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벌을 사고 오래 입어라…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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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준의 제3 세대 유통트렌드 23

2026-09-21 오전 8:57:25

당근마켓에서 아프리카까지…우리가 입었던 옷의 두 번째 생애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한다. 잘 입지 않는 옷은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리고, 브랜드가 있거나 희소성 있는 옷은 빈티지숍이나 벼룩시장으로 흘러간다. 처분하기 어려운 옷은 의류수거함으로 간다.


하지만 옷은 버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눈 앞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의류수거함에 들어간 옷 가운데 상품성이 있는 제품은 국내 중고시장에 다시 유통되거나 해외로 수출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는 이미 거대한 중고의류 시장이 형성돼 있고, 유엔환경계획(UNEP)은 가나 등에서 중고의류 무역의 경제적 가치와 환경적 부담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중고 옷이 국경을 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양과 품질이다. 재사용 가능한 양을 넘어선 옷, 몇 번 입기도 전에 형태가 무너진 옷까지 대량으로 이동한다면 그 나라가 결국 마지막 폐기 장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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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이미 옷장에 있으며, 가장 좋은 옷은 가장 오래 입는 옷이다.



옷이 너무 싸진 시대


패션산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놀라울 만큼 효율적으로 변했다. SPA와 패스트패션의 등장으로 옷값은 훨씬 저렴해졌고, 패션은 더 이상 일부의 사치가 아니게 됐다.


하지만 옷값이 내려가는 동안 함께 낮아진 것이 있다. 옷 한 벌에 대한 심리적 가치다.


10만 원, 20만 원짜리 옷은 쉽게 버리지 못하지만, 1만 원대 티셔츠는 몇 번 입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옷장 한 쪽으로 밀려난다. 수선비가 옷값과 비슷하면 고쳐 입는 대신 새 옷을 산다. 옷이 낡기 전에 버려지는 시대, 물리적 수명보다 심리적 수명이 먼저 끝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패스트패션의 문제를 단순히 ‘싼 옷’으로 규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저렴한 가격과 빠른 유행, 과잉생산이 결합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사고 충분히 입지 않은 채 다시 버리는 구조가 일상화 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면은 썩고 폴리에스터는 안 썩는다?


옷을 무엇으로 만드는지도 중요하다. 오늘날 옷에는 폴리에스터, 나일론, 아크릴 같은 합성섬유가 광범위하게 쓰인다. 가볍고 튼튼하며 잘 마르고, 가격 경쟁력도 높다.


그러나 이들 합성섬유의 상당수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에서 출발한다. 유럽환경청(EEA)은 합성섬유가 소각되지 않는 한 자연환경에서 생분해되지 않고, 거대 플라스틱에서 미세·나노플라스틱 형태로 환경에 잔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흔히 ‘면은 몇 달이면 썩고, 폴리에스터는 수백 년이 걸린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분해 속도는 온도, 습도, 토양 상태, 매립 환경, 염색과 코팅, 혼방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셀룰로오스 기반 천연섬유인 면은 조건에 따라 생분해될 수 있는 반면, 일반적인 합성섬유는 자연 환경에서 쉽게 생분해 되지 않는다는 차이를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또 하나의 함정


그렇다면 면은 언제나 친환경이고 폴리에스터는 언제나 나쁜 소재일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EEA의 생애주기 분석에 따르면 원단 1kg 기준 폴리에스터는 기후변화·화석연료 측면에서, 면은 토지·물 사용과 부영양화 측면에서 더 큰 부담을 준다. 2026년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xtile Exchange)의 면 생애주기평가 역시 면의 환경 영향이 재배 지역과 농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천연소재=친환경’이라는 공식도 성립하지 않는다. 면 재배에는 토지와 물, 비료와 농약이 들고, 염색과 가공에도 에너지와 화학물질이 필요하다. 합성섬유는 면화 재배가 필요 없는 대신 화석연료 의존과 탄소배출, 폐기 이후 플라스틱 잔존 문제가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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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소재는 아직 없다


옷은 쓰레기통에 들어간 뒤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입고 세탁하는 동안에도 섬유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 합성섬유에서 특히 주목할 문제는 미세플라스틱이다.


EEA에 따르면 합성섬유 미세플라스틱은 제조·착용·세탁·폐기 전 과정에서 배출되며, 유럽에서만 연간 약 1,600톤에서 6만 1,100톤이 비의도적으로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새 옷일수록 초기 세탁에서 미세섬유 방출량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EEA는 짧게 입고 교체되는 패스트패션 구조가 첫 세탁의 비중을 높여 미세섬유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옷을 많이 만들고 조금 입고 다시 새 옷으로 바꾸는 소비 방식은 폐기물의 양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옷이 살아 있는 동안의 환경부담까지 반복해서 만들어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몇 번 입었는가'다. 면에도 문제가 있고 폴리에스터에도 문제가 있다. 재활용 섬유도, 친환경 원단도 생산하는 순간에는 자원을 소비한다.


그렇다면 어떤 옷을 사야 할까


환경 부담이 적은 소재라도 두세 번 입고 버린다면 지속가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반대로 생산 과정에서 환경 부담이 발생한 제품이라도 수년간 수십, 수백 번 반복해서 사용한다면 한 번 사용당 환경 부담은 낮아질 수 있다. EEA 역시 패스트패션 소비를 줄이고 제품을 더 오래 사용하며 재사용과 재활용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지속가능한 패션의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한 벌을 사고, 오래 입는 것이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당시 ‘파타고니아’는 뉴욕타임스에 자신들의 재킷 사진을 싣고 그 위에 이렇게 적었다. Don't Buy This Jacket. 옷을 팔아야 하는 회사가 소비자에게 자신의 옷을 사지 말라고 한 것이다.


역설적인 문구 자체가 마케팅 효과를 만들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캠페인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한 광고 기법 때문만은 아니다. 파타고니아가 던진 질문은 정말 필요한 옷인지 생각해보고, 이미 가지고 있다면 오래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지금도 원 웨어(Worn Wear)를 통해 제품의 수선과 재사용, 중고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버려진 트럭 방수포에서 시작한 스위스 ‘프라이탁’도 비슷한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졌다. 1990년대 초 형제는 사용이 끝난 방수포로 가방을 만들었다. 폐기물이 제품이 된 것이다. 지금은 익숙한 ‘업사이클링’이 당시로서는 낯선 접근이었고, 프라이탁은 제품을 수선하고 다시 순환할 수 있는 소재와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스웨덴의 ‘누디진’은 리페어숍을 통해 청바지를 수선하고 다시 판매하거나 소재로 활용한다. ‘에일린 피셔’는 자신들이 판매했던 제품을 회수해 중고로 팔거나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프랑스의 ‘베자’는 원료와 공급망의 투명성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는다.


이들은 모두 옷을 판매하는 순간 브랜드의 책임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옷의 기준은?


국내에서도 이런 고민은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제품 자체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필자가 운영에 참여하는 요가웨어 브랜드 ‘브리피스’ 역시 스스로를 거대한 친환경 브랜드라고 말하기보다, 면을 중심으로 반복해서 오래 손이 가는 옷을 고민한다.


면을 쓴다고 그 자체로 친환경적인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그 옷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입느냐다.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옷이 원래 가지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가치, 좋은 옷을 만들어 오래 입게 하는 것이다.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이미 옷장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새로운 것을 찾는 데 익숙하지만, 그보다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오늘 입었던 옷을 내일 한 번 더 입는 것이다.


작아진 옷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상태 좋은 옷은 중고로 판매한다. 찢어졌다면 수선하고, 새 옷을 살 때는 ‘얼마나 입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제품에 ‘친환경’이라는 문구를 붙이는 것보다 쉽게 버려지지 않을 옷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지속가능성은 거창한 구호보다 옷 한 벌의 수명을 조금씩 늘리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당근마켓에 올린 옷도, 의류수거함에 넣은 옷도, 동묘의 어느 가게에 걸린 옷도 어딘가에서는 계속 존재한다. 어떤 옷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고, 어떤 옷은 국경을 건너고, 어떤 옷은 다시 원료가 되고, 어떤 옷은 결국 쓰레기가 된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옷은 가장 오래 입는 옷인지도 모른다.




이정준 대표
brpc@brepe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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