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키 브라운이 컬렉션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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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07

2024-05-02 오전 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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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키 브라운 2023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 ⓒ Images Courtesy of Duckie Brown



패션은 항상 새로운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새로운 옷, 새로운 컬렉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새로운 캠페인, 새로운 온갖 뉴스와 인플루언서들이 얼기설기 엮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과거의 어떤 장면이 미래 유행의 실마리가 된다거나, 영감의 바탕이 되는 경험을 한다. 소위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오래된 컬렉션과 의류가 (마치 수집품처럼) 고가에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점 또한 하나의 방증이다.


이에 새로운 봄의 컬렉션이 아니라 지난봄의 컬렉션을 보고 생각난 이야기를 하나 풀어보려고 한다. 처음 그들의 컬렉션을 본 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인데, 한국에 널리 알려진 디자이너는 아니다. 이름은 더키 브라운(Duckie Brown)이다.


◇ 첫 만남 강렬한 인상


2010년경, 뉴욕과 LA와 도쿄와 서울의 남자들이 오래된 브랜드를 즐겨 입기 시작할 무렵, 더키 브라운의 컬렉션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톰 브라운(Thom Browne)이나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즈(Band of Outsiders)처럼 당대 돌풍을 일으키고 남성복의 흐름을 이끈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일본의 극소수 열성팬을 제외하면, 국내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뉴욕의 이단아 같은 느낌이랄까. 말쑥한 아이비리그 출신 신사를 한 번 더 비튼 변주 덕분에 대중이 좋아할 요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예술과 패션의 경계 안에 있었다. 당시 나는 더키 브라운 레이블로 이뤄낸 협업들 역시 좋아했다. 플로쉐임 바이 더키 브라운(Flor sheim by Duckie Brown)의 브로그 구두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2014년에는 아래처럼 짧은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분명히 뉴욕에서 컬렉션을 보여주는데 이상하게 뉴욕과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면 때문에 참 좋아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인기와 인지도
모두 별로 없다. 하나 더 추가하면, 더키 브라운의 디자이너 스티븐 콕스(Steven Cox)와 대니얼 실버(Da niel Silver)가 제일모직의 남성복 브랜드 로가디스(ROGATIS)와 2012년부터 2년 동안 디자인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딱히 후속 기사가 없는 걸 보면 이제 관계는 끝난 듯하다). 그걸 모르고 로가디스 매장에 갔다가 플로쉐임 바이 더키 브라운 가죽 구두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뉴욕보다 너무 비싼 가격에 한 번 더 놀라고). 그들의 텀블러 블로그 ‘더키 브라운 저널(Duckie Brown Journal)’도 충실히 운영 중이니 더 궁금한 분들은 들어가 보시길.”


◇ 시간과 의식의 흐름대로


오랜만에 ‘보그 런웨이(VOGUE Runway)’에 들어가서 과거의 컬렉션을 보다가, 더키 브라운의 2023년도 봄/여름 컬렉션을 보게 됐다. 이 브랜드는 이제 남성복의 트렌드 같은 것을 열심히 분석하고 몰두하여 시장을 확장하는 대신, 그 반대쪽의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봄과 여름을 위한 옷들은 그들이 상업적인 절정을 이루었을 때보다 훨씬 ‘적고’ 또 ‘개인적인’ 열일곱 가지 룩들로 이루어졌다. 첫 이미지를 보고는 ‘왜 갑자기 스판덱스가?’라고 솔직히 생각했지만, 컬렉션에 관한 기자의 비평을 보니 뉴욕에서도 가장 동시대적인 문화를 이끄는 브룩클린(Blooklyn)을 떠나 원래 그들의 집이었던 웨스트 빌리지 (West Village)의 개조한 스튜디오로 거점을 옮긴 이유 같은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흐르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


더키 브라운의 최신 컬렉션을 소개한 <보그 런웨이>의 글은 이 매체에 흔히 기대하는 일반적인 ‘런웨이 비평’과는 다른 방식으로 담겨 있다. 사실, 더키 브라운이 최신 컬렉션을 전개하는 방식의 변화만큼 글의 어떤 지점들이 좋았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우리는 옷이 자기표현의 내밀한 형태이고 개인적인 것임을 알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옷장 속의 옷은 우리가 살아온 것들의 이야기와 얽힙니다. 더키 브라운의 (스티븐) 콕스와 (대니얼) 실버는 옷이 고객의 옷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은 매우 적은 양을 생산합니다. 이 셔츠는 10장, 저 재킷은 3장 정도죠. 스튜디오에서 한 시간을 보낸 후, 그들은 목적과 기쁨을 지닌 채로 세상에 존재할 정확한 방법을 알아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감을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찾는 대신, 그러니까 당대 패션의 역설인 젊음의 불멸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대신 그들은 시간이 가는 대로 흐르는 컬렉션을 만들고 있다.


20년 넘게 일한 두 설립자이자 디자이너, 스티븐 콕스와 대니얼 실버는 그들이 지금 가장 좋아하고, 또 상호작용하는 것들 안에서 컬렉션을 이루어낸다. 그 결과물을 오랜 팬들이 구매하고, 그들의 직업이나 작업 혹은 특정한 의상을 입는 순간이 때로는 컬렉션의 일부가 된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방식은 시대의 흐름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옷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결국 버리는 대신, 확고한 취향과 단단한 지지자로 이루어진 상호 작용 안에 깃든 ‘좋은 옷’을 입는 방식으로서 말이다.


유행이나 트렌드는 빠르고 쉽게 변한다. 그것을 즐기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좋아한 것은 그 옷이 아니라 결국 유행이었나 싶은 경우도 여럿 있었다(개인의 행복 추구 관점에서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결국, 옷을 입는 ‘사람’ 자체는 생각보다 그리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나날을 기대해 본다. 팽창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 관점에서 그릇된 시각일 수 있으나, 사실 유행을 뜻하는 패션의 흐름에 몸을 담지 않고, 그저 자연인으로서 한 사람이 만족하는 기분으로 옷을 즐기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는 훨씬 유익한 사고이지 않을까.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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