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을 시작하면서 한국 패션산업의 전망에 대해 처음 내뱉는 단어가 <클리프행어(Cliffhanger)>라니. 내가 생각해도 참 멋도 없다. 이십여 년 전 전성기 지난 람보 실베스터 스탤론을 기용해 히트를 했던 영화 제목으로 기억되는 <클리프행어>가 국내 패션시장 전망 원고 의뢰를 받자마자 주제로 떠올랐는데 딱 지금 우리 패션업계 상황에 맞는 단어가 아닌가 한다.
영화 내용이 눈 덮인 극한의 록키 산맥을 배경으로 절벽에 매달린 산악구조대를 주인공으로 펼쳐졌으니 직역을 한 그대로 사람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 이상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절벽에 매달린 사람 형세의 우리 패션업계 사정인 것 같아 이해가 되고 영화, 텔레비전, 소설 등에서 통용되는 연속 모험물이나, 스릴 만점의 영화,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쟁을 뜻하는 여러 의미처럼 늘 흥미진진한 패션업계를 빗대어 표현 해주기도 하니 <클리프행어>를 신년에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하지만 <클리프행어>를 떠올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만을 상상했다기 보다는 ‘‘인구절벽’ 앞에 서있는, 나아가서 소비절벽으로 이어질 상황에 서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한 고민을 과연 우리 패션계가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사진자료: 1993년 미국영화 <클리프행어>의 한 장면. |
◇ 한국사회 절벽으로 향하는가?
미국의 산업경제학자 해리덴트(H.S. Dent)가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서 인구절벽에 직면한 선진국에서 나타났던 현상을 다룬 자신의 저서 를 중심으로 주장했던 것처럼 2016년부터 한국 사회는 소비, 노동, 투자자가 사라진 세상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하던 그 내용 그대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더 심각하게 한국은 2018년 인구절벽을 경험할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라 주장하는 그의 주장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정말 절벽에 매달린 사람처럼 서늘하고 쪼그라드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NYU의 루비니 교수와 더불어 21세기의 대표적인 경제 비관론자인 해리덴트는 자신의 경제관을 비관적이고 날개없이 추락하는 것으로 잡고 초지일관 어둡게 전망 하는 학자로 유명하긴 하지만 워낙 국내 분위기가 2014년 세월호 사건과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 등의 비정상적인 사태의 연속으로 수년간 암울하다 보니 국내의 미디어들이 앞다퉈 이런 비관적 내용을 퍼다 나르고 대기업들도 누구라 할 것 없이 비관적 분위기를 기조로 사업방향을 설정하고 몸 사리는 실정이니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창조적 경제로 새로운 도약’이란 구호가 무색할 따름이다.
실제 이런 분위기는 국내 대표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성그룹조차 예외는 아니어서 연초부터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건물을 5750억에 재계순위 19위인 부영건설에 매각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만도 26조가 넘는 삼성그룹이 전자 영업이익 2% 정도에 불과한 푼돈(?)때문에 창업자와 2대 총수인 이건희 회장에 걸쳐 그룹 성장의 유전자가 탄생한 곳이라는 평가를 듣는 건물까지 매각할 정도로 국내 경제계가 보는 한국의 경제 전망은 해리덴트의 주장보다 더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해리덴트는 순전히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와 소비라는 매개만을 가지고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한국도 일본보다 20여년 늦게 인구절벽에 직면할 것이고 중국조차도 한국보다 7-8년 뒤에는 인구절벽, 심지어 중국은 선진국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인구절벽에 부딪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중국 경제는 스테로이드를 맞아 버티는 수준이며 정체 상태가 지속될 것이고 중국 경제 성장의 핵심요소인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중국정부는 버블을 더 키우기보다는 스스로 터뜨리는 게 바람직하다고까지 말한다. 경제학자가 아니니 이런 주장에 대해 맞다 틀리다 할 자격은 부족하겠지만 해리덴트 주장의 가장 큰 오류는 세계성 부족에다가 20세기 국가주의적인 구시대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혹 그의 주장이 오류가 아니고 정확한 근거가 있다고 해도 대책이 될 수 있는 접근이 여기서부터 가능 할 듯 싶다.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나던 17세기 말을 즈음해서 전제 봉건왕조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산업혁명을 거쳐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고 20세기 이데올로기의 심각한 대립을 거쳐 전세계 많은 국가가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한 민주사회로 진행하는 일련의 현대사 과정에서 해리덴트의 분석은 분명 20세기적 시점으로 옮겨 놓으면 그럴듯하다.
국가의 구성은 국민과 국민들이 생산해내는 가치로 이루어졌으니 당연한 타당성을 지닌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디지털 시대로의 빠른 이전은 해리덴트 주장의 근거가 되는 국가와 구성원의 질서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통치적 의미로서 국가의 개념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 지역으로 결합하거나 혹은 국가 간 조약에 의해 확대되기도 하고 통합되는 사건에 의해 전통적인 인식이 무너졌다.
EU통합이나 국가가 FTA 혹은 TPP같은 다자간 협정에 의한 거주 이전의 자유나 경제 공동체의 구성 등이 그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국내만 해도 2015년 상반기 통계로 합법 거주 외국인은 200여 개국에서 입국한 185만명으로 총인구의 3.6%에 달하고 있다. 그야말로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지구촌 어디서든 벌어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의 변화는 과거 국가의 규모를 측정하는 단위인 국민총생산GNP나 국내총생산GDP의 개념조차 퇴색되고 있다는 현실로 나타난다. 헤리덴트가 주장한 국가와 국민의 기준 개념이 확장되면서 국내 총생산이나 국민총생산의 기준보다 GO(Gross Output)라는 경제지표를 미국이나 EU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해리덴트 주장의 배경인 국가와 인구 구성, 그리고 소비의 상관관계 기준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오류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 될 것이다.
실제 미국의 GDP를 발표하는 미 상무부 는 2014년부터 총산출(GO·Gross Output)이라는 경제지표를 발표했다. 1960년대부터 GDP 개념을 채택한 후 50여년 만에 경제활동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가 등장한 것이다.
GO의 개념은 최종 소비재의 가격만을 따지는 GDP와 달리 생산 과정의 모든 가격을 집계하는 방식으로 최종 소비재뿐 아니라 최초 원자재부터 중간재의 가격도 포함시키는 개념이다. 최종 소비재만 집계하는 GDP 집계 방식으로는 소비 측면만 강조되지만 GO 집계방식은 생산 부분도 강조돼 소비와 생산의 비중이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미국에 이어 EU도 2015년부터 GO 지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GDP가 국가의 경제규모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GDP는 용어 그대로 국내총생산 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지어서 국내 브랜드 혹은 제품을 만들고 국내 브랜드 제품이 해외에서 아무리 많이 팔려도 GDP는 국내총생산 이기 때문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GDP기준으로 보면 인구 1억2천만명인 일본은 인구가 5000만명인 한국보다 2.5배 이상 큰 시장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총산출GO로 보면 일본은 한국보다 불과 1.6배 큰 국가에 불과한 경제 규모가 되는 것이다.
◇ 중국, 아직도 엘도라도일까?
머리 아픈 경제 용어들을 등장시켰지만 본론은 비관적 전망에도 여전히 한국 패션산업의 활로는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해리덴트가 국내 패션업계가 마지막으로(?) 기대고 싶은 기회인 중국에 대한 전망조차 터지기 직전의 버블로 표현하는 이 시점에서 여전히 중국이란 엘도라도를 찾아서 혹은 골드러시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처럼 우리 패션업계가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중국 시장에 도전했던 수많은 사연들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른다.
쌓인 재고를 들고 가서 풀어 보자던 기업, 하위시장이므로 무조건 고가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던 많은 기업들, 신뢰란 상대적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믿을 수 없으니 독자행보를 택해야 한다던 기업들, 국내에 설 자리 없어진 잉여 인력들을 내보내 시장 개척하라던 기업들, 거기에 한술 더 떠 권한 없는 현지 책임자들 양산하던 기업들, 조선족 통역이 없으면 아무런 행위를 할 수 조차 없던 기업들, 연해지역에서 출발해서 내륙 2, 3선으로 진출해야 한다던 마치 한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복사하듯 돌려 구사한 대기업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 콩트처럼 나열한 우리 패션업계가 중국에서 벌인 위와 같은 일들이 현재 중국 패션시장에서 우리가 거두고 있는 성적표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가 대충(?) 중국시장을 기웃거렸지만 한국의 패션 기업은 중국의 패션시장에서 나름 잘 성장해왔다. 이미 남성복과 스포츠 시장은 성숙시장으로 진입해서 저성장에 과당경쟁, 가격 경쟁시대로 이전하면서 구조조정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고, 주력시장인 남·여 캐주얼 시장은 여전히 20%에 가까운 성장 추세를 기록하면서 시장 사이즈를 키우는 한편 O2O마켓을 비롯한 새로운 마켓을 창출하면서 외세에 대항하는 단계까지 발전하는 중이며, 아동과 아웃도어 시장은 아직 규모 면에서 미미하고 낮은 단계지만 25%를 상회하는 고도 성장으로 제한적 경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대도시에서 글로벌브랜드 주도의 시장이 중국 패션시장을 열었다면 앞으로 3,4선 도시의 로컬 브랜드들이 국민의 소득수준과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 맞춰 주도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한다.
이들 두 세력이 5년 안에 치열한 전투를 벌일 것이고 전투가 끝난 시점에 본격적인 중국의 패션 산업이 부흥할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국내 패션 기업들이 이러한 중국시장의 형국에 맞춰서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현재의 국내 패션업계 사정을 2000년대 초 IMF 직후의 환경보다 더 나쁘게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은 상황에서는 앞에서 열거한 이십여 년의 꽁트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 변해야 생존할 수 있다
절벽에 매달린 심정으로 중국시장 20년의 경험이 주는 교훈을 곱씹어 보자. 현지 기업의 강점이 무엇인지? 그건 아마도 로컬에 대한 깊고 풍부한 지식, 로컬 질서와 제도 체제와 형성된 강한 유대감, 이상적인 플레이스 전략, 플렉시블한 적응과 신속한 대처 능력 등이 되지 않을까. 또 성공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보여준 강점은 무엇일까? 브랜드 인지도, 풍부한 관리의 전문성, 풍부한 자금력과 자본 시스템에 대한 접근, 전문적인 브랜드 프로세스 및 시스템의 보유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패션인들이 변화를 이야기한다. 또 많은 패션기업들이 변화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왜 변화가 쉽지 않은 걸까? 그건 아직도 절박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 동안 이룩한 작은 성공에 취해서 혹은 변화하지 않고 버티면 나보다 취약한 다른 누군가가 먼저 도태될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시장에서 생존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덴트의 비관적 주장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바뀌는 시대이고 과거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는 시점이라는 인식만 한다면 변화가 생존이라는 당연한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절벽에 절박하게 매달려있다고 생각해보라, 클리프행어!
김묘환 CM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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