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미래 04> ‘애플 패션’이 말하는 브랜드 경험(BX)

2021-04-15  

정인기 기자 ingi@fi.co.kr / 권민 객원 에디터 unitasbrand@gmail.com




A good brand is a good ecosystem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패션이 반드시 가야할 방향이다. 하지만 패션의 디지털화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기능, 서비스, 시스템 그리고 생산성에 관한 대답이 많다. 디지털이 고객과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관계]에 관한 대답은 없다.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은 시스템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관계와 경험'이다.


먼저 브랜드 경험(BX:Brand eXperience)에 관해서 디자인뿐만 아니라 운영체제 iOS를 총괄했던 (전)애플 디자인 책임자 조나단 아이브(Jony Ive)의 관점을 들어보자.


아이폰이란 하나의 '경험'이라고 믿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이루는 하모니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인 거죠.
우리는 그 경험을 계속 다듬어 나갑니다.
과감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물면서 더 강력하게,
더 직관적으로, 궁극적으로는 더 유용하게 만들어 갑니다.
친숙함과 새로운 느낌을 동시에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서 일찍이 디지털 세계를 주도한 애플의 디지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조나단의 아이폰은 경험이라는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다.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을 이야기한 것처럼, 조나단도 하드웨어(기계)와 정신(소프트웨어)이 결합해 허물어지는 그 무엇을 교차점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스마트폰의 디지털 경험은 친숙함과 새로움이다. 공존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느낌이 바로 아이폰이 가지고 있는 디지털 경험이다.


친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느낌은 아주 특별한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은 '절대 사랑'에서 이루어진다. 조나단 아이브가 말한 친숙함과 새로움을 이해할 만한 것으로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생각해보자. 처음 만났지만 마치 수천 년 전에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 같은 운명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친숙함과 새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최고 경험이다.


이 모든 '경험'은 '설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오는 주관적인 감정이다. 만약 조나단 아이브가 애플 패션을 맡게 되어 애플 패션이 주는 경험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애플패션이란 하나의 '경험'이라고 믿습니다.
원단, 컬러, 기능과 스타일이라는 하드웨어와
고객의 아이덴티티와 커뮤니티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이루는 하모니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인 거죠.
우리는 그 경험을 계속 창조하고 제안하면서 나갑니다.
패션에서 과감히 옷과 유행의 경계를 허물면서 더 강력하게,
더 직관적으로, 궁극적으로는 더 유용하게 만들어갑니다.
패션을 통해서 친숙함과 새로운 느낌을 동시에 줄 수 있고
고객들 간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시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보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궁극 목표라고 하는 브랜드 경험(BX: Brand eXperience)이라는 단어의 기원부터 살펴보는 것이 디지털 마인드셋 Minds et에 도움이 될 것이다.


디지털 업계에서 성배와 같은 또 하나의 단어가 바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하지만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모든 사람이 같은 정의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특히 어떤 이들은 BX(브랜드 경험)라는 개념을 UX(사용자 경험)의 확장 혹은 또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BX와 UX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UI(User Interface)란 사람과 시스템의 접점에서 사용자가 기계와 의사소통(기술)을 하는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뜻한다. 하지만 지금은 UX와 UI라는 단어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UX란 사용자가 제품, 기술, 서비스 그리고 기업의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가지게 되는 전체적인 경험이다. 앞서 말했던 UI의 기준이 사용성, 접근성, 편의성에 관한 설명이라면, UX란 UI의 이런 기능을 통해서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과 관계를 의미한다. UX는 상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총체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BX는 사용자 경험 UX가 모두 합쳐진 브랜드의 총체적인 경험이다. 여기서 총체적이란 고객이 경험하지도 않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 마치 브랜드를 경험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브랜드 관계를 말한다.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결혼'이다. '결혼'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다'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따로 없다. 부부에게 결혼생활을 정의해달라고 하면 오래된 부부일수록 난처한 얼굴로 '하루 안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할 것이다. 결혼은 '개념'이지만 결혼생활은 '경험' 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험이란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정의할 수는 없는 단어다.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브랜드'의 사전적 정의는 있지만 '브랜드 경영'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없다. '(결혼) 생활'과 '(브랜드) 경영'은 모두 경험의 산물이기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방향과 결과가 되어야 하는 브랜드 디지털 경험이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정의할 수 없는 '브랜드'와 '경험'을 함께 이해하고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패션으로 돌아가 보자. 예전에 패션 경험은 유행(트렌드)이다. 아무리 이상하게 보여도 '이거 최신 유행이야!'라면 되고, 아무리 스타일이 좋아도 '그거 3년 전에 유행한 것인데!'라고 말하면 끝났던 시절이 있었다.


패션은 유행을 타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연예인 협찬, 광고, 홍보에 집중했다. 하지만 2021년 시점에 유행이라는 개념은 지금 패션 본부장급이 생각하는 유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은 유행이 하나의 거대 유행이 아니라 여러 결로 나누어서 불어온다. 그런 결들은 디지털을 통해서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 및 재확산이 되어가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하나의 유행을 퉁쳐서 만드는 역할을 패션 잡지가 했지만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유행도 분명 존재한다. 아주 간헐적으로 선형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 유행을 거리에서 느꼈지만 지금은 코로나와 디지털의 변화로 거리의 유행은 사라졌다. 패션의 유행은 어디에 있을까? 놀랍게도 디지털 전 영역에 퍼져있다. 따라서 패션의 디지털 목적은 [유행]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의 창조와 구축이 되어야 한다.



◇ 몸 따로 마음 따로, eXperience?  Experience?
결론부터 말하면, 브랜드가 자신이 주고자 하는 브랜드 경험이 대중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브랜드 생산자가 소비자들이 느끼는 브랜드 경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안)했기 뿐이다. 생산자의 브랜드 경험에 관한 이해가 이렇게 부족한 이유는 '브랜드 경험'의 기본 지식을 처음부터 잘못 쌓았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이다. 이제 브랜드 경험의 시작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경험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체험(體: 몸 체, 驗: 증험할 험)이라는 단어는 마케팅에서  '체험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사용됐다. 한때 패션에서는 유행이라는 체험이 성배처럼 여겨졌다. 체험은 말 그대로 사용자가 브랜드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체험]과 같은 개념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고 혼용됐지만 이제 디지털로 들어오면서 다양해지고 깊어진 [경험]에 대해서 알아보자. 경험(經: 날 경, 驗: 증험할 험)은 무엇일까? 경(經)으로 해석한 수트라(Sutra)는 산스크리트어로 '실, 끈'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불교 이전의 종교였던 브라만교와 자이나교에서 사용됐다. '수트라'는 마치 우리나라 '거시기'처럼 일상적으로 모든 인도 철학에서 널리 사용하는 관용어인 셈이다.


고대의 책은 실로 수를 놓는 방식으로 쓰였기에 '실'은 옷뿐 아니라 책을 만드는 데도 사용됐다. 오늘날 이 단어는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로 완성된 옷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조직 운영이라는 개념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영어에서도 이와 유사한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Text: 글, 책, 문자)라는 단어는 텍스타일(Textile: 섬유, 직물, 방직)과 같이 라틴어인 Textus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따라서 이 단어는 '글로 쓰다'와 '직조하다'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경(經: 날 경)과 텍스트(Text)라는 단어를 통해서 조금은 애매한 브랜드 경험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브랜드 경험의 목표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브랜드란 완벽한 옷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복을 입어본 사람이라면 몸에 꼭 맞는 옷, 마치 자신과 하나가 된 듯한 옷이 어떤 느낌과 경험을 주는지 안다. 그래서 브랜드가 줄 수 있는 궁극적인 경험은 바로 브랜드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조나단 아이브가 말했던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브랜드 경험이다.


[photo by 김훈호 / (사)세상을 품은 아이들]




PROJECT 04 I 안팀장에게
fecosight[페코사이트] 브랜드 네이밍과 스토리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하고 다시 말하도록 할게. 그전에 안 팀장에게 듣고 싶은 것이 있어. 안 팀장이 나에게 보내준 보고서를 보니깐 페코사이트의 론칭 전략을 그린 디지털 전략(Green digital)이라고 소개했지.


내가 이해한 그린 디지털 전략은 말 그대로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공정무역을 통해 친환경 소재를 쓰겠다는 것이지. 론칭 보고서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든 것을 친환경으로 풀었더군. 그런데 이 보고서는 투자자를 위한 보고서인가? 아니면 내부적으로 정리한 내용인가? 안 팀장이 내 스타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런 이야기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 되는데 걱정이 되는군)


암튼, 보고서에 대한 나의 피드백은 비건Vegan이 운영하는 뷔페에 온 기분이었어. 먹을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철저하게 비건의 관점으로 요리를 만들어서 너무나 완벽한 비건들만의 잔치라는 뜻이야. 비건 투자자와 비건 고객만을 위한 페코사이트라고 한다면 안 팀장의 보고서는 충분해. 하지만 보고서에는 고객이 비건, 그러니깐 내 말은 고객이 모두 친환경을 추구하는 브랜드 마니아라고 말하지 않았더군. 친환경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모든 공정에 친환경 요소를 촘촘하게 집어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으로 브랜드 경험이 설계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일단 '러쉬LUSH'라는 브랜드를 설명을 해보자구. '러쉬'는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화장품 브랜드야. 전 세계 대부분의 화장품이 모두 동물을 실험을 할 때 이 브랜드는 동물실험의 민낯을 보여주고 반대를 했지. 어떻게 하면 되었을까? 대부분의 소비자는 어떻게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불안하게 쓸 수 있냐고 거부했지. 하지만 그들은 계속 캠페인을 끌고 나갔어. 결국 국가의 법이 바뀌고 대형 경쟁사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게 되었어.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러쉬'의 고객이 '러쉬'라는 경험을 만들고 그것을 전파하여 '러쉬'의 비고객 소비자의 인식까지 바꾼 거야.


'러쉬'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안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전한 재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 이로 인해 화장품 용기, 매장, 서비스 등 모든 것이 바뀌었어. '러쉬'가 주는 브랜드 경험은 친환경 화장품이지만 궁극의 근원은 동물보호이지. 내 말은 안 팀장이 말한 그린 디지털은 브랜드를 친환경으로 섹시하고 쿨하게 만들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편리를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안 팀장, 자연을 위해서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내야 할까? 오프라인 매장을 내기 위해 들어가는 환경 파괴를 생각해봐. 인테리어를 뜯어내고, 시멘트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환경 오염은 어떻게 생각해?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질문이야. 하지만 창업주가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이지 아닐까?


내가 지금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다시 읽고 있는데 자네에게 마지막 장을 소개하고 싶어.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이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아마 그래서 내가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자네는 애플을 쓰고 있지 않지? 일단 애플을 쓰는 사람에게 제품을 보여달라고 하고 애플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살펴보게. 특히 아이맥 iMac 컴퓨터의 스위치를 찾아보게. 아마 안 팀장이 애플 제품은 스위치가 스위치처럼 보이지 않거나 일반적으로 스위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을 거야. 스티브 잡스는 죽을 때까지 스위치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졌지.


스티브 잡스는 스위치가 있는 기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 물론 스위치가 보이지 않게 했다고 영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강박관념이 오늘날 애플의 디자인, 철학 그리고 운영체제를 만들었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을 때 애플은 일반적인 기계들과 다른 경험을 주었지.


안 팀장이 만들 fecosight[페코사이트]에서 고객의 경험이 무엇이지? '나이키'를 입으면 뛰고 싶어 하고, '파타고니아'를 입으면 절벽을 타고 싶고, '러쉬'를 바르면 동물보호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하잖아. 패션은 더는 패션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린 디지털이라는 단어도 결국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일환이겠지? 안 팀장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그린에 디지털을 넣거나 디지털에 그린을 넣기 전에 근본적인 것을 '페코사이트'에서 빼는 거야. 카카오 뱅크에는 은행이 없고, 에어비앤비에는 자기가 운영하는 호텔이 없잖아.


기존의 오프라인의 거대한 하드웨어가 사라지면서 그 모든 것을 디지털이 소프트웨어가 되었고, 결국 사람들은 그 브랜드의 디지털을 경험했지. 이것 때문에 내가 '페코사이트'의 매장을 만들지 말자고 이야기했던 거야. '페코사이트'는 매장이 없어서 디지털로 진화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 친환경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가장 큰 것을 버리는 것은 어떨까? 기계에 전원 스위치를 없애고, 화장품에서 동물실험을 없애려고 했던 것처럼 안 팀장도 옷을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그 옷을 만든 데 자연이 고통을 받는 근본적인 것을 없애는 것은 어떨까? 바로 그 자리에 디지털을 넣는 거야.


브랜드는 하는 것보다 하지 않음으로 브랜드가 되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패션의 기본을 버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로 바뀌는 거야.


안팀장. 딱 하나만 생각해. 왜 고객이 'fecosight'를 입어야 할까? 이 질문의 대답이 디지털이 말하게 해야되. 고객이 'fecosight'를 응원하게 해야해. 디지털의 경험은 커뮤니티와 콘텐츠야.


몽골 자전거 여행 중에 윤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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