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과 노출, 안과 밖, 소재와 구조 사이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패션
아침의 방을 떠올려 보자. 얇은 커튼 한 장을 통과한 햇빛이 바닥에 흐릿한 무늬를 그린다. 커튼은 바깥의 시선을 막아서지만, 빛과 바람까지 가두지는 않는다.
한지 창호를 통과한 빛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바깥의 볕을 부드럽게 걸러 방 안으로 들이고, 밤이 되면 반대로 실내의 온기와 사람의 그림자를 밖으로 흘려보낸다. 얇은 종이 한 장 안에서 가림과 드러남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두 사물이 흥미로운 건, 안과 밖을 나누는 방식이 벽과 다르기 때문이다. 벽은 자른다. 커튼과 창호는 조절한다. 무엇을 통과시키고 무엇을 남길지 매순간 결정하는, 살아 있는 경계다. 그리고 그 경계는 더 이상 두 공간을 가르는 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상태가 만나 겹치는 하나의 층이 된다.
요즘 패션에서 자주 보이는 시어, 레이어, 컷아웃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옷은 몸을 가리거나 드러내는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 가리면서 보여주고, 나누면서 잇는다. 형태는 완성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변화할 여지가 남아 있다. 어느 한쪽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가 선명한 디자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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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넬의 2026 봄·여름 레디투웨어는 시폰 케이프, 투명하게 자수 놓인 셔츠 드레스, 걸을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는 스커트가 몸 주변에 여러 겹의 표면을 만들어냈다. |
경계에서 사는 법
‘리미널(Liminal)’은 문턱, 혹은 경계에 머무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한 공간을 떠났지만 다음 공간에 아직 닿지 않은 순간, 이전의 역할은 끝났는데 다음 정체성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순간.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중간 상태를 불안하거나 미완성한 것으로 여겨왔다. 낮과 밤, 자연과 기술, 기능과 감성처럼 세상은 반대되는 두 축으로 쪼개지고, 그 중 한쪽에 속해야만 안정적이라고 믿어왔다. 옷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능성 의류는 몸을 지켜야 했고, 패션은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둘은 오래도록 서로 다른 서랍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은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집은 쉬는 곳이면서 동시에 일하는 곳이 되었고, 카페는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장소가 됐다. 하나의 옷을 입은 채로 냉방이 강한 지하철과 뜨거운 거리, 사무실과 식당을 잇달아 통과한다. 사람의 역할과 공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데, 옷만 하나의 목적에 붙들려 있을 이유가 없다.
리미널(Liminal)은 이 교차 지점에서 시작한다. 다만 자연에 기술을 살짝 얹거나 기능에 장식을 덧붙이는 절충안은 아니다. 서로 다른 조건들이 한 벌의 옷 안에서 관계를 조율하며 함께 살아가도록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대립을 없애는 대신, 대립 사이에 머물 수 있는 구조를 짓는 것. 그것이 이 흐름의 핵심이다.
겹쳐야 보이는 것들
시어 소재는 보통 노출의 언어로 해석된다. 얇고 비치는 원단 사이로 피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시어 스타일링을 유심히 보면,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드러나느냐가 아니다. 무엇과 무엇이 겹쳐 보이느냐다.
샤넬의 2026 봄·여름 레디투웨어가 그 예다. 시폰 케이프, 투명하게 자수 놓인 셔츠 드레스, 걸을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는 스커트가 몸 주변에 여러 겹의 표면을 만들어냈다. 밀도가 다른 튤과 오간자가 겹쳐지면서, 피부와 안쪽 옷, 바깥쪽 원단 사이의 경계는 한 눈에 읽히지 않는다. 모델이 움직일 때마다 그 관계는 계속 달라진다. 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안쪽 형태가 얼핏 드러나지만, 원단이 포개지거나 그림자가 드리우면 다시 불투명해진다. 하나의 옷이 빛과 움직임에 따라 매번 다른 이미지로 읽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시어는 몸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라기보다, 몸과 옷 사이에 깊이를 만드는 소재에 가깝다. 커튼과 한지 창호가 빛과 시선의 통과량을 조절하듯, 시어 소재도 피부와 바깥 세상의 관계를 매 순간 다시 정한다.
레이어링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단순히 옷을 여러 벌 겹쳐 입는 방법이 아니다. 길이가 다른 원단, 투명도가 다른 층, 매트한 표면과 광택 있는 표면이 한 벌 안에서 포개지며 여러 상태를 동시에 품는다. 어디까지가 안감이고 어디부터가 겉감인지, 어디까지가 장식이고 어디부터가 구조인지 구분이 흐려진다. 그 모호함이 오래 눈길을 붙든다.
빈틈이 옷이 되는 순간
컷아웃은 얼핏 완성된 옷에서 원단 일부를 잘라낸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설계된 빈 공간은 단순한 결여가 아니다. 어깨와 허리, 등과 옆선에 낸 틈은 옷과 몸 사이에 새로운 경계선을 그린다.
기존의 옷은 원단이 존재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실루엣을 완성했다. 컷아웃 디자인에서는 원단이 없는 부분까지 전체 형태의 일부가 된다. 틈으로 드러나는 피부가 떨어져 있는 패널들을 시각적으로 연결하고,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그 빈 공간의 크기와 모양도 함께 변한다.
감성적으로만 보이던 절개가 실은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움직임이 많은 부위에 여유를 주거나 통풍을 돕고, 옷의 무게를 덜며 단단한 구조에 유연성을 더한다. 기능과 감성은 따로 떨어진 두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물론 이 지점을 상품으로 완성하려면 계산이 정교해야 한다. 위치가 조금만 어긋나도 착용감이 무너지고, 절개 주변이 늘어나면 실루엣 전체가 흐트러진다. 경계를 흐리게 그릴수록, 그 아래의 구조는 오히려 더 정확해야 한다는 역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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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이 미야케의 A-POC(A Piece Of Cloth) |
실 한 가닥이 옷이 될 때
이세이 미야케의 A-POC(A Piece Of Cloth)는 하나의 연속된 섬유에서 옷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한 가닥의 실이 컴퓨터로 제어되는 산업용 편직·직조 기계를 통과하며, 질감과 형태와 의복 구조가 함께 담긴 하나의 연속 원단으로 짜인다.
보통의 옷은 원단을 펼쳐 패턴을 배치하고, 조각을 잘라 봉제해 입체를 만든다. 원단과 패턴, 완성된 옷은 각각 다른 단계에 놓인다. A-POC는 이 단계들을 하나로 합친다. 옷의 윤곽과 조직, 이음매가 연속된 원단 안에서 동시에 생겨난다. 소재와 옷 사이의 경계가 애초부터 흐리다.
평평하게 펼쳐 두면 하나의 구조적인 벽면처럼 보이지만, 몸에 걸치면 원단의 조직과 선이 이어지며 여러 겹의 레이어로 바뀐다. 봉제선으로 이음새를 숨기는 대신, 소재가 어디서 시작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표면 자체가 구조이자 장식이 되는 순간이다.
A-POC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생산 기술이라서가 아니다. 원단과 완성품, 평면과 입체, 소재와 구조를 나눠온 오래된 질서에 다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소재이고 어디서부터가 옷인지, 그 경계는 이미 흐려져 있다.
완성이라는 착각
우리는 좋은 디자인을 명확한 형태와 완결된 결과로 판단해왔다. 그러나 지금 이 흐름이 보여주는 완성은 조금 다르다. 빛이 바뀌고 몸이 움직일 때, 소재가 접히고 겹쳐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는, 열려 있는 완성이다.
시어는 가림과 드러남 사이에 깊이를 만들고, 레이어링은 안과 밖의 순서를 흔든다. 컷아웃은 빈 공간까지 구조에 포함시키고, A-POC는 소재와 완성품 사이의 경계를 아예 지운다. 이들은 형태를 포기한 게 아니다. 오히려 형태가 계속 변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까지 미리 설계해 둔 것이다.
앞으로 디자이너의 역할도 하나의 정답을 내놓는 데 머물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과 기능, 감정과 신체 조건이 부딪히지 않고 함께 머물 수 있는 구조를 짜는 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열어둘지, 어디까지 형태를 정하고 어디에 변화의 자리를 남겨둘지 판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다시 얇은 커튼과 한지 창호를 본다. 이들은 안과 밖을 완전히 나누지 않는다. 빛과 바람, 시선과 그림자가 오가는 양을 조절하며 두 공간이 관계 맺도록 돕는다. 경계를 단단히 걸어 잠그지 않았기에, 공간은 오히려 더 풍부해진다.
경계는 선이 아니다. 경계 위에 머무는 옷은 어느 한쪽을 고르지 못한 옷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동시에 품기 위해 변화의 가능성을 구조 안에 남겨둔 옷이다.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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