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초현실적인 그래픽 이미지가 온 몸을 뒤덮고 있다.

솜털 구름이 덮인 파란 하늘과 황금빛 사막,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기계인지, 건축물인지, 외계에서 날아와 불시착한 미확인 비행선 같기도 한 이상한 조형물이 대칭의 형태로 옷에 프린팅 되어 있다. (사진 1,2)
아! 어쩌면 사막 위에 세워진 놀이공원일 수도 있겠다.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보자. 이번에는 그 조형물의 내부 기계 장치 같다.(사진 3) 역시나 대칭형이라 복잡한 듯 하지만 정리되어 보인다. 다만 자연의 풍경과 모노톤의 그림이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준다. 초현실주의 작가 H.R 기거에 비하면 성적인 코드가 빠졌을 뿐, 기괴한 기계 이미지가 살아있다. 평면적으로 프린팅 되어 있던 이미지는 수 천, 수 만개의 스팽글이 수놓아지면서 질감이 살아나고 있다. (사진 4)
여기까지만 보면 개연성 없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옷들은 뭔가 싶다. 컬렉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살펴보고 나니,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면 이렇다.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인도 사막 한 가운데 불시착한 어느 거대한 물체. 서서히 석양이 지고 밤이 되면 그곳은 점차 레이저를 쏘는 화려한 클럽으로 변하고, 밤의 여왕들이 몰려든다. 어느 정도 컬렉션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왜 하필 인도 사막이라고 단정지었는가? 그것은 바로 왼쪽 코에 건 액세서리 때문이다. 인도의 여성들은 결혼 후 아이를 가질 시기가 되면 왼쪽 코에 피어싱을 한다.
인도 민속의학에 따르면 그 위치가 아이를 갖는 것과 관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콧구멍 피어싱(nostril piercing)이 각 지역이나 부족에 따라 위치가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북 인도, 티벳, 부탄 등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왼쪽 코를 뚫는다. 그에 비해 아시아, 태평양 부근 섬의 부족 전사들은 사나운 인상을 위해, 고대 잉카와 아즈텍 주민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쇠코뚜레처럼 코 사이의 격막을 뚫는 셉텀 피어싱(septum piercing)을 했다.
여기까지 살펴보고 나니 문득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낸 디자이너가 누군지 궁금해진다.
그는 바로 마니쉬 아로라(Manish Arora)이다. 인도 뭄바이(영국식 표현 봄베이에서 1995년 개칭) 출신의 디자이너로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설립하고 뉴델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 파리 컬렉션에서 인도적인 향취가 가득한 독보적인 패션쇼를 선보이고 있으며, 2012년 1년간 파코 라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다.
뭄바이(Mumbai)는 어떤 도시인가. 인도 반도 서쪽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초기에는 아라비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에 따라 인도에서 유럽으로 가는 최단거리에 위치한 뭄바이항은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다.
인도 전국에 철도망이 완비되자 뭄바이는 인도 서해안 최대 경제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항만 기능은 인도 최대로서 전 인도 무역량의 1/3을 취급하는 인도 제1의 항구 도시이며, 경제 도시이다.

한편 인도는 연간 개봉 영화 1000여 편과 영화표 판매량 약 40억 장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강국이다.이러한 인도 영화의 절반 이상이 제작되는 도시가 바로 뭄바이이며,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인 볼리우드(Bollywood)라 불리는 인도 최대의 영화 산업 도시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뭄바이에는 ‘도비 가트(Dhobi Ghat)'가 있다. 1000여명의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빨래를 하는 세계 최대의 빨래터이다. 형형색색의 빨래감이 사람 손으로 직접 이곳에서 매일 세탁된다. 이렇게 고되게 일하고도 한 달에 10만원 남짓의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인도 최고 부자의 집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보다도 크다는 거대 저택이 공존하는 곳도 뭄바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뭄바이 출신인 마니쉬 아로라의 디자인 특징은 인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적절히 믹스 매치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디자인의 매력이다.
그의 컬렉션은 팝아트적인 그래픽과 서양식 의복의 실루엣, 구조를 따라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도 특유의 화려하고 정교한 액세서리를 매치하고, 색을 쓰는데 거리낌 없는 인도인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다. 매니쉬 아로라의 컬렉션을 보면서 인도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이번 2013 F/W 컬렉션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처음에 만들어냈던 이야기를 컬렉션에 등장했던 옷은 순서에 맞춰 차근차근 살펴보자. (사진 5)에 등장하는 장식은 프랑스 디자이너의 리본이나 보석, 꽃 같은 로코코적인 장식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옷은 고채도의 쨍한 색감과 모직 같은 소재처럼 텁텁한 이미지인데 반해, 장식은 까만 색으로 따개비 같기도 하고, 긴 테이프가 꼬임으로 약간의 광택이 있어 배경이 되는 옷과 대비된다. 프랑스의 장식이 옷과의 ‘조화’를 우선시 했다면, 마니쉬 아로라의 장식은 ‘대비’를 중시한 장식성을 보인다.
장식의 형태도 기하학적인 도형들, 직선적인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다.
(사진 6)은 이 컬렉션에서 가장 인도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스타일링이었다. 사실 옷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까지 인도 전통 문화를 활용한 패션쇼라는 인상을 못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인도식의 화려한 금빛의 액세서리, 특히 코 피어싱을 본 순간 누구라도 인도 디자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8)까지는 하늘에도 어둠이 짙게 내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는 시간인 것이다.
모노톤의 기계 장치는 화려한 네온색의 불빛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시작하고, 초록색 레이저 조명은 현란하게 공간을 채워간다.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밤의 여왕들(사진 11)이 등장하면서 밤은 깊어간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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