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웰니스’ 시대, 지속가능한 삶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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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의 웰니스 인사이트 포커스 12

2026-09-21 오전 8:24:56

완벽한 원단 vs 불완전한 몸…‘지표는 있는데 체온은 없다’의 진실을 찾아서




더위는 몸으로 느낀다. 숫자로는 알 수 없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친환경 인증서가 아니다. 오늘 하루, 쓰러지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오래도록 기업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재생 섬유의 비율, 탄소 배출의 감소량과 같은 숫자들이 기업의 성적표였다. 그 옷을 입고 땡볕 아래 서 있는 몸과는 상관없다. 지표는 있었지만 삶은 없었다. 배출량은 계산됐지만 체온은 고려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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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지속가능성은 오래도록 기업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기후위기는 몸의 문제


지난 8월 26일, 네팔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히말라야 빙하가 무너져 순식간에 대홍수가 마을을 삼켰다. 원인은 강우가 아니라 온난화였다. 녹아내린 얼음이 재난이 됐다. 이 홍수로 네팔과 중국 접경에서 1000 명 넘는 사람이 죽었다.


라수와 수력발전소 공사장에 있던 한국인 근로자 아홉 명도 물살에 휩쓸려 연락이 끊겼다. 오늘도 수색은 계속된다.


이 비극적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하나다. 탄소를 줄이고 친환경 소재를 쓰는 일,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기후위기는 그 대처만으로 막을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누군가의 삶은 오늘 무너질 수 있다. 문제는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여름 한반도의 폭염도 예사롭지 않았다.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의 체온과 수분, 누가 관리 하는가. 기후 재난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사람을 사회는 어떻게 지키는가.


이 질문 앞에서 지속가능 경영은 초라해진다. 얼마나 깨끗한 원료를 썼는지는 보고하지만 그 원료로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이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순간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경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관점이 필요하다. 경영의 언어는 기업을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삶의 언어는 사람을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같은 냉감 원단이라도 ‘이 소재는 재생 섬유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이 옷을 입은 당신은 오늘 안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약속이다.


완벽한 원단, 불완전한 몸


패션은 오랫동안 완벽한 몸을 전제로 옷을 지었다. 균형 잡힌 체온, 지치지 않는 근력, 흔들리지 않는 컨디션. 실제로 존재하는 몸은 그렇지 않다. 폭염 속 노동자의 몸은 1도만 올라도 사고 위험이 커지는, 지극히 취약한 몸이다.


웰니스는 이 취약함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깨진 도자기의 균열을 금으로 이어 붙이는 킨츠기처럼, 웰니스 패션도 몸의 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는다.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 보완한다. 완벽한 신체를 위한 옷이 아니라, 온전히 버텨내야 하는, 살아 숨쉬는 몸을 위한 옷.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 패션이 서야 할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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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FnC의 워크웨어 브랜드 볼디스트가 내놓은 ‘에어로 라인’은 의류에 소형 팬을 달아 공기를 순환시키고 등판의 메시 구조가 열기와 습기를 밖으로 밀어낸다.


볼디스트, 체온에 답하다


코오롱FnC의 워크웨어 브랜드 볼디스트가 이 질문에 소재로 답했다. 자체 개발한 냉감 신소재 ‘포르페(FORPE)’는 원래 침구류 냉감 패드에만 쓰이던 기술이다. 의류로는 처음 옮겨왔다.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가 피부에 닿는 즉시 열을 흡수해 체감 온도를 낮춘다.


여름철 내놓은 ‘에어로 라인’은 한발 더 나아간다. 의류에 소형 팬을 달아 공기를 순환시키고 등판의 메시 구조가 열기와 습기를 밖으로 밀어낸다.


볼디스트 양선미 이사는 “폭염이라는 기후 환경 변화에 대응해 근로자의 온열질환 예방과 작업 편의성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문장에는 지표가 없다. 대신 사람이 있다. 근로자의 하루, 그의 컨디션, 그가 무너지지 않는 것. 이것이 지속가능한 삶의 언어다.


테크니쉬, 15만 명의 몸을 지키다


더 극적인 사례는 카타르에서 나왔다. 영국 스타트업 테크니쉬社가 만든 ‘StayQool’ 쿨링 유니폼은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 노동자 15만 명에게 지급됐다. 섭씨 48도를 넘나드는 환경에서, 이 유니폼은 피부 온도를 최대 8도, 최대 7시간 낮춘다. 원리는 증발냉각. 여기에 NASA가 우주비행사의 체온 유지를 위해 개발한 상변화물질까지 응용됐다.


우주로 갔던 기술이 결국 가장 낮은 자리, 뙤약볕 아래 노동자의 등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혁신담이 아니다. ‘사람의 몸은 이 온도를 견딜 수 없다’는 단순한 인정에서 출발한 기술이다. 그 인정이 15만 명의 하루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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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이 기업의 언어로 지구를 계산했다면, 웰니스는 삶의 언어로 사람을 돌본다.



GSE, 경영의 지표에서 삶의 온기로


이 두 사례는 국제웰니스협회가 제안해 온 GSE 관점과 맞닿아 있다.


먼저 G는 거버넌스(Governance)다. 기업의 의사결정과 기술 개발의 기준을 제품이나 성과가 아니라, 그 제품을 쓰는 사람의 삶에 두는 것이다.


S는 소셜(Social)이다. 폭염에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노출되는 야외 노동자와 배달노동자, 고령자 등 기후 취약계층의 안전과 삶을 함께 살피는 사회적 책임이다.


E는 환경(Environmental)이다. 재생 원단이나 탄소 저감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후와 환경, 사람의 몸과 노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생태적 관계로 보는 것이다.


결국 GSE가 향하는 곳은 ‘지속가능한 기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이다. 무엇으로 만들었는가뿐 아니라, 그 제품이 누구의 삶을 보호하고 얼마나 오래 지속시키는지를 묻는 일이다. 패션의 지속가능성도 이제 그 질문으로 확장돼야 한다.


다시, 몸의 자리로


지속가능 경영이 물었던 질문은 ‘이 옷이 지구에 얼마나 이로운가’였다. 이제 물어야 할 질문은 ‘이 옷을 입은 사람의 삶이 오늘 얼마나 온전한가’로 달라졌다. 지속가능경영이 기업의 언어로 지구를 계산했다면, 웰니스는 삶의 언어로 사람을 돌본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경고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의 체온이고, 누군가의 하루이며, 누군가의 삶이다. 패션이 그 삶 곁에 설 때, 옷은 소재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가 된다. 완벽한 원단이 아닌 온전한 몸, 지속가능한 경영이 아닌 지속가능한 삶, 이것이야말로 기후웰니스 시대에 패션이 서야 할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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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회장
dorri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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