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다스, ‘나이키 타도’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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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3 오전 11:49:14

<박중근의 끝없는 신발전쟁 4>
꾸준하고 일관성있는 브랜딩의 승리



스포츠를 사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LOVE UNITES


2001년에 입사한 아디다스 영업부와의 첫 미팅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미팅을 종료한 뒤 모두가 구호를 외쳤다. '나이키 타도' 깜짝 놀랐다. 필자가 주도한 미팅이었기에 더욱이 그랬다.

1년간 스포츠 업계를 떠나 음료 회사에 다녔지만 그 구호는 마치 나를 향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쌍팔년도 시절도 아니고 '타도'라니"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절실하게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1년말 기준으로 보면 1위인 나이키와의 매출 격차는 절반 수준이었다. 나이키는 2000억원을 넘긴 상태였고 아디다스는 1,180억원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로 따라잡기 힘든 큰 금액 차이었다.

타도를 외치던 아디다스가 먼저 꺼내든 전략적 카드는 나이키의 핵심 인물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카드는 아디다스가 국내에 영업을 시작한 40년사에서 가장 최고의 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영입했던 포지션은 다음과 같았다. 영업상무, 상품기획부장, 재정회계부장, 영업부장, 스포츠마케팅차장. 그들이 옮겨온 이유를 여기서 밝히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이제 상품을 제외하고는 체급을 비슷하게 갖춘 느낌이었다. 특히 상품기획 부장은 나이키 본사도 인정한 최고의 역량을 가진 인물이었다.

인재 영입을 제외하고 지금부터 넘사벽 나이키를 이기고 국내 1위 자리를 7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을 3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국내 스포츠 업계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 한국 아티스트와의 첫 협업, DPR SYNC PACK


◇ Young 브랜드로 변신
국내 생산을 통해 가방, 삼선 슬리퍼, 트레이닝복을 팔면서 올드한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아디다스는 2002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상품 정비에 나섰다. 그동안 국내생산을 통해 팔기 쉬운 제품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한 방식에서 벗어나 본사 제품을 본격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디다스 칼라스(adidas colors)'라는 콘셉으로 레트로풍의 3선 트레이닝복을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본사제품이 국내와 맞지 않다고 배제하던 기획을 전면 수정하면서 놀라운 반전을 이뤄냈고 주요 고객층의 연령대를 10~20년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공감하듯 2002년 한일월드컵은 스포츠가 일상의 패션으로 자리잡도록 하는데 혁혁한 공을 했다. 매출을 보면 국가대표를 후원하는 나이키 못지않게 월드컵 공식 후원사였던 아디다스는 매출과 브랜드 인지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쾌거를 이뤄냈다.



아디다스의 11단계 업무 프로세스 GTM


◇ GTM 프로세스 (Go-To-Market process)
어디나 있는 업무 프로세스가 왜 특별할까 하겠지만 아디다스의 업무 프로세스인 GTM은 분명 특별했다. 전 업무의 과정을 총 11단계로 나누고 단계별 각 팀의 역할 및 역할의 정도까지 퍼센트로 표시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이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해 나갔다.

그런데 여기서 더 특별한 것은 단계별로 문제가 발생될 때 서로에게 보여준 성숙한 문화였다. 임원들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업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난하는 대신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임원들의 성숙한 모습은 직원들에게도 전파되면서 실제 회사의 인지도나 상품이 가진 역량을 뛰어 넘어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게 되었다. 끊임없이 성장의 방법을 모색한지 10년만의 쾌거였다. 
 
◇ 꾸준한 마케팅 투자와 과감한 협업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일까? 그것은 꾸준함과 일관성이 아닐까 한다. 아디다스가 다른 브랜드와 크게 달랐던 점은 선수 및 동호인들에 대한 진정성이었다. 한두 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 세기를 이어가는 고객과의 약속, 즉 단발성으로 큰 돈을 쓰고 끝내는 행사성이 아니라 돈을 당장에 많이 벌지 않아도 꾸준히 소비자를 향하는 마케팅으로 열세를 면치못했던 종목에서 시장을 선두를 뺏어 올 수 있었다.

소비자들 특히 그 종목의 동호인들에게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대회나 행사를 꾸준히 만들었다. 이로써 나이키의 오랜 아성이었던 축구와 테니스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주목할 것은 젊은 마케팅 담당자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채택한 쇼미더머니의 스폰서십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다년간 집중했던 것이 매출의 격차를 경쟁사와 2000억까지 벌리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한 것이다.

자기 보다 훨씬 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방법을 찾고 협업한 결과는 한국 스포츠 브랜드 역사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역전의 쾌거와 가장 먼저 1조를 달성한 브랜드라는 2관왕의 영광을 안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박중근 켐프코리아 대표
jk.park@kemp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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