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꼬마가 있었다. 누나들이 아동복 디자이너라 샘플로 만든 옷은 늘 그의 차지였다. 그래서 늘 또래보다 멋진(?)을 옷을 입곤 했다. 하지만 샘플용인지라 늘 앞선 디자인이었고 또래들에게 놀림 당하기 일수였다. 소년은 무럭무럭 자라 1982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입생 강진영은 늘 무엇인가 모를 갈증에 목말라했다. 학교를 마친 후 미술학원에 다니던 그는 남산 밑에 사는 덕분에 명동을 이유 없이 쏘다녔다.
그 명동에서 그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오브제가 있었다. 바로 패션의 대모 진태옥의 프랑소와즈 매장의 쇼윈도우. 처음 매장을 본 순간 진태옥의 아우라에 중독된 떨림과 설레임은 시간이 가면서 패션에 대한 간절함으로 변주되었다. 바로 강진영이 패션을 시작한 계기다.
“아직도 그 때 프랑소와즈 매장 본 옷이 생생해요. 실버와 화이트, 그레이 산퉁 실크로 만든 하프 코트와 원피스였어요.”
참 대단한 기억력이다. 25년이나 지난 그때의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니 말이다. 어쨌든 그의 인생에 있어 첫 번째 멘토 디자이너 진태옥에 꽂힌(?) 그는 대학교 3학년 때인 1984년 압구정동 파르코 백화점(현 갤러리아 명품관)에 입점한 진태옥의 남성복 「프랑소와즈옴므」 1호점의 단골 고객이 된다. 자카드와 바이올렛으로 만든, 요즘에 봐도 파격적인 옷에 거금을 투자하며 소위 하이엔드 브랜드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자신도 언젠가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고객에게 입히리라고.
국내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진태옥에 입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티오가 없단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진태옥 입사를 포기한 그는 이상봉과 이정석 부티크에서 패션을 배웠다. 진태옥은 천재를 몰라본 것일까?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고 장본인인 진태옥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자신의 출발에 좌절(?)을 안겨준 진태옥에 대한 서운한 마음도 있을 법 하건만 여전히 진태옥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다. 진태옥 패션쇼 개근생인인 그는 인터뷰 동안에도 책상에 <진태옥 사진집>을 펼쳐 놓고 있었다. 진태옥이라는 이름 석자는 그의 패션에 있어 멘토이자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디자인할 때 늘 보는 두 권의 책 중 하나다. 또 다른 책은 <아름다운 나의 보자기>라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언젠가 진태옥 선생님의 쇼를 윤한희 감사와 함께 보러 갔는데 ‘뜸북 뜸북 뜸북새~’라는 패션쇼 음악이 흐르더라구요. 소름이 쫙 끼친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본 패션쇼 중에서 최고였어요. 슬프지만 신비스러운, 자연을 닮은 진태옥 패션의 정수를 보는 기분이었죠.”
‘진태옥 패션’에 대한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한 마리 하얀 새가 허공을 하염없이 날아다니다가 은빛 물결을 헤치고 물고기를 낚아채는 순간, 햇빛에 빛나는 강물의 울림 같은 거죠. 고요함 속에서 어느 순간 심장을 떨리게 하는 그 순간을 <진태옥 사진집>을 통해 요즘도 간접 체험한답니다.”
그의 패션 인생에 있어 두 번째 멘토는 바로 오브제 패션의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윤한희 오브제 감사다. 「오브제」에 이어 「오즈세컨」 「Y&Kei」 「Hanii Y」에 이르기까지 오브제 신화의 정점에는 늘 둘이 함께 했다.
강진영과 같은 학과 동창인 윤한희는 원래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다. 외국어대 졸업 후 주저없이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한 윤한희는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그만 떨어지고 만다. 낙담한 그녀에게 패션을 취미로 해보라고 권유하며 화실을 등록해준 이가 바로 친구 강진영이었다. 그리고 친구에서 유학부부로 발전한 커플은 미국으로 패션 공부를 하러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디자이너 부티크를 노크하던 강진영과 달리 윤한희는 내셔널 브랜드인 논노 「샤트렌」에 입사해 열성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강진영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는 윤한희를 설득해(?) 신사동 가로수길에 「오브제」 간판을 내걸었다. 둘의 작지만 큰 시작이었다.
“윤한희 감사는 추구하는 대상에 대한 철저함을 가지고 있어요. 후회할 일은 아예 시작도 안 하는 편이죠. 집중력이 강해 장거리에 강한 사람입니다. 반면 저는 시작은 요란하지만 장거리엔 약해요. 그래서 우리 둘은 찰떡 궁합인 셈이죠”
끝으로 멘토로서 윤한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질문했다. 팔불출이라고 놀리지 말라며 아내 자랑을 늘어 놓는다. 질문을 안 했으면 서운해 했을 눈치다.
“이 세상에서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패션이지만 더불어 유일무이한 의미있는 사람이 윤한희 감사죠. 다시 태어나도 디자이너로 살고 싶은 것처럼, 다시 태어나도 윤 감사와 결혼할 겁니다. 본인의 생각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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