으로,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3류 자본주의적 태도가 깔려있었다. 말하자면 장사만을 최고로 보는 협소한 시야들이 패션 산업의 주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우리나라의 패션 산업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문화적 색채를 부단히 탈색시켜왔다. 국내의 수많은 패션 디자인과의 졸업전이나 국내 패션 업체들의 상품들이 주로 서양의 흐름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은 우연의 소치가 아니라 이처럼 대단히 조직적인 인식의 결과였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의 문화를 훼손시켜 놓고서는 이제 와서 문화가 중요하다고 떠드는 것이다. 물론 지금 패션 디자인계나 패션 업계에서 생각하는 문화에서 전통이나 주체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판매 촉진을 위한 촉매제로 활용하고자 하는 심산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뒤에는 더 이상 선진국의 복사로는 장사가 안 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하지만 문화를 그저 패션을 장식하는 양념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직면한 어려움을 회피하기는 정말 어렵다. 지금 문화가 요청되는 근본 원인은 패션이 문화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기 패션이 없기 때문이다. 순수 작품으로서 패션은 이미 오래전부터 화랑가를 찾고 있었고, 수많은 패션 관계자들이 연예인 신분(?)으로 대중문화를 선도한 것도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뭐가 모자라서 문화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패션 분야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은 바로 주체성이다. 전통을 회복하여 삶의 방식을 정상화하고 나아가 이것을 경쟁의 도구로 승화시키는 것. 이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화의 최종적 문제인 것이다.


패션 디자인에서 문화가 가지는 힘

이제는 문화가 중요한 시대라는 구호를 여러 군데에서 들을 수 있지만 이것은 사실 사실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우리만 여태까지 장사에만 몰두해 있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이 모두 입기 편한 쪽으로만 디자인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가 문화의 흐름에 입각해서 발전되어 왔다. 아마 유럽의 귀족문화가 없었다면 우리가 입고 있는 재킷이나 원피스, 코트, 구두 등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꾸로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5000여년을 내려오는 자신들의 옷을 갑자기 폐기처분하고 서양식의 옷을 입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편하게 입어왔던 옷이 어떻게 갑자기 불편해질 수 있을까? 이것은 전적으로 서양문화를 절대화시키는 문화적 입장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옷이 그냥 옷이 아니라 대단히 문화적인 소산인 것이다. 때문에 패션에서 문화는 그저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먹느냐, 먹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 대단히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일 수록 패션 디자인에서 문화를 챙기고, 특히 자국의 전통과 주체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경쟁의 주요 무기로 삼는 것은 상식이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왔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라다나 샤넬, 루이 뷔통을 보자. 그 뒤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전통이 반드시 자리잡고 있다. 만일 이들 브랜드들이 태국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나온 브랜드라면 누가 그렇게 고가로 사려고 할까? 사실 사람들이 비싼 돈 주고 사는 것은 옷이 아니라 브랜드,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나라의 인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선진국의 디자이너들은 이것을 오래 전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패션과 이탈리아 패션, 일본 패션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독특한 개성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넘쳐나지만 이들의 디자인을 모아 보면 희한하게도 각 나라별로 특징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들에게는 귀족문화의 장식적인 화려함이 두드러지고,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들에게서는 장식성보다는 생기 넘치는 인간의 본질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여성복만 보면 프랑스 패션에서는 여성적인 느낌이 강조되고, 이탈리아 패션에서는 당당함이 강조된다. 물론 겹치거나 구분이 어려운 측면도 없진 않지만, 크게 보면 프랑스적 패션과 이탈리아적 패션이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라들 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점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디자이너들이 자국의 문화적 특징들을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을 경쟁력 강화의 무기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의 패션 디자인을 보면 더 재미있다.




같은 동아시아, 다른 행보


프랑스,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인은 좀 구별하기가 어렵지만 일본의 패션 디자인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현대적인 옷이기는 하지만 칙칙하면서도 매력적인 색깔과 여유있게 몸을 감싸는 옷의 모습이 일본적인 느낌을 자욱히 드러내고 있다.

정확하게 분석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서양적인 옷은 분명 아니다. 이처럼 현대성을 유지하면서도 독특한 일본적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패션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은 서구의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실지로 이세이 미야케나 다카하타 겐죠, 레이 카와쿠보 같은 일본의 대표적 패션 디자이너들의 세계적 명성과 그들이 받는 대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을 많이 뛰어 넘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양에 몰려가 있어도 아직까지 파리 컬렉션에 참가했다는 것이 국내 매스컴에 대서특필되는 우리의 상황과는 천지차이다.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만약 패션을 하나의 기술로 인식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디자이너들을 비슷하게 따라 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일본의 전통을 현대화 하면서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는 패션 디자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키모노를 그대로 차용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형태에서 느껴지는 추상적인 이미지나 색상의 분위기는 그 유전자로 충만하다.

특히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는 일본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 복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융통성과 편리함을 현대적인 재료와 구조로 완벽하게 현대화하였다. 이처럼 자국의 전통을 현대화하면서 보너스로 일본의 패션 디자인계는 서양인들이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독특한 패션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것을 보면 동서의 문화를 막론하고 문화가 얼마나 막대한 자산이 될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나라이면서도 서양 문화에 식민지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동아시아적 문화를 대단히 성공적으로 현대화하였다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문화 추스르기에 들어서 있는 우리의 패션 세계에 너무나 좋은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문화, 본질로 돌아가라!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에스페란토 어와 같은 국제 공용어가 패션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나라, 어떤 문화권의 패션이 세계를 지배할 뿐이다. 대학 졸업후 5년여 동안 파리와 미국에서 활약하다가 1960년대 동경 올림픽을 전후해 일본에 돌아온 이세이 미야케가 한 말은 서양 복식으로는 서양의 디자이너들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패션에서 문화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문화는 남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찾고 전통의 유산을 현대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일찌감치 외국에서 활동을 한 이세이 미야케는 그것을 정확히 이해했다.

귀국한 후 이세이 미야케는 바로 전통 텍스타일 연구소를 만들어서 자국의 전통 복식의 현대화에 대해 집중 연구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파리에 재입성하여 장식과 입체 재단에만 빠져있던 파리의 패션계를 충격에 빠트렸고, 지금의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흰 옷에 한글 붓글씨 한 번 썼다고 한국의 매스컴에 대서특필되는 수준과는 비교가 안 된다.(이미 1997년에 하나에 모리가 붓글씨로 히라가나가 씌여진 재킷을 선보였으며, 그 정도로는 이슈거리도 안 되었다.) 만일 이세이 미야케가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에 취직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직장생활을 계속 했다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갖추어지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 보다 장사를 위한 소도구 수준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라는 무기로 광범위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화려한 이탈리아 패션, 프랑스 패션 뒤에는 서로가 먹히지 않으려는, 그리고 서로가 먹으려는 전쟁이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단지 그 전쟁터는 화려한 조명과 멋진 옷과 아름다운 모델들이 비폭력적으로 공방할 뿐이다. 우린 이제야 눈을 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무기로 삼는 전통문화라 해봐야 기껏 500년을 넘지 않는다. 이들의 거의 10배 가까운 문화적 전통을 갖는 우리가 이들에 비해 모자라거나 위축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특정한 흐름에 줄을 대고 자신이 가진 자산을 홀라당 뒤집어 버린다면 본전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패션은 제조업이 아니라 문화사업이란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고, 문화에는 주체성이 요청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세이 미야케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본질로 돌아가 기본부터 다졌다는 사실을 얕보지 않는다면 그리 큰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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