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A가 한국 패션산업의 새로운 출구?
‘어패럴 산업=패션 산업’이라는 로컬 제조업 중심 구조적 시각을 반영한다면, 지난 30여 년간 국내 패션 산업은 분명 ‘공급 과잉과 획일적 채널 구성이 야기시킨 시장의 이탈’이라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내부 상품기획 능력의 고도화로 인해 유발된 치열한 경쟁의 결과이다.
이런 패션기업들의 경영의 그늘에는 분명 ‘경계면의 변화’란 여명도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는‘리테일 시대’의 도래나 SPA를 거론하며 희망가를 부른다.
선진국 시장의 경험을 살펴보면, SPA 비즈니스 모델은 그 시장 생존자의 모습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긍정적 요인 보다는 부정적 요소가 더 많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부정적인 이슈는 패션 소비자들에게 가격만 어필하고 볼륨존 소비를 유도해 결과적으로 시장의 축소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로 일본 패션 업계는 월드사가 OZOC사업부를 통해 SPA를 본격 도입하기 시작한 1994년 이후, 연평균 2%대의 지속적인 시장축소가 일어났다. 또 「유니클로」와 같은 업태가 중심에 자리잡은 1997년 이후에는 가속도가 붙어 일본 시장은 20년만에 시장규모가 절반가까이 축소되는 놀라운 일이 생겨났다.
이웃나라 일이지만 섬뜩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패션기업들은 이 상태라면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로컬 시장에서 생존기회로‘SPA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뒤늦게 지나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건 우리 업계가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 적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모델로 SPA를 고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대두
이제 업계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의 모방에서 출발하던 개발도상기의 관행을 다 버려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시기로 점프업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시장 환경의 변화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부터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디자인 매니지먼트의 관점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하는 첫 번째 요소는 고객 세분화이다. 더 확장된 개념으로는 시장 세분화라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현상과 대책을 우선 살펴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하는 요소 중 첫째 요소는 ‘가장 중요한 고객은 누구인가?’와 ‘우리가 시장에서 그들을 위해 밸류를 제안할 수 있을까?’이다. 헌데 기존 비즈니스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패션 기업들은 이런 절차를 생략한 채 비즈니스 모델을 송두리째 바꾸는 방법으로 고민하고 있다. 차라리 채널 다변화나 고객관계 강화 같은 마케팅 측면의 접근은 상대적 안정성이 있다고 평가해 줄만 하다.
‘우리 주변에 다가온 근린 시대의 대두’는 바로 이런 시장의 변화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해소시켜줄 증거가 될 것이다. 지난 채널의 변화를 보면 어떤 시대에도 상품이 주도하는 시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래시장 중심의 ‘생필품으로서의 의복시대’를 거쳐 차별화가 진행되던 시절의 양품점과 백화점, 확대기의 프랜차이즈 노면점, 성숙기의 백화점 주도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GMS(종합소매업)나 무점포 판매 같은 다채널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품이 주도했다. 이 시기가 지나 전환기 상황을 맞고 있는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도 패션산업의 DNA가 모두 상품 관련 DNA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여기선 Market Place라고 쓰고 싶다)은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모습이 근린의 확대라는 점이다.
합정동 메세나폴리스를 중심으로 한국형 근린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사진은 메세나 폴리스 상가 전경. |
◇ 근린 시대는 확장된 두 소비자층이 주도
소매 유통의 역사에서 한-일간 소매 유통의 격차는 형태만으로는 20 여년 이상의 시차가 있다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일본 소매 유통업이 진행된 방향으로 본다면, 현재 우리 소매 유통에 나타날 현상은 카테고리와 카테고리가 결합하는 몰 형태의 대형 소매 유통이 등장할 것이고, 다음 단계가 근린형 유통으로 중심지 유통을 탈피하고 생활권에 등장하는 근린형 쇼핑센터 NSC (Neighborhood Shopping Center)의 순서로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또 NSC와 더불어 나타날 형태인 도시형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여 구성되는 UEC(Urban Enterta inment Shopping Center) 등도 다분히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채널의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이런 거시적 채널의 변화 속에서 가장 먼저 이해 가능한 근린 시대의 증거로 요즘 GMS 업태인 홈플러스 진출 문제로 시끄러운 합정동 메세나폴리스와 그 주변을 들 수 있다. 합정동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업시설의 확장은 우리 소매업에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근린의 확대문제를 요즘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홈플러스 합정점의 사례를 가지고 풀어 보자. 홈플러스가 기업이미지의 부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합정점을 고집하는 이유는 전통적 근린이 확장되면서 소비자들에게는 중·대역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새로운 근린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가치가 상품의 단계를 넘어서 다른 그 무엇을 요구하는 시대에서 기존 채널들로는 분명 부족함이 있다. 이러한 결핍이 확장일로의 ‘근린’의 개념과 이해와 만나게 된다. ‘근린’은 주민과 방문자로 이루어진 두 타입의 생활자가 확대시키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홈플러스가 판단하는 메세나폴리스 점의 의미는 단순한 NSC형의 추구라기 보다는, 두 타입의 생활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더 쉽게 표현하면 하나의 점포로 두 개 점포를 운영하는 효과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건너편 홍대 상권의 확장 개념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상권 전경. |
◇ 합정동, 가장 뚜렷이 부각되는 근린
그렇다면 합정동 근린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확대된 근린은 주민보다 방문자에게 어필하는 요소를 지니고 성장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일차적인 방문자는 홍대 상권에서 필연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개미들에 의해 형성된 재미(FUN)의 요소가 합정동 지역까지 확장되어 상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요구하는 매력적인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는 점, 두 번째는 강남지역 사교육 업체들의 이전 집합으로 사회적 동인이 큰 주니어 세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점, 세 번째는 인근에 전통적 화교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었다는 역사성과 함께 면세점 형태의 중화권 비즈니스가 고속 성장하면서 글로벌의 성격도 지니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다.
이처럼 확장된 근린시대는 과거 개념의 주거 생활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 생활자와 방문자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위기관리가 보장된 시대를 의미한다.
패션기업들이 근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김묘환 대표
컬쳐마케팅그룹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