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신발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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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03

2023-09-18 오전 10: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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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패션 브랜드는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라 ‘기후 행동을 위한 패션산업 헌장’에 서명했다. Images Courtesy of UNFCCC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혹은 ‘지속 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이라는 단어의 홍수 시대에 산다. 완제품 위주의 B2C 패션시장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최신 소재 박람회, 프리뷰 인 서울(Preview in Seoul) 2023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 단어들이 전시장 곳곳을 장식했다. 그뿐인가? 이제 여름은 한풀 꺾일 채비를 하지만, 올 여름은 그야말로 불볕더위의 정점이었다. 앞으로 남은 여름 중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기사들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벌어지는 세계 각국의 재해 뉴스 또한 헤드라인을 뒤덮었다.


우리는 매일 켜켜이 쌓인 일을 쳐내느라 바쁘게 산다. 한 번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곳곳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걱정 중 하나는 과연 우리 앞에 체감할 정도로 가까워진 이 위기를 사람들이, 아니 인류가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어디선가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무언가를 발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궁금한 것은 거대 담론 아래 수없이 존재하는 개인의 실천 방법 같은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달걀로 바위를 치는 정도에 그친다 해도 말이다.



◇ 글로벌 기업이 앞장서야


챗(Chat) GPT 4.0에게 ‘기후 변화와 패션’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21년 9월까지의 데이터만 가지고 있긴 해도, 이 영리한 인공지능 챗봇은 노련하게 그러나 어느 정도 틀에 박힌 답을 몇 초 만에 내놓았다.


“기후 변화와 패션 산업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두 영역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주요한 포인트들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패션 산업은 환경에 다양한 영향을 주는데, 그 중 하나는 온실가스 배출입니다. 원단 생산부터 옷의 제조, 유통, 그리고 소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또한, 패션 산업은 많은 물과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청바지를 만들기 위해 약 2,000리터의 물이 소요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자원 소비는 기후 변화의 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패스트 패션 트렌드의 결과로, 많은 옷이 빠르게 폐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폐기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지속 가능성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후 인공지능이 도출한 결론은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반면, 패션 산업 내에서는 친환경적인 생산 방식을 택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소재 사용, 에너지 효율적인 제조 공정, 재활용 가능한 포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이 이루어집니다. 더불어 소비자들의 환경 인식이 늘면서,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패션 브랜드들에 지속 가능한 방식의 생산을 유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 변화는 특정 지역의 날씨와 계절성을 바꾸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패션 트렌드와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패션 산업에는 기후 변화에 기여하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기회도 있습니다. 패션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면, 기후 변화 문제 해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인공지능은 ‘답’을 알고 있다. 인류 최고 수준의 지성이 내놓은 답을 얼핏 보면, 해결책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패션기업들에 달려있다.


물론 패션 기업들이 마냥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패션 회사들, 그러니까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와 나이키, H&M,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 리테일링 등 130여 개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에서 50%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담은 ‘기후 행동을 위한 패션산업 헌장(Fashion Industry Charter for Climate Action)’에 서명했다.


LVMH는 자사의 고급재고 원단을 작은 패션 브랜드와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사내 스타트업 노나 소스(Nona Source)를 2021년 출범시켰다. 나이키는 ‘무브 투 제로(Move to Zero)’ 캠페인부터 100% 분해 가능한 소재로 제작하는 스니커즈 컬렉션을 선보이는 ISPA까지, 재생 에너지 사용과 순환 경제로의 전환에 적극적이다. 또한, 웬만한 패션 대기업들은 모두 지속가능성 리포트(Sustainabil ity Report)를 내놓고 있다.


유니클로 또한 이에 속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물류 효율을 높히고, 새로운 매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며, 가공 공정에서 물과 에너지 사용을 절감하는 등의 대책을 나열한다. 리포트를 하나씩 훑어보면, “역시나” 하며 손뼉을 칠 만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소비자로서 패션 브랜드 매장에 가면, 이러한 요소가 대번 체감할 정도로 느껴지기는 사실 어렵다. 여전히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수많은 옷을 만들고, 수없이 많은 재고가 쌓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비자가 구매한 중고 의류를 재판매하는 플랫폼이 세계는 물론 한국에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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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is on Fire But We're Still Buying Shoes>, 알렉 리치(Alec Leach) 지음. Images Courtesy of Alec Leach



◇ 지속가능한 패션 스타트업 등장


앞서 언급한 노나 소스의 사례처럼, 한국에도 ‘고품질 원단의 지속 가능한 순환’을 모토로 출발한 패션 원부자재 스타트업, 텍스고라운드(TEXGOROUND®)가 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간 지구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일반적으로 대기업과 유명한 패션 하우스들이 사용하던 고품질 원단을 더 작고 다양한 패션 브랜드에 공급하고, 새로 생산한 원단을 그만큼 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텍스고라운드의 방법론이 눈길을 끈다.


중고 의류를 ‘헌 옷’ 취급하며 새 제품을 선호하던 현상은 최근 젊은 소비자 중심의 ‘그린슈머’ 움직임과 함께, 윤리적인 소비에 관한 의식 있는 구매로 점차 변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 담론과 기업들의 행동에 실제 소비자들은 까막눈에 가깝다. 어떤 지속 가능한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부풀려질 수는 없는지 일반 소비자들은 100% 알 길이 없다.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제품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을 속속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보통 이러한 정보는 작은 브랜드조차 내부인이 아니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패션을 업으로 삼고 있는 모든 창작자와 꾸준히 옷을 소비해 온 이들에게 갑자기 모든 걸 중단하라고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생의 다른 면과 마찬가지로 패션의 지속가능성이란 어느 정도 결정적인 모순을 자연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아직 추웠던 계절의 2023년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 소개를 발견했다. ‘The World is on Fire But We're Still Buying Shoes.’ 직역하면, ‘세상은 불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신발을 사고 있다’라는 뜻이다.


이 강렬한 제목의 책은 과거 패션 에디터로 활동한 알렉 리치(Alec Leach)가 썼다. 스트릿 패션에 기반을 둔 유명 웹 매거진 <하이스노비어티(Highsnobiety)>의 전 패션 에디터이자 지속 가능한 패션을 다루는 인스타그램 프로젝트 퓨처 더스트(@future_dust)의 창립자인 저자는 책의 서문에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패션이 지구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쇼핑을 할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우리가 쇼핑을 좋아하는 이유, 패션이 어떻게 우리를 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만드는지, 패션이 지구에 미치는 진정한 영향을 은폐하기 위해 어떤 속임수를 쓰는지 설명하기 위해’ 썼다. 소비주의와 스니커즈 과대광고,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심지어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까지, 그 사이 모든 것을 다루는 여정이다.


“그 결과, 패션에 대한 더 느리고 의도적인 접근을 위한 선언문이 탄생했으며, 쇼핑의 정의와 그렇지 않은 것을 재정의합니다.”


144쪽의 문고판 크기인 책의 1부는 총 3장에 걸쳐 사람들이 쇼핑하는 방식을 살핀다. 2부는 현재 문제가 있는 쇼핑 방법의 대안을 제시한다(그는 이것을 ‘탈출 방법’으로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 선언문을 통하여, 개인이 쇼핑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 즉, 자아의 실현 혹은 과시, 과대 마케팅의 희생 혹은 순응이라는 이중적인 면을 지닌 소비의 관점을 바꿔보기를 유도한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우리가 흔히 보는 패션계의 지속 가능성이란 ‘반쪽짜리 진실과 환상의 미로’ 안에 있다고 말한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패션 대기업이 지속가능성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의 매장에 있는 상품이 지난해보다 줄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그래서 기업들이 행하는 실천 방법만큼, 사람들이 옷과 물건을 구매하는 쇼핑 습관에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화, 실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구매하게 하는 유행의 순환,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는 자존감과의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모든 환경 파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쇼핑만큼 현대 인간 생활에 달콤한 음식은 드물다. 약간의 재화를 내는 대신 쾌락에 가까운 행복감을 주고, 소셜 미디어와 광고 속에 존재하는 유명 인사들과 동등한 위치에 선 것 같은 환상을 심는다. 매일 일상과 일에 시달린 사람들에게는 지루함을 깨부수는 일탈 역할 또한 한다. 그래서 쇼핑이란 중독적이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소비의 관점’을 이동해보면 어떨까. (반드시) 필요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산다는 생각이 들 때, 저자가 책에 쓴 또 다른 결론 중 하나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쇼핑이 행복의 열쇠라고 믿게 되지만, 결국 쌓이는 것은 옷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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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리치(Alec Leach). Images Courtesy of Alec Leach



◇ 나만의 방법 찾아 실천


그렇다고 이 책이 쇼핑하는 모든 사람과 패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저자 역시, 과대 소비의 중심에 속한 플랫폼에서 오래 일하며 느낀 다면적인 감정과 괴리를 잘 알고 있다.


지금 그는 수백 벌의 옷과 스니커즈 대신, 사계절을 통틀어 서른 벌 남짓한 옷으로 일상을 꾸린다. 지금 당장 쇼핑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가 시위대에게 참여하라는 선동 역시 아니다. 대신, 패션 혹은 옷을 통해 행복을 느끼면서도 어느 정도 죄책감 또한 지닌 사람들에게 ‘패션과 더 나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지속가능성 혹은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하여 다양한 해결책과 모순이 뒤엉키고 판을 치는 시대, 적어도 내가 본 방법론 중에 책은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온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친환경·지속가능성 패션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8조 2899억 원에서 올해 약 10조 7703억 원까지 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성장이 그릇된 패션을 상쇄하는, 일종의 이로운 성장이라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방법 혹은 기업 주도의 정책만이 지속 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패션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으로 믿지는 않는다.


사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계속 살아가는 한, 지구온난화, 과잉 소비 같은 범주에 획기적인 하나의 해결책은 쉽게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거대한 담론을 거대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애를 쓴다고 믿으며, 반대로 개인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또한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살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안의 방법을 한 번쯤 더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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